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몸속에 숨어 사는 밀입국자들. 청민 시인의 《잠복기》


몸속에 숨어 사는 밀입국자들.
청민 시인의 《잠복기》

몸속에 숨어 사는 밀입국자들. 청민 시인의 《잠복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잠복기

시인 青民 박철언

살갗을 에워싸 무더위 알리는 후덥지근 끈끈한 열기 에어컨 속 푸른 냉기가 상쾌하게 날려주는 늦봄

몸속 온기 빼앗기는 줄 모르고 사랑의 묘약처럼 빠져들다가 머리 띵, 코끝 찡, 훌쩍 쉴 틈을 주지 않는 콧물

잠복기 틈타 공격하는 무형의 미세한 바이러스로 수북하게 무너지는 세포들

한 움큼 집어삼킨 약 수비수 되어 공격수 잠재우니 한없이 무거워지는 눈꺼풀 무게 못 이긴 채 스르르 잠든다

밖은 어둠이 내리고 비는 쉴 새 없이 내리는데 의식은 아득히 사라져 가는 잠복기

몸속에 숨어 사는 밀입국자들 ― 박철언 시인의 《잠복기》를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불현듯 생각이 든다.

인간의 몸은 한 채의 집이 아니라 하루에도 수천 명이 드나드는 국경 없는 도시인지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문도 두드리지 않고 들어온다.

꽃가루가 들어오고, 바람이 들어오고, 기억이 들어오고, 그리움이 들어오고, 어느 날은 바이러스 한 무리가 여권도 없이 입국한다.

더 묘한 일은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집주인이 가장 늦게 안다는 점이다. 몸은 이미 전쟁 중인데 주인은 커피를 마시고, 세포들은 무너지고 있는데 주인은 뉴스를 본다.

박철언 시인의 《잠복기》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전쟁의 기록이다. 전쟁은 대개 폭발음과 함께 시작된다. 이 시의 전쟁은 에어컨 바람 한 줄기에서 시작된다. 후덥지근한 늦봄. 사람들은 시원함이라 부른다.

시인은 그 냉기를 “속 푸른 냉기”라 명명한다.

흥미롭다. 푸른 것은 원래 하늘이고 바다이다. 냉기에 색깔을 입히자 에어컨 바람은 가전제품의 기능을 벗고 도시 한복판을 떠도는 인공의 계절이 된다. 인간이 만든 겨울이 늦봄의 몸속으로 이주해 들어오는 장면이다.

박철언 시인의 시선은 늘 사물보다 그 뒤편을 향한다. 사람들은 콧물을 본다. 시인은 잠복기를 본다. 사람들은 증상을 본다. 시인은 증상이 태어나는 어둠을 본다. 이 차이가 시와 정보의 경계다. 특히 눈길을 붙드는 대목은 여기다.

“무형의 미세한 바이러스로 수북하게 무너지는 세포들”

세포가 무너진다. 원래 세포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이 무너지는 장면도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그 풍경에 “수북하게”라는 단어를 올려놓는다.

순간 현미경 속 세계가 가을 숲으로 변한다.

“세포는 낙엽이 되고, 몸은 숲이 된다.”

생명은 조용히 잎을 떨구며 한 계절을 건너간다. 과학이 설명하는 현상이 시의 손에 닿는 순간 풍경으로 환생하는 것이다.

박철언 시인의 장점은 관념을 설명하지 않는 데 있다. 몸속에서 벌어지는 생물학적 사건을 굳이 철학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대신 이미지 하나를 놓아둔다. 독자는 그 이미지 속을 걸으며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약을 수비수로, 바이러스를 공격수로 형상화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병실은 어느새 경기장이 된다. 몸은 운동장이다. 혈관은 사이드라인이다. 면역세포들은 관중석 없는 경기장에서 밤새 연장전을 치른다.

인간은 잠들어 있는데 몸은 깨어 있다. 참 신비로운 역설이다. 낮에는 사람이 몸을 돌본다. 밤에는 몸이 사람을 돌본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어쩌면 제목일지 모른다.

잠복기.

사전적 의미로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시간이다. 시 속에서는 다르다. 생명이 자기 내부를 수리하는 시간이다. 상처가 새 살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도 잠복기가 있다. 실패에도 잠복기가 있고, 사랑에도 잠복기가 있고, 성장에도 잠복기가 있다.

씨앗은 오랫동안 흙속에 묻혀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뿌리는 이미 어둠 속에서 수천 번의 대화를 끝냈다.

사람의 생도 그렇다. 겉으로는 멈춰 있는 듯 보이는 날들이 있다. 실은 가장 깊은 변화가 진행되는 시간들이다.

박철언 시인은 감기를 말하면서 감기를 말하지 않는다. 바이러스를 말하면서 바이러스만 말하지 않는다. 몸속의 잠복기를 통하여 생명이라는 거대한 숲의 비밀을 슬쩍 보여준다.

하여 이 시는 의학의 언어로 시작하여 존재의 언어로 끝난다. 콧물 한 줄기에도 계절이 숨어 있고, 잠 한숨에도 우주의 복원력이 숨어 있다는 사실.

박철언 시인은 이번 작품에서 청진기가 아닌 시인의 귀를 몸에 대고 생명이 숨 쉬는 소리를 채록해 냈다. 《잠복기》는 감기 예찬이 아니다. 몸속에서 낙엽이 지고, 면역의 새싹이 돋아나는 한 편의 미시적 생태시다.

현미경 아래 숨겨져 있던 작은 우주가 시라는 창문을 통하여 환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