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1》을 읽고 ㅡ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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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엽서 1
시인 주광일
내가, 그토록 간절하게 기도했던 5월의 기적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6월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 달에는 분에 넘치는 허욕을 버리고, 아무런 소망도 갖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나는 그저, 뒷모습이 보기 흉한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하여 다시 한 번 더 각고의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언제든지 지구의 멸망의 순간이 온다면, 나는 뒷모습이 썩 나쁘지 않은 한 인간으로서, 내 마지막 숨을 쉬고 싶기 때문입니다.
202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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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내려놓은 자리에 늙지 않는 봄이 앉는다 ― 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1》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나이는 시계가 먹는다. 영혼은 먹지 않는다.
주광일 시인의 《여름 엽서 1》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세월은 사람의 등을 굽게 만들 수 있다. 머리카락을 희게 만들 수 있다. 걸음을 느리게 만들 수 있다. 영혼까지 늙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짧은 산문시에는 노년의 탄식이 없다. 세상을 향한 원망도 없다.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에 대한 항변도 없다. 대신 한 사람이 자신의 생애를 마지막까지 단정하게 접어두려는 품격이 담겨 있다.
“5월의 기적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은 여기서 낙심을 쓴다. 누군가는 불평을 적는다. 누군가는 하늘을 향해 주먹을 쥔다.
주광일 시인은 다른 길을 걷는다. 기적을 잃은 자리에서 욕망부터 내려놓는다.
이 대목은 매우 묵직하다. 젊음은 대개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를 묻는다. 노년은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를 묻는다. 삶의 깊이는 채움보다 비움에서 드러난다.
강물이 바다를 만나는 이유도 물을 더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제 소망마저 덜어내겠다고 말한다. 그 말은 체념이 아니다. 삶을 오래 통과한 사람만이 도달하는 정신의 고도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은 따로 있다.
“뒷모습이 보기 흉한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하여.”
참으로 낯선 고백이다. 사람들은 얼굴을 가꾸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등을 가꾸는 데는 인색하다. 등은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자리다. 남들이 보는 자리다.
삶도 비슷하다. 사람의 진짜 품격은 앞모습보다 뒷모습에서 드러난다. 권력을 내려놓는 순간.
명예가 떠난 자리. 박수가 멈춘 저녁. 그때 남는 것이 한 인간의 뒷모습이다.
주광일 시인이 말하는 노년은 늙음이 아니다. 정리하는 기술이다. 욕망을 정리하고, 미련을 정리하고, 허영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정갈하게 접힌 한 벌의 옷처럼 생애를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문장 사이에 고요하게 앉아 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오래 남는다.
“지구의 멸망의 순간이 온다면.”
보통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한다. 시인은 인류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한다.
시선의 크기가 다르다. 한 인간의 생애가 우주의 시간과 마주 서 있다. 그 광막한 배경 속에서도 시인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썩 나쁘지 않은 한 인간.
참 놀랍다. 위대한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말도 없다. 훌륭한 인물로 기억되고 싶다는 욕망도 없다.
좋은 인간. 그 한마디가 전부다. 문학이 오래 추구해 온 궁극의 가치 역시 여기에 있다. 훌륭한 문장을 남기는 일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일.
주광일 시인은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 80대 중반. 많은 사람은 인생의 원고를 덮는 나이다.
주광일 시인은 새 원고를 펼친다. 겨울 엽서를 묶어 한 권의 시집을 만들고, 봄 엽서를 완성한 뒤, 다시 여름 엽서의 첫 장을 연다. 계절은 네 번 바뀌지만 시인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아침마다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자신의 생애를 하루치씩 새로 태어나게 하는 일이다.
나무는 나이테를 만든다. 시인은 문장을 만든다. 나이테가 나무의 연륜이라면, 문장은 시인의 연륜이다.
주광일 시인의 엽서 연작은 단순한 계절 기록이 아니다. 한 인간이 늙어가는 과정을 기록한 정신의 연대기다.
욕망이 줄어드는 자리에서 품격이 자라고,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서 평온이 피어나고, 세월이 깊어지는 자리에서 문장은 더욱 맑아진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젊음을 연장하는 법을 찾는다.
주광일 시인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아름답게 늙을 것인가.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빛난다.
여름은 대개 뜨거운 계절로 기억된다. 주광일 시인의 여름은 다르다. 욕망의 열기를 걷어낸 자리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백련 같다. 안온하다. 맑다. 향기가 깊다.
그 향기는 문장을 넘어 삶으로 번진다. 그런 이유로 《여름 엽서 1》은 한 편의 글이 아니라, 한 인간의 등이 남긴 가장 아름다운 필체라 불러도 좋겠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