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꽃 아래, 밥 한 숟갈의 기억 ㅡ 황성구 시인
흰 꽃 아래, 밥 한 숟갈의 기억 ㅡ 황성구 시인 2026.05.06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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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를 보며
시인 황성구
내 어릴 적 마실 어귀에 서 있던 커다란 이팝나무 한 그루
눈 내린 듯 흰 꽃들이 가지마다 소복이 쌓여 나는 가끔 그 앞에 서 있었다
쌀밥 같았다 유년 시절 그리도 귀하던 도시락 뚜껑을 살짝 열어
식어 빠진 혼분식 장려 보리밥을 억지로 삼키던 점심시간 선생님 발자국 소리에
심장이 먼저 들키던 날들 나는 작은 거짓말로 ‘밀빵으로 분식합니다’ 하며 슬쩍 넘기고는 몰래 감춰둔 쌀밥 몇 숟갈을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처럼 천천히 아껴 먹었다
늘 집에서 먹던 꽁보리밥은 그래도 따뜻했지만 도시락 속 밥은 왜 그리도 차갑고 단단했는지
그때는 몰랐다 그 차가움마저 어머니의 따스한 온기였다는 것을
지금 이팝나무 아래 서니 하얀 꽃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마치 오래된 흰 밥알처럼
내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나는 문득 그날의 차가운 보리밥 생각에 조용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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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꽃 아래, 밥 한 숟갈의 기억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기억은 때로 혀끝이 아니라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황성구 시인의 「이팝나무를 보며」는 한 그루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출발하지만, 그 안에는 유년의 결핍과 사랑이 고요하게 겹쳐져 있다. 이 작품의 미덕은 과장 없이 사소한 장면을 통해 삶의 깊이를 드러내는 데 있다. 시골 마실 어귀에 서 있던 이팝나무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한 시대의 생활과 감정이 스며든 자리다.
기성세대에게 이 시는 낯설지 않다. 읽는 순간, 누구나 한 번쯤 지나온 점심시간의 공기와 도시락의 온도를 떠올리게 된다. 공감하지 않는 이가 드물 만큼, 그 시절의 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과장이 아닌데도 생생하고, 설명하지 않는데도 또렷하다. 마치 각자의 기억 속에 있던 장면을 그대로 불러내는 듯한 밀도다.
그 시절 교실 풍경 하나가 자연스레 겹쳐진다. 난로 위에 도시락을 겹겹이 쌓아 올려두면, 맨 위 것은 적당히 데워지고, 맨 아래 것은 어김없이 숯검댕이처럼 새까맣게 변하곤 했다. 뚜껑을 열기 전부터 이미 승부는 정해져 있었지만, 그마저도 웃음거리였다. 까맣게 눌어붙은 누룽지를 긁어먹으며, 이빨 빠진 아이들이 히죽거리던 얼굴은 지금 생각해도 정겹다. 가난했지만 어쩐지 웃음이 먼저 나던 시간이었다.
“눈 내린 듯 흰 꽃”이 “쌀밥 같았다”로 이어지는 순간, 자연은 곧바로 삶의 현실과 맞닿는다. 이 전환은 설명 없이 이루어지지만 정서의 밀도를 단숨에 끌어올린다. 꽃은 밥이 되고, 밥은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이 짧은 연결 속에 어린 시절의 결핍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심부에서는 혼분식 장려 시절의 기억이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식어버린 보리밥의 감촉, 선생님의 발자국 소리, 작은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던 순간들이 절제된 언어로 살아난다. 특히 몰래 감춰둔 쌀밥을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처럼” 아껴 먹는 장면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어린 존재가 지켜낸 마지막 자존의 표정처럼 읽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어떻게 이토록 생생하게 그 시절을 되살려냈는지에 대한 놀라움이.
이 시의 깊이는 후반부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과거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의 결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드러난다. 차갑고 단단했던 도시락 속 밥이 사실은 어머니의 온기였다는 인식은 설명을 넘어서는 울림을 만든다. 결핍의 기억이 사랑의 기억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이팝나무는 단순한 회귀가 아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흰 꽃잎이 오래된 밥알처럼 어깨 위에 내려앉는 장면은 현재와 과거를 하나로 잇는다. 이 장면은 소리 없이 깊이 스며들며, 읽는 이의 내면에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황성구 시인의 시는 크지 않은 이야기로 오래 머문다. 흰 꽃 한 그루가 밥이 되고, 밥이 다시 사랑으로 남는 흐름 속에서 삶의 본질이 담담하게 드러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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