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비
보슬비 2025.04.13html보슬비 BEGIN STRUCTURED_DATA END STRUCTURED_DATA 보슬비
보슬비는 큰 소리 없이 내린다. 우산이 없어도 잠시 맞고 있을 수 있고, 걸음을 멈추게 하지 않지만, 어느새 옷깃을 적신다. 그렇게 조용히 스며드는 비. 그래서 보슬비는 위로처럼 내린다. 쏟아붓지 않고, 다그치지 않으며, 가볍게 닿는 마음. 삶에도 보슬비 같은 순간이 있다. 말없이, 그러나 분명히 따뜻함을 남기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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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하늘 아래, 달삼은 작은 처마 밑에 서 있었다.
빗방울은 크지 않았지만, 길 위엔 얇은 물결이 번져가고 있었다.
“스승님, 이 정도면 우산 없이도 걸을 수 있겠어요. 오히려 시원하고 좋네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슬비는 참 사람 같아. 조용히 다가와 아무 말 없이 젖게 만들지. 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꽤 깊이 스며든다는 걸 알게 돼.”
달삼은 조심스레 빗방울을 손등에 받아보았다.
“큰비는 기억에 남지만, 보슬비는 잘 떠오르지 않아요. 그런데 묘하게… 이런 날이 오래 기억되기도 해요.”
“그건 보슬비가 마음을 가라앉히는 힘이 있기 때문이지. 감정을 자극하기보다, 감정을 다독이는 비. 그렇게 잔잔한 게 오히려 마음을 흔들지.”
조용한 골목, 빗소리도 속삭이는 듯했다.
달삼은 말없이 그 소리를 듣다 말했다.
“스승님, 누군가의 말이 크고 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작은 말 한마디, 조용한 위로 한 줄이 더 힘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보슬비 같은 사람이 귀한 거야. 떠들지 않아도, 드러나지 않아도 곁을 채워주는 존재. 세상엔 그런 사람 하나만 있어도 마음이 덜 외로워지지.”
달삼은 걸음을 옮겨 천천히 빗속으로 나섰다.
신발이 축축해졌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스승님, 저도 누군가에게 보슬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무겁지 않게, 다정하게 닿는 그런 사람.”
스승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마음이면 이미 반은 닿은 거야. 보슬비는 먼저 와 닿으려 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비.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마음에 들어오는 방식이지.”
달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살다 보면 폭우 같은 일도 많지만, 그 사이사이 보슬비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너무 지치지 않게 쉬어가는 시간 같거든요.”
스승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말했다.
“비의 크기가 아니라, 남긴 물기의 깊이로 기억되는 게 있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란다.”
보슬비는 말이 없고, 강하지 않다.
하지만 그 조용한 빗방울이 지나간 자리엔 언제나 다정한 흔적이 남는다.
달삼은 배웠다. 큰 위로가 아니라, 작은 마음 하나가 사람을 살린다는 걸.
그날 내린 보슬비는 우산도 거절하지 않았고, 달삼의 마음에도 조용히 머물렀다.
잔잔하지만 결코 잊히지 않는 감촉으로. 공유하기게시글 관리청람 김왕식 PostListinCategory - START ‘말의 온도와 삶의 결 > 스승과 제자의 대화 - 실체의 추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노을(0)2025.04.13윤슬(0)2025.04.13창문(0)2025.04.12안개(0)2025.04.12들길(0)2025.04.12 PostListinCategory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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