성찰

언어와 존재의 품격 ㅡ 말은 다듬어야 빛이 난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언어와 존재의 품격 2025.10.11
언어와 존재의 품격

언어와 존재의 품격 ㅡ 말은 다듬어야 빛이 난다

청람 김왕식

언어는 돌과 같다. 다듬지 않으면 거칠고, 쌓이지 않으면 허물어진다. 한 줄의 문장이라도 정성스레 깎고 닦으면, 그 속에서 인간의 영혼이 빛난다. 문학은 바로 그 다듬음의 예술이다. 말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다듬어진 말이 인간을 고귀하게 세운다. 문학의 품격은 곧 언어의 품격이며, 언어의 품격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적 품위에서 비롯된다.

지식의 시대는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SNS의 짧은 문장, 정치의 거친 언어, 미디어의 왜곡된 말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말이 많다고 언어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말이 넘칠수록 언어의 진실은 사라진다. 말은 많음이 아니라 맑음의 문제다. 진정한 언어는 침묵 위에서 자란다. 그래서 나는 늘 생각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말을 잘 가꾸는 사람이 세상을 맑게 한다고.

다듬는다는 것은 단순히 꾸미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닦는 행위이자 존재의 수련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자신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문장은 인격의 그림자이며, 단어 하나에도 그 사람의 내면이 비친다. 다듬어진 언어는 단정한 자세에서 나오고, 단정한 자세는 겸손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언어의 윤리란 곧 삶의 윤리다.

나는 문학과 언어를 가르치며 보았다. 많은 이가 ‘말하기’를 배우려 하지만, 정작 ‘말 다듬기’를 배우는 이는 드물었다. 그러나 참된 문장은 기술이 아니라 인품에서 나온다. 언어의 품격은 학문보다 양심이, 지식보다 정성이, 이론보다 인간이 결정한다. 다듬어진 말에는 온기가 있고, 다듬지 않은 말에는 상처가 있다. 문학은 그 상처를 치유하는 언어의 의술이다.

“말은 곧 사람이다”라는 옛말은 여전히 진리다. 사람의 인격은 언어의 결로 드러난다. 무례한 말은 폭력이고, 다듬어진 말은 배려다. 말이 품은 정직은 그 사람의 중심이며, 말의 향기는 그 사람의 내면에서 난다. 그래서 나는 문학을 ‘말의 조각술’이라 부른다. 시인은 언어의 조각가이고, 평론가는 그 조각이 놓인 자리를 밝혀주는 등불이다.

평론이란 작품을 분석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 언어의 윤리적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작가가 언어로 인간의 내면을 건드릴 때, 평론가는 그 울림의 본질을 해석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감정의 지성이다. 다듬어진 평론은 작가의 세계를 돋보이게 하고, 거친 평론은 작품의 혼을 상하게 한다. 비평의 언어 또한 다듬어야 빛이 난다.

문학의 세계에서 ‘다듬는다’는 것은 완성의 과정이 아니라 존재의 성찰이다. 시인은 고통을 다듬어 언어로 만들고, 소설가는 현실을 다듬어 진실로 만든다. 평론가는 그 다듬음의 흔적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읽는다. 이때 언어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영혼이 숨 쉬는 통로가 된다. 언어를 다듬는다는 것은 곧 인간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오늘날 AI가 언어를 대신 쓰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언어에는 아직 체온이 없다. 인간의 언어는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상처와 눈물의 결정이다. 기계는 문장을 만들지만, 인간만이 말에 영혼을 심는다. 다듬어진 인간만이 다듬어진 말을 쓸 수 있고, 그 말만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므로 문학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품격에 달려 있다.

말은 빛이다. 그 빛은 스스로 나지 않는다. 다듬어야 비로소 빛난다. 다듬는다는 것은 오래 듣고, 오래 침묵하고, 오래 생각하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언어는 이 과정을 거쳐야 사람의 마음에 닿는다. 나는 믿는다. 언어가 정직해질 때, 인간은 더 따뜻해지고, 문학은 더 고결해진다고.

말을 다듬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스스로의 언어를 존중할 때, 타인의 말에도 귀 기울이게 된다. 그렇게 언어는 관계를 잇고, 인간은 그 말의 집에서 다시 태어난다. 다듬어진 언어의 빛이 우리 영혼의 창을 밝힌다.

말은 인간의 영혼이 머무는 방이다. 다듬어진 언어만이 사람을 살리고, 문학은 그 빛을 세상에 흩뿌린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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