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형만 시인의 《산수국》을 읽다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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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국
시인 허형만
흐벅지게 핀 산수국 오져서 차마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가담가담 오시어 가만히 들여다보는 여우비 갈맷빛 이파리마다 조롱조롱 매달려 가슴 졸이는 물방울 나에게도 산수국처럼 탐스러웠던 시절 있었지 물방울처럼 매달렸던 사랑 있었지 오지고 오졌던 시절 한 삶이 아름다웠지 한 삶이 눈물겨웠지
□ 이 시는 조선일보 문태준 시인의 [가슴으로 읽는 시] 2015. 6. 27. 에 게재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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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기억은 왜 꽃의 얼굴을 빌려 오는가 ― 허형만의 《산수국》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은 늙어도 시간은 늙지 않는다. 세월은 지나가지만 지나간 세월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날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낡은 우체통, 비에 젖은 돌담, 저녁 무렵 창문에 비친 햇살 하나가 불쑥 오래된 시간을 깨운다. 기억은 늘 숨어 있다가 사물의 옷을 입고 돌아온다.
허형만 시인의 《산수국》도 그렇다. 시인은 산수국을 보고 있지만 실은 꽃을 읽는 것이 아니다. 꽃이라는 푸른 봉투를 열어 그 안에 접혀 있던 자신의 생애를 꺼내어 펼쳐 보인다. “흐벅지게 핀 산수국”은 만개한 꽃이면서 동시에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젊음의 절정이다. “차마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라는 구절은 이미 지나간 세월이 아직도 마음의 문턱을 떠나지 못한 채 서성이는 풍경이다.
가담가담 내리는 여우비는 하늘의 비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 늙어가며 흘리는 느린 눈물이다. 갈맷빛 잎마다 매달린 물방울은 자연의 장식이 아니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투명한 상흔들이다.
허형만 시인의 시어는 언제나 화려한 비단 대신 삼베옷을 입는다. 그 삼베 속에는 인간 존재의 체온이 스며 있다.
이 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목은 산수국과 인간의 생애가 서로의 거울이 되는 순간이다.
“나에게도 산수국처럼 탐스러웠던 시절 있었지”
이 한 줄은 꽃을 인간으로 번역한 문장이며, 동시에 인간을 꽃으로 환생시킨 문장이다. 청춘은 누구에게나 한때 흐벅지게 핀 산수국이었다. 누군가를 향해 물방울처럼 매달렸고, 작은 바람에도 가슴 졸이며 흔들렸다. 그 시절은 지나갔다. 꽃은 시들고 사랑은 떠났으며 사람은 늙어간다.
허형만 시인은 늙음을 탄식하지 않는다. 대신 한 생의 뒤안길에서 담담하게 삶을 쓰다듬는다.
“한 삶이 아름다웠지 한 삶이 눈물겨웠지”
이 두 행은 마치 평생을 다 읽은 사람이 마지막 장에 남긴 짧은 메모 같다. 아름다움은 눈물겨움과 따로 살지 않는다. 눈물겨움 또한 아름다움의 다른 이름일 때가 많다.
허형만 시인의 시는 꽃을 노래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인간의 생애를 어루만진다. 산수국은 이 시에서 꽃이 아니라 세월이 잠시 걸어두고 간 푸른 기억의 등불이다. 그 등불 아래 서면 독자는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속에서 아직 지지 않은 산수국 한 송이를 만나게 된다.
ㅡ청람
□ 허형만 시인 ㅡ 국립목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