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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20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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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든다.

경계도, 거리도, 때론 방향마저.

하지만 그 흐릿함 속엔 묘한 평화가 있다.

너무 선명해서 아팠던 것들이 안개 속에선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안개는 시야를 가리는 대신, 마음을 정리하게 만든다.

앞이 안 보일수록, 지금 있는 자리에 집중하게 된다.

안개는 결국,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풍경이다.

■□

이른 아침, 마을 언덕엔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달삼은 한 발자국 앞도 선명치 않은 길 위에서 조심스레 걸었다.

“스승님, 이럴 땐 어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발 아래는 길인데, 앞은 온통 흰 안개뿐이라…”

스승은 옆에서 차분히 말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길이 없는 건 아니야. 안개는 길을 감춘 게 아니라, 우리가 천천히 가도록 도와주는 거지.”

달삼은 잠시 멈춰 섰다.

“어릴 땐 안개가 무서웠어요. 괜히 뭔가 숨어 있을 것 같고, 길을 잃을까 봐 겁도 났고요.”

“그럴 수 있지. 안개는 불안을 데려오는 대신, 신중함을 가르쳐주지. 빠르게 가려던 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지.”

달삼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안개 너머로 새소리, 바람 소리, 자신의 숨소리까지 또렷이 들려왔다.

“스승님, 시야는 좁아졌는데… 이상하게 감각은 더 넓어진 것 같아요.”

“그게 안개의 힘이지. 보이지 않으니 듣게 되고, 흐리니 더 느끼게 되는 것. 혼란 같지만 실은 집중이야.”

두 사람은 안개 속을 천천히 걸었다.

불편한 듯했지만, 그 속엔 오히려 묘한 안정감이 있었다.

“스승님, 사람 사이도 안개 같은 게 필요한 걸까요? 너무 선명하게 서로를 보려 하지 말고, 흐릿한 채로 받아들이는…”

스승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다. 모든 걸 다 알려고 하면 오히려 멀어져. 적당한 흐림은 관계를 편하게 해. 모른다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지.”

달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안개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부담 없이 머물 수 있는…”

“그럼 먼저 자신에게 안개를 허락해야 해. 실수도, 망설임도, 불완전함도 감싸안는 연습. 그게 흐릿하지만 따뜻한 사람이 되는 길이지.”

안개는 선명함을 포기하게 만들지만, 그 대신 깊이를 주는 풍경이다.

달삼은 배웠다. 흐림 속에서도 길은 있다는 걸.

때로는 분명하지 않기에 더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고, 조용히 자신의 걸음을 믿게 되는 시간을.

그날 안개 속을 걷던 두 사람의 대화는, 자욱했지만 선명한 울림으로 남았다.

가끔은 흐림이야말로, 진심이 머무는 자리가 된다. 공유하기게시글 관리청람 김왕식 PostListinCategory - START ‘말의 온도와 삶의 결 > 스승과 제자의 대화 - 실체의 추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보슬비(0)2025.04.13창문(0)2025.04.12들길(0)2025.04.12흑백사진(2)2025.04.12벽시계(0)2025.04.12 PostListinCategory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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