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이육사를 다시 부르며 ㅡ청람 김왕식

이육사를 다시 부르며 2026.05.17
이육사를 다시 부르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쇠창살에 새긴 푸른 조국 ― 이육사를 다시 부르며

청람 김왕식

한 인간이 자기 이름을 버린다는 것은 대개 절망 끝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어떤 이름은 버림으로써 오히려 하나의 민족이 된다

이육사

그 이름은 본래부터 이름이 아니었다

대구형무소 차가운 감방에서 그에게 붙여진 수인번호 264

쇠창살이 인간을 숫자로 부르던 시대 조국을 빼앗긴 청년은 끝내 그 모욕마저 자기 깃발로 바꾸어 버렸다

264번 그 숫자는 이후 한 사람의 죄수가 아니라 나라 잃은 민족의 상처가 되었고

마침내 일제의 감옥 벽을 뚫고 나와 한국 문학사의 가장 푸른 별 하나가 되었다

육사는 붓을 든 시인이기 전에 심장을 칼처럼 벼린 독립투사였다

그의 시 속에는 꽃보다 먼저 총검의 그림자가 서 있었고 바람보다 먼저 빼앗긴 조국의 신음이 지나갔다

그가 「광야」 쓸 때 그것은 단순한 시가 아니었다

폐허가 된 조국 위에 다시 하늘의 씨앗을 뿌리는 한 민족의 기도였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그 첫 문장은 마치 단군 신화 이전의 태초의 숨결처럼 울린다

나라를 잃어도 하늘까지 빼앗길 수는 없다는 듯 육사는 무너진 국토 위에 다시 정신의 대륙을 세우고 있었다

광야는 텅 빈 벌판이 아니었다

일제의 군홧발 아래 짓밟힌 조선의 영혼이었고 동시에 언젠가 백마 타고 올 해방의 미래를 기다리는 민족의 피맺힌 들판이었다

「절정」에 이르면 육사의 영혼은 더욱 가파르게 솟구친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그 문장은 시인의 문장이 아니라 차디찬 감옥 바닥을 맨몸으로 견딘 투사의 뼈마디다

눈 덮인 산맥 끝에서도 끝내 꺾이지 않는 한 줄기 나무처럼 육사는 죽음 앞에서도 정신의 봉우리를 내려오지 않았다

절정은 높은 산꼭대기가 아니다

나라를 빼앗기고도 끝내 인간의 품격을 잃지 않는 영혼의 마지막 높이였다

그리고 「울릉도」 육사에게 울릉도는 단순한 섬이 아니었다

동해 끝 외롭게 떠 있는 조국의 마지막 등불이었다

거센 파도 속에서도 끝내 가라앉지 않는 섬처럼 그는 믿었으리라

나라 또한 잠시 흔들릴 뿐 끝내 사라지지는 않으리라고 그래서 그의 시에는 늘 바다가 울고 있었다

국토를 잃은 사람만이 아는 짠 피의 냄새가 행간마다 서려 있었다

육사는 27번이나 감옥에 끌려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감옥은 그를 가두지 못했다

오히려 쇠창살 안에서 그의 정신은 더 넓은 하늘로 번져갔다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배부름을 위해 조국을 잊었지만

육사는 굶주림 속에서도 끝내 자기 나라의 이름을 입안에서 놓지 않았다

베이징 감옥의 마지막 밤 얼마나 많은 별들이 그의 눈동자 속에서 조국의 지도로 흔들렸을까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는 아마 압록강 바람과 백두산 눈발과 동해의 파도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육사를 읽는 것은 한 시인을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264번 그 차가운 숫자는 끝내 한 인간을 지우지 못했다

오히려 그 숫자는 오늘도 우리 가슴속에서 푸른 조국의 불꽃으로 살아 있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