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제1부 │ 부끄러움의 시작 1편 자화상 ㅡ 윤동주

제1부 │ 부끄러움의 시작 1편 자화상 ㅡ 윤동주 2026.01.29
제1부 │ 부끄러움의 시작 1편 자화상 ㅡ 윤동주

□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제1부 │ 부끄러움의 시작

1편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어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 ㅡ우물의 윤리, 바람의 운명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 〈자화상〉을 읽는 일은, 한 편의 시를 감상하는 일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심문하는 방식’을 목격하는 일이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끝까지 자신의 얼굴을 직접 내놓지 않는다. 그는 ‘나’라는 이름을 피하고, 자신을 “한 사나이”로 비껴 세운다. 이 거리두기는 수사가 아니라 윤리다.

윤동주의 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의심받는 존재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며, 그 의심은 결코 가벼운 감정의 흔들림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물은 이 시의 핵심 장치다. 우물은 단순히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들여다보는 순간, 인간은 자신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윤동주는 우물 속에 ‘사나이’만 넣지 않는다. “달”과 “구름”과 “하늘”과 “파아란 바람”과 “가을”을 함께 담는다. 이는 자연을 배경으로 장식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세계 전체 앞에 놓아 심문하려는 태도다. 한 인간의 얼굴은 개인의 심리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시대, 양심, 시간의 결이 그 얼굴을 함께 만든다. 윤동주가 우물 속 풍경을 먼저 펼쳐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을 자연 속에 숨기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더 투명해지려 한다.

이 시의 감정은 한 번도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미움, 연민, 다시 미움, 다시 그리움. 반복은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윤동주의 가치철학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는 자신을 쉽게 미워하지도, 쉽게 불쌍히 여기지도 못한다. 미움은 자기기만을 경계하는 칼날이고, 가엾음은 인간의 약함을 인정하는 숨결이다. 그러나 이 둘은 어느 쪽도 결론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시인은 우물에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또 떠난다. 그 왕복은 ‘해답을 찾기 위한 이동’이 아니라, ‘해답이 없음을 견디는 이동’이다. 윤동주의 작품 미의식은 바로 여기서 빛난다.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을 구원하지 않는다. 시는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 양심이 무너지지 않게 붙드는 마지막 손잡이다.

마지막에 남는 문장은 냉정하다.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미워해도 그대로, 가엾어해도 그대로, 그리워해도 그대로. 윤동주는 자기 성찰의 끝을 화해로 닫지 않는다. 자기 이해가 곧 성장이라는 흔한 도식을 거부한다. 그 대신 그는 ‘바뀌지 않은 자신’ 앞에 그대로 선다. 이것이 그의 엄격함이며, 동시에 그의 순결함이다. 순결은 깨끗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태도다.

서정주의 〈자화상〉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서정주에게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에서 바람은 풍경이 아니라 삶을 할퀸 역경과 시련의 총량이다. 그는 그 바람을 통과한 자신을 하나의 운명적 형상으로 제시한다. 바람이 거칠수록 인간은 단련되고, 그 단련은 시인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힘이 된다.

서정주의 자화상은 시련을 삶의 증거로 전환시키는 고백이며, 그 고백의 끝에는 ‘살아남은 자’의 기세가 서 있다. 반면 윤동주는 바람을 업적의 언어로 만들지 않는다. 윤동주의 바람은 자기 위안이 아니라, 자기 검열의 차가운 공기다. 그는 시련을 말하는 순간 그 시련이 스스로를 면죄하는 변명이 될 수 있음을 안다. 그래서 끝내 “나는 이렇게 버텼다”라고 말하지 않고, “나는 아직도 이렇다”를 남긴다. 서정주가 바람을 통해 자기를 세운다면, 윤동주는 우물을 통해 자기를 세우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세우는 대신, 자신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그 내려다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윤동주의 〈자화상〉은 ‘나’를 완성하는 시가 아니라 ‘나’를 쉽게 완성하지 않으려는 시다. 이 작품이 오래 남는 까닭은 여기 있다. 자기 확신의 시대에 그는 자기 의심을 남겼고, 자기 변명의 시대에 그는 자기 부끄러움을 남겼다. 우물 속 사나이는 결국 윤동주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미워하고, 불쌍히 여기고, 그리워하면서도 끝내 그대로인 얼굴. 윤동주의 자화상은 그 얼굴을 정직하게 비추는, 시대의 양심 거울이다.

■ 달삼과 오산학교 문예교사 청람과의 대화

ㅡ 왜 그는 끝내 자신을 설명하지 않았을까

다서메 교정 언덕의 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바람은 서늘했지만 성급하지 않았다.

달삼이 시집을 덮었다. “선생님, 이 시는 이상해요.”

청람이 웃지 않고 물었다. “어떤 점이.”

“읽고 나면 뭔가 정리된 느낌이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더 남아요. 미워했다가, 가엾어했다가, 그리워했는데도 아무 결론이 없어요.”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바로 윤동주가 의도한 자리다.”

“보통 자화상이면 자기를 이해하거나, 조금은 화해하지 않나요?”

“윤동주는 자기와 화해하는 일을 가장 마지막으로 미뤘다.”

달삼은 우물 속 사나이를 떠올렸다. “사나이는 계속 그대로 있잖아요. 미워해도, 불쌍해해도, 달라지는 게 없어요.”

청람이 말했다. “윤동주는 성찰이 곧 변화로 이어진다는 쉬운 믿음을 거부했다.”

“그럼 왜 다시 우물로 돌아갔을까요?”

“확인하려고.”

청람이 짧게 말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달삼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선생님, 이건 너무 자기한테 가혹한 태도 아닌가요?”

청람이 고개를 저었다. “가혹한 게 아니라, 정직한 거다.”

잠시 바람이 불었다.

달삼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근데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말해 봐라.”

“자화상이라는 제목을 보고 자꾸 다른 시가 떠올랐어요.”

청람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물었다. “누구지.”

“서정주 시인이요.”

청람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 드디어 거기까지 왔구나.”

달삼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서정주의 〈자화상〉에서는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고 하잖아요. 근데 그 바람을 그냥 자연으로 보면 너무 순한 해석 같아요.”

청람의 눈빛이 깊어졌다. “계속.”

“그 바람은 서정주가 살아오면서 겪은 궁핍, 폭력, 시련 같은 거친 역경 아닐까요? 삶의 대부분이 바람이었다는 뜻.”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다. 서정주의 바람은 산들바람이 아니다. 통과해야 했던 세계다.”

달삼은 말을 이었다. “그러면 서정주는 그 바람을 견뎌낸 자신을 하나의 완성된 얼굴로 내놓은 거잖아요.”

“그렇다.”

“근데 윤동주는 그런 말을 안 하네요.”

청람이 말했다. “윤동주는 자기 삶을 통과의 서사로 만들지 않았다.”

“왜요?”

“시련을 말하는 순간, 그 시련이 자기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달삼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니까 윤동주는 ‘이만큼 아팠으니 괜찮다’ 이 말을 끝내 하지 않은 거군요.”

“그래.”

청람은 우물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정주는 바람을 통과한 자의 얼굴이고, 윤동주는 아직 통과했다고 말하지 못하는 자의 응시다.”

달삼이 낮게 말했다. “그래서 윤동주의 시가 더 불편한가 봐요.”

“그렇다. 윤동주는 독자에게도 묻는다. ‘너는 정말 통과했느냐’고.”

잠시 침묵. 달삼이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이제 알 것 같아요. 윤동주는 자기를 미워한 게 아니라 자기를 서둘러 설명하지 않은 사람이네요.”

청람이 미소 지었다. “그래. 윤동주는 자기 삶을 이야기로 완성하지 않는 윤리를 선택한 시인이다.”

바람이 다시 불었다. 우물 속 달빛이 흔들렸다.

달삼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서정주의 바람은 삶을 증명하는 힘이었고, 윤동주의 우물은 삶을 증명하지 않으려는 거리였네요.”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전혀 다른 양심의 자리에 서 있다.”

윤동주(尹東柱, 1917.12.30 ~ 1945.2.16) 서정주(徐廷柱, 1915년 5월 18일~2000년 12월 24일)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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