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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

검정고무신 202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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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은 유행도, 이름도 없이 아이들의 발에 묵묵히 붙어 다녔다. 흙길을 달리고, 개울을 건너고, 때론 벗겨져도 좋았다. 낡고 투박했지만 자유롭고, 무엇보다 튼튼했다. 그래서 검정고무신은 단순한 신발이 아니었다. 그건 한 시대를 견딘 발의 기억이자, 가난하지만 웃을 수 있었던 날들의 상징이었다. 닳아도, 늘 함께였던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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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따가운 날, 달삼은 마을 헌 물건 가게 앞에서 오래된 검정고무신 한 켤레를 발견했다.

먼지가 잔뜩 쌓인 신발을 들고 그는 스승을 불렀다.

“스승님, 이거 보세요. 어릴 적 진짜 이 신만 신었잖아요.”

스승은 손바닥으로 고무신을 털며 말했다.

“검정고무신… 참 고단한 아이들의 발을 다 견뎌준 신발이지. 비 오는 날에도, 눈 오는 날에도, 학교도, 논두렁도 다 같이 다녔으니까.”

달삼은 고무신을 다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신발 보면 웃을 거예요. 촌스럽다고. 하지만 저는 이 신을 신던 날들이 더 따뜻하게 느껴져요.”

“그건 네 마음이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뜻이겠지. 검정고무신은 가난해서 신은 게 아니라, 자유로워서 신은 신발이었거든.”

달삼은 먼 길을 함께한 듯한 닳은 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고무신은 늘 벗겨졌죠. 뛰다 보면 한 짝은 저 멀리 날아가 있고…”

“그만큼 뛰었고, 웃었고, 놀았다는 증거야. 비싼 신발은 조심히 신지만, 검정고무신은 마음껏 놀아도 괜찮은 신발이었으니까.”

달삼은 천천히 말했다.

“스승님, 가끔은 요즘 삶이 너무 조심스럽고 계산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어릴 땐 잃어도 괜찮았고, 흙이 묻어도 괜찮았는데…”

“지금도 괜찮아. 다만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이지. 삶은 닳고 때 묻어야 진짜 살아지는 거야. 검정고무신처럼.”

달삼은 고무신 한 짝을 다시 손에 쥐며 말했다.

“저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닳고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스승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럼. 번들거리지 않아도, 네 발을 다 지켜줄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좋은 인연이지. 낡아도 좋은, 오래도록 좋은.”

검정고무신은 말없이 따라다녔다.

벗겨져도 다시 신고, 닳아도 끝까지 함께했던 그 신발처럼, 사람 사이에도 그런 존재가 있다.

달삼은 배웠다. 반짝이는 것보다 오래 견디는 것이 더 따뜻하다는 걸.

그날 낡은 고무신을 들고 그는 다짐했다.

누군가의 발걸음을 끝까지 지켜주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공유하기게시글 관리청람 김왕식 PostListinCategory - START ‘말의 온도와 삶의 결 > 스승과 제자의 대화 - 실체의 추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새참(2)2025.05.31등잔불(0)2025.04.14감나무(0)2025.04.145일장(2)2025.04.14종이비행기(0)2025.04.14 PostListinCategory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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