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주광일 시인의 《봄 엽서 70》 ㅡ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의 《봄 엽서 70》 2026.05.31
주광일 시인의 《봄 엽서 70》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봄 엽서 70

시인 주광일

아소산의 까마귀 한 마리가 맑은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고 있습니다. 잠시 후 그 까마귀는 5월의 마지막 햇살을 몰고 오더니, 홀로 숲길을 걷고 있는 내 앞에 멈추어 섭니다. 생면부지의 나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 아소산의 손님인 나를 반기는 듯, 나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내며, 어린 아기처럼 몇 걸음을 걷더니, 후다닥 푸른 하늘 너머 어디론가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순간 나는 어쩐 일인지 다시는 그 까마귀를 못 볼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침묵 속에서 걷던 길을 아쉬움 속에서 돌아섰습니다. 아소산의 스기나무 숲 향기가 가슴으로 쏟아지는 5월의 마지막 날의 일이었습니다.

2026.5.31

검은 깃털 한 장이 계절의 문을 닫는 순간 ― 주광일 시인의 《봄 엽서 70》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봄은 꽃잎으로 떠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봄은 검은 깃털 한 장을 떨어뜨리고 사라진다.

사람들은 대개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에서 계절의 마지막을 본다. 주광일 시인은 전혀 다른 곳에서 봄의 등을 발견한다. 일본 아소산의 숲길, 하늘을 가로지르는 까마귀 한 마리. 시인은 새를 본 것이 아니다. 막 떠나려는 계절의 뒷모습을 우연히 마주한 것이다.

문학은 늘 些少한 것에서 시작된다. 모든 사소한 것이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남들이 지나치는 순간 속에서 존재의 숨결을 발견할 때 비로소 문학이 태어난다. 《봄 엽서 70》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겉으로는 여행 중의 짧은 체험담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인간이 평생 품고 사는 상실의 감각과 그리움의 구조가 조용히 숨어 있다.

아소산의 까마귀는 흥미로운 존재다. 우리 문화에서 까마귀는 흔히 불길함이나 음울함의 상징으로 소비된다. 그러나 주광일 시인의 시선에 들어온 까마귀는 전혀 다르다.

그 새는 어둠의 사자가 아니다. 외려 5월의 마지막 햇살을 등에 업고 오는 계절의 전령이다.

“5월의 마지막 햇살을 몰고 오더니” 라는 문장에서 까마귀는 이미 새의 역할을 벗어난다.

햇살을 몰고 온다는 표현은 물리적 사실이 아니다. 시인의 내면에서 까마귀는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 변모한다. 봄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해 잠시 빌려 입은 형상인 셈이다. 특히 이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는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까마귀가 왜 다가왔는지 말하지 않는다. 왜 떠났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몇 걸음 걸어오고, 눈길을 남기고, 하늘로 사라질 뿐이다.

좋은 문학은 의미를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의미가 태어나는 자리를 보여준다.

이 작품 속 까마귀가 바로 그렇다. 그 짧은 만남 속에서 독자는 누구나 자신의 기억을 불러낸다. 한 번 스쳐 지나간 사람, 짧게 머물렀던 사랑,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 하여, 까마귀는 새가 아니라 기억의 촉매가 된다.

이 작품의 중심은 사실 까마귀가 아니다.

“다시는 그 까마귀를 못 볼 것 같은 예감” 이라는 문장이다. 인생에는 논리보다 먼저 도착하는 감정들이 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알게 되는 순간들. 시인은 그 예감을 붙잡는다. 그 예감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발견한다.

우리가 슬퍼하는 것은 사라짐 때문이 아니다.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아소산의 그 까마귀는 세상에 수없이 많은 까마귀 가운데 한 마리일 뿐이다.

그날의 하늘, 그날의 숲길, 그날의 햇살, 그날의 고독과 만난 까마귀는 오직 한 번만 존재한다.

해서, 시인은 새를 잃은 것이 아니라 순간을 잃은 것이다.

마지막 문장에 이르면 스기나무 숲의 향기가 등장한다. “스기나무 숲 향기가 가슴으로 쏟아지는” 향기는 원래 보이지 않는다.

잡을 수도 없다. 그러나 가장 오래 남는다. 이 작품에서 향기는 기억의 다른 이름이다. 눈으로 본 풍경은 희미해져도, 가슴으로 스며든 향기는 오래 살아남는다. 시인이 일본에서 가져온 것은 사진이 아니다.

한 마리 까마귀의 그림자와 스기나무 숲의 향기다. 그 둘이 만나 하나의 봄이 된다. 주광일 시인의 《봄 엽서 70》은 여행기를 가장한 존재의 산문이다.

새를 이야기하면서 시간의 본질을 말하고, 숲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고독을 말하며, 봄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이별의 구조를 말한다.

아소산의 숲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맞추고, 다시 하늘로 사라진 검은 새 한 마리.

어쩌면 인간의 기억은 그런 순간들을 오래 품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서 까마귀는 끝내 새로 남지 않는다.

그것은 봄이 벗어놓고 간 마지막 그림자이며, 시간이 인간의 가슴속에 잠시 앉았다가 날아간 검은 그리움의 형상이다.

ㅡ청람

검은 새가 날아간 뒤에 ― 주광일 시인님께 드리는 글

주광일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오랜 세월 법조인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자리에서도 흔들림 없이 정도를 지키시며,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정신으로 정의와 양심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오셨습니다. 세상이 때로는 편법과 타협을 권할 때에도 선생님께서는 곧은길을 선택하셨고, 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살피되 사람의 존엄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하여, 선생님의 삶은 단순히 법조인의 이력이 아니라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런 선생님께서 이제는 시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십니다.

젊은 날에는 법의 눈으로 옳고 그름을 살피셨다면, 이제는 시인의 눈으로 바람 한 줄기와 꽃잎 하나, 새 한 마리의 날갯짓 속에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고 계십니다.

특히 최근의 작품들을 읽노라면 선생님께서 세상을 향한 시선보다 먼저 자신을 향한 시선을 더욱 깊게 가다듬고 계심을 느끼게 됩니다.

타인을 판단하는 일보다 자신을 성찰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에, 선생님의 시는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아소산 숲길에서 마주하신 까마귀 한 마리도 한 편의 시가 되었고, 그 시는 다시 한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새를 바라보셨지만, 독자들은 그 새를 통해 선생님의 깊어진 사유와 겸허한 영혼을 만나게 됩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허나,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낮은 자리에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의 자세는 많은 문인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부드러워지고, 높아질수록 더욱 낮아지며, 많이 알수록 더욱 침묵할 줄 아는 삶.

그것은 문학이 가르치는 가장 아름다운 품격이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 한평생 지켜오신 정의의 정신은 이제 시 속에서 따뜻한 인간애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 시들은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작은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건강하셔서 아름다운 시를 오래도록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법조인으로서 보여주신 올곧음과 시인으로서 보여주시는 성찰의 자세가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선생님의 시 한 편 한 편이 늦은 계절의 숲에 머무는 향기처럼 오래 남아 독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곧 출간되는 선생님의 새로운 시집 《겨울엽서》, 축하드리며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올립니다.

2026, 6, 1

김왕식 드림

주광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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