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5일장

5일장 2025.04.14

html5일장 BEGIN STRUCTURED_DATA END STRUCTURED_DATA 5일장

오일장은 다섯 날마다 되살아나는 삶의 무대다. 어디선가 트럭이 들어서고, 좌판이 펼쳐지고, 사람과 물건과 말소리가 장을 채운다. 팔고, 사고, 부르고, 깎고—삶의 가장 구체적인 에너지가 그 안에 있다. 오일장은 장날 하루만 살아도 충분한 풍경이다. 어쩌면 인생도 이와 같다. 다섯 날 준비해 하루 피어나는 것. 그러니 사는 건, 장날처럼 준비하고 기다리는 일이다.

■□

달삼은 시골 장터 어귀에 멈춰 섰다.

“스승님, 장이 섰네요. 오일장… 참 오랜만이에요.”

스승은 손등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말했다.

“그래, 장은 늘 그 자리에 없으면서도, 정해진 날이면 정확히 돌아오지. 그게 오일장의 신기한 점이지.”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활기가 몰려왔다.

장수들의 고함, 지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어딘가선 막걸리 한 잔 권하는 소리까지.

달삼은 손수건을 쓰고 채소를 파는 할머니 앞에 멈춰 섰다.

“이분들, 다섯 날마다 여기 와서 자릴 펴고, 다시 돌아가고… 그 반복이 어쩐지 감동적이에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는 건 늘 반복이지. 하지만 장은 매번 다르지 않니? 날씨, 사람, 표정, 흥정… 늘 비슷해 보여도 오늘은 오늘만의 풍경이 있어.”

달삼은 커다란 삶은 접시에 가득 담긴 나물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여기선 누구도 빠르게 살지 않네요. 걸음도 천천히, 말도 느릿하게.”

“오일장은 시간의 반대편이야. 바쁠 이유가 없거든. 다섯 날 기다렸으니, 오늘은 천천히 누리는 거야.”

둘은 순대국이 끓는 포장천막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달삼은 국물 한 숟갈을 뜨며 말했다.

“스승님, 이 장터엔 사람 냄새가 나요. 땀 냄새, 풀 냄새, 튀김 냄새까지… 싫지 않아요. 되레 정겨워요.”

“장날의 냄새는 삶의 냄새지. 꾸며지지 않고, 속이지 않는 냄새. 도시의 향수보다 오래가는 향이야.”

장터 끝에서 꽹과리 소리가 울리고, 붕어빵 굽는 냄새가 따라 퍼졌다.

달삼은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 저도 언젠가 제 삶을 오일장처럼 꾸릴 수 있을까요? 너무 오래 조용하다가, 하루쯤은 활짝 피어나는 그런 삶.”

스승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 넌 이미 준비하고 있잖니. 다섯 날 준비해서 하루 피우는 삶… 그건 허무가 아니라, 가장 근면한 기다림이지.”

오일장은 매일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정해진 날엔 누구보다 활기차게 열린다.

달삼은 배웠다. 인생은 매일이 장날이 아니어도 괜찮고, 때로는 기다리는 날들이 삶을 더 깊게 만든다는 걸.

그날, 장터 한복판에서 그는 다짐했다.

나의 삶도 오일장처럼, 꾸준히 준비하고, 충만히 살아내자고. 공유하기게시글 관리청람 김왕식 PostListinCategory - START ‘말의 온도와 삶의 결 > 스승과 제자의 대화 - 실체의 추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검정고무신(4)2025.04.14감나무(0)2025.04.14종이비행기(0)2025.04.14빈대떡(0)2025.04.14막걸리(0)2025.04.14 PostListinCategory - END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