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시인 青民 박철언 ㅡ다시 부르는 4월의 노래 ㅡ청람

시인 青民 박철언 ㅡ다시 부르는 4월의 노래 ㅡ청람 2026.04.14
시인 青民 박철언

ㅡ다시 부르는 4월의 노래 ㅡ청람

ㅡ다시 부르는 4월의 노래 ㅡ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다시 부르는 4월의 노래

시인 青民 박철언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누가 추억과 욕정이 뒤섞인 고통스러운 계절이라 했던가

냉기와 죽음으로 뒤덮인 땅에서 부활과 소생을 노래하는 4월엔 목련, 벚꽃, 진달래 야단스레 피는데

몸과 마음, 도덕도 휘청이는 황폐한 시대지민 자꾸 옹색해지려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자 곁뿌리 자르고 여행이라도 훌쩍 떠나보자

삐걱거리는 세월의 수레바퀴에서 내려 잃어버린 사랑과 마비되어 가는 감정에 뜨거운 호흡으로 생기 가득 불어넣자

잿빛으로 기울어가는 나이라지만 청춘의 상실을 슬퍼하지만 말고 환희의 4월을 다시 힘차게 노래하자

다시 노래하는 삶의 자리 —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와 삶의 미의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법과 규범의 언어로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에게 시는 다른 길이다. 판단과 결론의 자리에서 물러나, 바라보고 머무르는 자리로 옮겨가는 일이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는 그 조용한 이동의 결과다. 오래 눌러 두었던 숨이 비로소 자신의 리듬을 찾은 순간이다.

그의 삶은 단단한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공직의 자리는 늘 균형과 절제를 요구한다. 그 속에서 감정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에 이르러 그는 감정을 가두지 않는다. 한 걸음 물러서서 삶을 바라보고, 스스로를 내려놓는다. 그 내려놓음은 가벼운 포기가 아니라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다시 부르는 4월의 노래》의 첫머리는 익히 알려진 인식을 불러낸다. 여기서 떠오르는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은, 본래 잠들어 있던 생명을 흔들어 깨우는 계절의 긴장을 담고 있는 말로 읽혔다. 이러한 맥락을 떠올리는 독자에게는, 시인이 그 표현을 보다 또렷한 대조의 자리에서 받아들이며 자신의 시선으로 다시 풀어내고자 한 의도가 느껴진다. 이 지점은 해석의 결을 달리하는 여지를 남기며, 시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는 자리로 이어진다.

그의 시선은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이미 굳어진 의미를 따르기보다, 자신의 체험으로 계절을 다시 부르려 한다. 4월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의 자리로 옮겨간다. 목련과 벚꽃, 진달래는 풍경을 넘어 살아 있음의 징표가 된다. 피어남은 장식이 아니라 회복의 방식이다.

시의 중심에는 벗어나려는 의지가 놓여 있다. 좁아지는 테두리에서 빠져나오고, 오래 굴러온 수레에서 내려서려는 결단이다. 이는 익숙함에 머물지 않으려는 내면의 움직임이다. 긴 세월 책임을 견뎌온 사람이기에 이 말은 가볍지 않다.

그는 상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사랑과 식어가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다. 살아 있음은 남아 있는 것을 살려내는 힘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말하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지나온 시간에 묶이지 않고, 남아 있는 시간을 향해 나아간다. 하여, 그의 시는 뒤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를 품는다.

시인 청민의 시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남겨야 할 것만 두는 절제 속에서 힘을 얻는다. 독자를 이끌기보다 스스로 걸어가게 만든다.

이 시가 전하는 뜻은 단순하다. 삶은 지나간 시간의 그림자가 아니라, 지금 다시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사실이다.

ㅡ 청람 김왕식

□ 청민 박철언 시인의 망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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