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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2025.10.11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소년이 우연히 이 구절을 읽고 불도를 닦기 위해 산사로 들어갔다고 한다.

인생의 본질을 꿰뚫는 이 한 구절은 짧지만, 천년의 울림을 품고 있다. 사흘간 마음을 닦으면 천년의 보배가 되고, 백 년간 재물을 탐해도 하루아침에 티끌이 된다는 이 말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징하게 일깨운다.

세속의 사람들은 부와 권력을 좇으며 그것이 삶의 전부인 듯 여긴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 앞에서 그 모든 것은 허망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부귀영화는 바람처럼 스쳐가고, 재물은 손에 쥔 모래처럼 흩어진다. 한평생을 모은 금전도 한 줌 흙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때 남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마음의 빛이다.

‘삼일수심(三日修心)’이란 단순히 수도자의 고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을 다스리고, 성찰을 통해 본래의 자신을 회복하는 길이다. 하루라도 진심으로 마음을 닦는다면, 그것은 천년의 세월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 반면, ‘백년탐물(百年貪物)’은 인간이 세속의 욕망에 매몰될 때의 어리석음을 경계한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며 재물을 모아도, 죽음 앞에서는 한 줌의 먼지로 흩어질 뿐이다.

오늘의 세상은 괄목하게 발전했지만, 마음은 그만큼 병들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 오르려는 욕망이 인간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해 일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끝없는 경쟁의 굴레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삼일수심천재보’는 바로 이 시대에 던지는 경종이다. 마음의 평정이야말로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고귀한 재산임을 알려준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단순히 명상을 하거나 경전을 읽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의 작은 순간마다 자기를 다스리는 훈련이다. 화를 다스리고,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가진 것에 감사하고, 나눌 줄 아는 일—이 모든 것이 곧 마음의 수련이다. 그런 사람은 세속의 부를 가지지 않아도 삶이 풍요롭다. 반대로, 재산과 권력을 가진 자라도 탐심에 사로잡히면 그 마음은 항상 빈곤하다.

‘일조진(一朝塵)’—하루아침의 티끌이라는 말은 덧없음을 넘어서, 무상의 진리를 일깨운다. 인간의 생은 길어야 백 년, 그마저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죽음 앞에서 금은보화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고, 남는 것은 마음의 흔적이다. 그 흔적이 선한 이에게는 향기처럼 남고, 탐욕의 길을 걸은 자에게는 그림자처럼 사라진다.

삼일의 수심이 천년의 보배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영혼의 깊은 층을 밝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닦는 사람은 세상을 새롭게 본다.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의 욕심을 제어한다. 그에게는 어떤 재물도 부럽지 않다. 반면 탐욕의 길에 선 사람은 모든 것을 얻으려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인생의 진정한 부는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그것은 성찰의 시간 속에서 자라며, 사랑과 자비, 겸손과 평화로 완성된다. 우리가 매일 쌓는 재물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매일 닦은 마음은 세월을 넘어 향기를 남긴다.

오늘의 하루가 사흘의 수심으로 이어진다면, 그 마음의 등불은 천년 뒤에도 꺼지지 않으리라. 그러나 백 년의 탐욕은 단 하루의 바람에도 모래처럼 흩어지고 말리라.

―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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