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막걸리 2025.04.14html막걸리 BEGIN STRUCTURED_DATA END STRUCTURED_DATA 막걸리
막걸리는 탁하다. 투명하지 않아서 더 사람 같다. 한 모금 넘기면 구수한 맛이 퍼지고, 끝엔 은근한 단맛이 남는다. 그래서 막걸리는 노동의 땀과 웃음이 섞인 술이다. 절제보다 다정이 먼저고, 체면보다 속내가 먼저다. 막걸리는 취하기 위해서보다 함께 있기 위해 마시는 술이다. 고단한 하루 끝, 누구의 말없이 건넨 잔에, 삶의 위로가 묻어 있다.
■□
해가 기운 오후, 스승과 달삼은 마을 회관 옆 평상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엔 흰 막걸리 한 병과 찬안주 몇 가지가 놓여 있었다.
달삼이 컵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스승님, 맑은 술보다 이 탁한 막걸리가 더 정겹게 느껴져요.”
스승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맑은 건 보기엔 좋지만, 속 깊은 맛은 탁한 데 있지. 막걸리는 말이야… 사람 같아. 처음엔 뻣뻣하지만, 마주 앉아 한 잔씩 나누다 보면 말랑해지지.”
달삼은 한 모금 넘기고 눈을 찡그렸다.
“조금 시큼하네요. 그런데 곧 구수한 맛이 올라와요. 어릴 적 아버지가 논일 끝에 들고 오시던 냄새 같기도 하고요.”
“그건 너의 기억이 술보다 먼저 취한 거지.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 흐르는 향이야. 노곤한 땀, 해 질 녘 바람, 무심한 안주 한 접시… 그 모든 게 어우러질 때 진짜 맛이 나지.”
달삼은 웃으며 말했다.
“막걸리는 꼭 함께 마셔야 더 맛있는 술 같아요. 혼자 마시면 좀 서운하고.”
“맞아. 막걸리는 위로의 술이야. 속상한 날도, 기쁜 날도, 말없이 잔을 부딪치면 그걸로 충분한 술. 그래서 막걸리는 사람을 먼저 보게 하지.”
달삼은 막걸리를 다시 따르며 물었다.
“스승님, 이 술은 꼭 인생 같아요. 탁하고, 시고, 달고… 그러면서도 자꾸 생각나는.”
스승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말 참 좋다. 인생도 처음엔 낯설고 떫지만, 한 번 삼켜내고 나면 은근한 향이 남지. 그리고 그 향이, 누구와 함께했는지로 기억되는 거야.”
저물어가는 하늘 아래, 두 사람은 말없이 잔을 비우고 있었다.
달삼은 천천히 말했다.
“스승님, 전 너무 완벽하려고 애쓰다가 자꾸 지치는 것 같아요.”
“그럼 오늘은 네 마음도 막걸리처럼 그냥 내려놔. 맑아지려 애쓰지 않아도 돼. 탁해도 괜찮아. 오히려 그게 더 진실하니까.”
막걸리는 사람을 닮았다.
맑지 않아서 좋고, 탁해서 따뜻하다.
달삼은 배웠다. 인생은 때때로 시고, 때때로 단맛이 남지만, 함께 나누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그날의 막걸리 한 잔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다정히 건네는 인사였다.
마지막 잔을 비우며 두 사람은 웃었다.
조금은 탁한 하루였지만, 그것마저도 참 괜찮은 맛이었다. 공유하기게시글 관리청람 김왕식 PostListinCategory - START ‘말의 온도와 삶의 결 > 스승과 제자의 대화 - 실체의 추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종이비행기(0)2025.04.14빈대떡(0)2025.04.14엿장수(0)2025.04.14시골이발소(0)2025.04.14누룽지(0)2025.04.14 PostListinCategory - END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