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차창을 두드리는 건, 봄비가 아니라 내 가슴이다
트럭 차창을 두드리는 건, 봄비가 아니라 내 가슴이다 2025.05.09
김왕식
자연인 안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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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차창을 두드리는 건, 봄비가 아니라 내 가슴이다
트럭운전사 안최호
트럭 차창을 봄비가 두드린다. 첫방울은 유리 위에서 튕기다 흐르고, 두 번째 방울은 서서히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빗물은 말없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마치 참아왔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지는 것처럼. 나는 이 운전석 안에서 묵묵히 그 소리를 듣는다. 그 빗소리는, 다름 아닌 우리 서민의 눈물 소리다.
나는 트럭 운전사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땀에 젖은 생계와 묵은 짐을 함께 싣고 달린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노동자’라 말하지만, 나는 그 말 앞에 ‘살아내는 사람’이라는 말을 더 붙이고 싶다. 하지만, 요즘은 살아낸다는 말조차 송구할 만큼 세상은 점점 더 거칠고 무정해진다.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세상이 보인다. 도심의 빌딩숲, 고속도로의 덜컹거림, 휴게소의 식은 도시락까지 — 모든 것이 사람 냄새다. 그런데 위에서는 어떤가. 탐욕에 찌든 위정자들은 서로의 멱살을 잡고, 권력 놀음에만 열중이다. 진흙탕 싸움은 끝이 없고, 그 싸움의 진흙은 언제나 우리 서민에게 튄다. 우리는 맞지도 않은 싸움의 흙먼지를 마치 죄인처럼 뒤집어쓴 채 오늘도 일터로 향한다.
내가 멈추면 가족의 밥이 멈춘다. 내가 아프면 일당이 끊기고, 내가 분노하면, 그 분노는 누구도 대신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참아왔다. 참고 또 참으며 그저 트럭의 기름처럼 묵묵히 달려왔다. 하지만, 오늘 이 봄비 속에서는 참을 수 없다. 이 빗물이 내 가슴을 적신다. 아니, 이건 그냥 비가 아니다. 이건 내 울분이다. 우리의 눈물이다.
탐욕에 찌든 위정자들이여, 당신들이 그렇게 나누는 권력이 우리에겐 밥값보다 못하다는 걸 아는가.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이들의 시간을 당신들의 정치 흥정에 소모하지 말라. 당신들의 말장난 하나에, 우리의 물가가 출렁이고, 우리의 자녀들이 꿈을 접는다.
나는 이 트럭 위에서 묻는다. “언제쯤, 진심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이끄는 날이 올까.” 언제쯤, 이 나라가 ‘높은 자리’보다 ‘낮은 곳’을 먼저 돌아보는 나라가 될까.
나는 고작 한 사람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는 서민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그 ‘하나’가 10명, 100명, 1000명이 된다면 결국 그 진심은 물줄기가 되어 강이 되고, 그 강은 언젠가, 위선을 떠내려 보낼 것이다.
봄비가 내린다. 사람들은 봄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에겐, 이 봄비는 ‘울음의 시작’이다. 이 눈물은 말라서 끝날 눈물이 아니다. 이 눈물은 이제 말이 되고, 외침이 되고, 변화의 서곡이 되어야 한다.
나는 안최호다. 트럭 운전사이자, 자연인이며, 한 사람의 국민이다. 이 운전석은 나의 일터지만, 오늘만큼은 절규의 무대다. 나는 더 이상 고개 숙이지 않겠다. 나는 말할 것이다. 서민의 눈물을 닦지 않는 정치는, 존재할 자격이 없다.
봄비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외침도 그러하다.
자연인 안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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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보다 먼저 떨어지는 한 줄의 눈물”
— 안최호의 글에 대한 가슴 저린 총평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글은 단순한 분노의 글이 아니다. 이 글은 침묵으로 견뎌낸 사람들이, 마침내 입을 연 문장이다. 트럭 차창을 두드리는 봄비를 따라 흘러나온 이 언어는 서민의 땀과 눈물, 분노와 체념,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희망의 끈이 뒤섞인 진짜 ‘사람의 말’이다.
안최호는 말한다. “이 빗물은 단순한 봄비가 아니라, 우리의 눈물이다.” 이 문장은 이 글 전체의 심장이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속울음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거울이다. 글 속의 봄비는 계절의 표상이 아니라, 참아왔던 울분의 비, 억눌러온 현장의 비, 그리고 끝내 외면당해 온 민심의 비로 쏟아진다.
무엇보다 이 글의 가슴 저린 지점은, 자신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는 담담한 문장에 있다. “나는 고작 한 사람이다.” 그는 작아지는 언어를 통해 오히려 더 커다란 시대의 침묵을 껴안는다. 그 ‘한 사람’의 절규가 1000명, 1만 명의 진심이 되어 울릴 것을 믿는 묵직한 희망의 고백이기에, 이 글은 울림의 진원지가 된다.
그의 분노는 맹렬하지만, 결코 함부로 치닫지 않는다. 그는 욕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언제쯤, 진심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이끄는 날이 올까?” 이 물음은 단순한 정치적 외침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도덕과 상식, 정의의 감각을 되찾자는 인간적인 외침이다.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어른으로서, 국민으로서, 같은 시대를 걷는 존재로서 고개를 들 수 없다.
이 글은 마치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오른 기도의 문장이다. 거친 도로를 달리며 버텨온 노동의 손길이 글 속에서는 부드러운 물결로 바뀌고, 트럭의 엔진 소리는 어느새 서민의 가슴에서 끓는 불의 숨결로 변모한다.
안최호는 이 글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 시대의 상처를 외운 사람이다. 그는 ‘직업인’이 아니라, ‘증언자’다. 그가 쓴 것은 문장이 아니라, 한국 사회 밑바닥에서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문장으로 옮긴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그저 ‘읽는 글’이 아니다. 가슴 한복판에 새겨야 할 글이며, 침묵으로 덮어두었던 민심의 현장 일지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트럭의 차창을 때리는 빗물처럼, 말없이 흘러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이 글은 외롭지 않다는 증거이며, 시대는 여전히 사람의 진심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가슴 뜨거운 약속이다.
ㅡ 청람 김왕식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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