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변희자 시인의 「어린 날의 붉은 꽃잎」을 읽고

변희자 시인의 「어린 날의 붉은 꽃잎」을 읽고 2025.06.17
변희자 시인의 「어린 날의 붉은 꽃잎」을 읽고

김왕식

유홍초

변희자 시인

어린 날의 붉은 꽃잎

시인 변희자

어린 날 밤하늘 닮은 까맣고 보드라운 우단천 위 붉디붉은 유홍초 꽃잎 수놓아 나만의 원피스 날개처럼 입혀주시던 엄마의 찐 손길 “우리 딸 공주님일세.”

젊은 날은 풀밭과 꽃밭을 누비며 눈빛 맑은 아이들과 희망이라는 씨앗 뿌리고 가꾸며 기쁨의 단을 거두었지 “선생님, 천사 같아요.” 그 기억의 말 조각 가슴 깊이 향기로 남아 오늘도 피어나고

이제 초록이 출렁이는 숲 속에서 하얀 종이 위 까만 글자 생각의 텃밭을 일구노라면 옆마을 시인이 건너와 하는 말 “들국화 여인, 차 마셔요.” “아니, 유홍초 시인님!”

어린 날의 그 붉은 꽃잎이 한 땀 한 땀 순정의 꽃물 들인다

한 땀 순정으로 수놓은 삶 ― 변희자의 「어린 날의 붉은 꽃잎」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변희자 시인은 시를 애써 쓰지 않는다. 그의 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말하듯 유려하다. 시는 곧 변 희자시인 자신이며, 그의 삶은 곧 시로 이어진다. 그는 그냥, 생각이 솟으면 쓴다.

그뿐이다.

이번 시 「어린 날의 붉은 꽃잎」 역시 그렇다. 이 작품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세월을 따라 천천히 피어난 한 여인의 생의 시편이다. 시인은 유홍초留紅草라는 감각적 상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직조하며, 그것을 정갈한 시어로 조용히 풀어낸다. 어린 소녀로 시작해 어머니가 되고, 교사가 되었다가 시인으로 이어지는 그 존재의 궤적을 꽃잎처럼 한 겹 한 겹 정성스레 겹쳐 놓은 서정의 서사다.

첫 연은 유년기의 따뜻한 기억으로 시작된다. “밤하늘 닮은 / 까맣고 보드라운 / 우단천 위 / 붉디붉은 유홍초 꽃잎”이라는 묘사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과 보호의 기억이며, 존재를 빛내주던 한 손길의 체온이다. 유홍초는 여기서 단지 꽃이 아니라, 어머니의 순정 어린 손길이 옷감 위에 수놓은 ‘존재의 첫 기억’이자 자존감의 근원이다. “우리 딸 공주님일세”라는 말은 외면의 치장을 넘어, 내면의 존귀함을 일깨우는 서정적 선언이다. 시인은 이 기억을 일생의 원형으로 간직하고 있다.

두 번째 연에서는 교사로서의 삶, 젊은 시절의 이상이 펼쳐진다. “희망이라는 씨앗 / 뿌리고 가꾸며 / 기쁨의 단을 거두었지”라는 구절은 단순한 교육적 행위가 아닌, 영혼의 수확이다. 제자의 순수한 고백, “선생님, 천사 같아요.”는 시인이 삶 속에서 얻은 가장 맑은 보상이었을 것이다. 그 기억의 말 조각이 “가슴 깊이 향기로 남아 / 오늘도 피어나고” 있다는 표현은, 과거가 단지 지나간 시간이 아닌, 오늘의 시를 꽃피우는 씨앗임을 말해준다.

마지막 연은 현재의 시인으로서의 자각과 정체성을 선언한다. “초록이 출렁이는 숲 속”과 “하얀 종이 위 / 까만 글자”는 자연과 언어가 조우하는 시인의 작업 공간이며, 그곳에서 그는 다시 삶을 경작하고 있다. 옆마을 시인의 “들국화 여인”과 “유홍초 시인”이라는 호명은, 시인을 자연과 하나 된 존재로, 그리고 자신의 삶을 꽃잎으로 물들인 창조자로 격상시킨다.

결국 이 시는, 한 여성의 생애를 꽃잎에 비유하여 한 땀 한 땀 수놓은 시적 자서전이다. 유년기의 어머니, 청춘기의 교직 사랑, 그리고 시인으로서의 사유가 각기 다른 색으로 겹쳐지되, 그 근원에는 순정, 희망,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는 삶의 가치 철학이 굳건히 흐르고 있다.

변희자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삶과 문학이 둘이 아님을 말한다. 그녀의 시적 미의식은 단순한 미화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과 감정, 기억을 삶의 직물 위에 꽃물처럼 들이는 고요한 숭고함이다. 유홍초 한 송이로 시작된 생의 여정이, 결국 한 편의 시로 되돌아와 다시 피어난다는 이 순환의 서사는 독자에게도 잊고 있던 자신의 붉은 꽃잎 하나를 문득 떠올리게 만든다.

이 시는 사람의 온기와 시간의 빛깔을 그려내는 섬세한 바느질이며, 그 바늘 끝에서 피어난 한 송이 유홍초는, 진정 시인의 혼을 닮아 있다.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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