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금
풍금 2025.04.11html풍금 BEGIN STRUCTURED_DATA END STRUCTURED_DATA 풍금
풍금은 오래된 교실 한구석에 남아 있는 시간의 악기다. 먼지 쌓인 건반에서도 누군가 손끝으로 누르면 맑은 소리가 난다. 바람을 불어 넣어 울리는 이 악기는, 그 자체로 사람의 숨과 맞닿아 있다. 풍금은 소리로 과거를 불러오고, 한 음 한 음이 기억의 문을 연다. 그래서 풍금 소리는 오래된 추억이자, 가슴속으로 조용히 파고드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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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시골학교를 둘러보던 달삼은 오래된 교실 한쪽에서 풍금을 발견했다.
거미줄이 살짝 얹힌 뚜껑을 열고, 먼지를 털어내며 조심스레 건반 하나를 눌렀다.
뚱— 하고 조금은 어긋난 음이 울려 퍼졌다.
“스승님, 이건 어릴 적 음악 시간에만 보던 풍금이에요. 소리도, 생김도 다 옛스럽네요.”
스승은 풍금 옆에 앉아 건반을 천천히 눌렀다.
소리가 삐걱거리긴 했지만, 그 안엔 낡지 않은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풍금은 말이야, 바람으로 울리는 악기지. 사람의 숨과 가장 닮은 소리야. 바람이 없으면 소리도 없고, 억지로 누르면 금방 삐걱거리거든.”
달삼은 두 손으로 조심스레 두세 음을 눌렀다.
어색한 화음이 퍼졌지만, 그 소리에는 묘한 정겨움이 있었다.
“스승님, 이상하게 이 소리 들으니까 마음이 차분해져요. 완벽하진 않지만… 사람 같아서 그런가 봐요.”
“그래, 풍금은 완벽한 소리를 내려는 악기가 아니야. 울리는 대로, 살아온 대로 들려주는 게 풍금이지. 누군가 그 건반을 눌러줄 때 비로소 살아나는 존재.”
달삼은 풍금 위에 손을 얹고 잠시 말을 멈췄다.
“이 소릴 들으니… 초등학교 때 음악 시간, 친구들과 따라 부르던 노래가 떠올라요. 선생님도, 옆자리 친구도… 모두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풍금은 소리로 기억을 꺼내주는 악기야. 한 음만 울려도, 오래전 얼굴이 떠오르지. 그래서 풍금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같아.”
달삼은 웃으며 물었다.
“스승님도 풍금 소리 들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세요?”
“있지. 오래전 떠나보낸 친구, 함께 노래하던 이들… 그들이 지금도 마음 한편에 살아 있는 건, 이런 소리 덕분이지.”
풍금은 말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는 낡은 친구처럼, 한없이 조용하고 묵묵했다.
“스승님, 요즘 아이들은 풍금을 몰라요. 소리도 촌스럽다고 하고요.”
“하지만 진짜 소리는 오래 가. 풍금은 빠르지 않지만, 느린 만큼 깊이 남지. 마음을 흔드는 건 결국 느리고 오래된 것들이야.”
달삼은 다시 건반을 눌렀다.
이번엔 조금 더 맑은 음이 울려 퍼졌다.
“이 소리도…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이 될 수 있을까요?”
스승은 조용히 말했다.
“그럼.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 풍금처럼 울릴 테니까.”
풍금은 낡았지만,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달삼은 배웠다. 완벽하진 않아도 누군가의 손끝에 의해 다시 울릴 수 있다면, 그건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라는 걸.
그날 풍금 소리는 바람을 품고, 기억을 흔들었고, 두 사람의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낡았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 그건 풍금만이 아니었다.
삶도, 사람도… 결국은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손끝 하나로 다시 울릴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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