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의 강물 위에 다시 피어난 우정 ― 청휘 한범수
반세기의 강물 위에 다시 피어난 우정 ― 청휘 한범수 2026.07.21
― 청휘 한범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청휘 한범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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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연과 담백 사이, 반세기의 벗을 생각하다
청휘 한범수
빗소리 가득한 오전, 선풍기가 무심하게 돌고 있습니다. 청람 선생의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반세기를 함께한 친구가 보낸 글은, 제가 보낸 시에 대한 답가였습니다. 어찌 이리 시 쓴 이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봤나 싶을 정도로, 제 마음을 꼭 집어 글자로, 문장으로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청람 김왕식, 든든한 이름입니다.
까까머리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인연, 여러 이야기를 담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아버지가 입으시던 검은색 코트를 걸치고 겨울을 나던 대학 시절,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한학에 몰두한 친구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 갔을 때, 책상 위에 태극기와 도산 안창호 선생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먹물 가득한 벼루와 붓이 놓여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도 태극기를 책상 위에 걸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문방사우를 끼고 살았습니다. 친구가 준 선물이었습니다.
군에 간 친구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는 “의연(毅然)“이라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새벽마다 손에 쥐었던 목검에 ‘의연검’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호 청휘(淸輝)는 ‘맑고 빛나는 빛’입니다. 내심 이렇게 살아야겠다며 대학원 시절 먹을 듬뿍 찍어 ‘빛처럼 살아요’라고 쓰고, 그 우측에 ‘춥고 어두운 곳에서도’, 좌측에 ‘이제는 이렇게 봄볕이 따뜻하다’라고 썼습니다. ‘의연’은 아호의 뜻과 더불어 삶을 헤쳐나가는 힘이 되었습니다.
정년 후에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대로의 의미로 살겠다며 서재 이름을 여여재(餘如齋)라 붙이고, 일상을 그 안에 담고 있습니다. 친구가 얼마 전에 “담백(淡白)“이라는 시평을 보냈을 때, ‘의연’에 이어 또 하나의 큰 선물을 받았음을 직감했습니다. 청휘, 의연, 여여, 담백 — 이 말들이 제 안에서 숨결이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오산학교 앞으로 친구가 보고 싶어 찾아갔을 때, 친구는 목에 감았던 넥타이를 풀어 제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시중에서 돈을 주고 사는 넥타이가 아니었습니다. 지나온 시절과 앞으로 흐를 시간이 그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염화미소의 순간이었습니다. 시야 멀리 한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문득문득 친구가 보고 싶어 전화를 겁니다. 어느 날 친구가 화성시 매송면에 있는 파랑창고로 달려왔습니다. 논두렁 추어탕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얼마 후면 문을 닫는다는 오래된 한옥 추어탕집의 사라짐을 애석해하며 함께 사진을 담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현재라는 유무형의 것들이 기억으로 바뀌듯, 다시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임을 서로 눈빛으로 주고받았습니다.
친구라는 말에는 온기가 있습니다. 친구 김왕식, 내 친구 김왕식, 눈빛이 곱고 참 잘생긴 멋진 친구입니다. 친구가 보낸 귀한 글, 가슴 깊이 꼭꼭 눌러 담습니다. 비 오는 날, 함께 막걸리에 취해 휘청휘청 걸어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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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의 강물 위에 다시 피어난 우정 ― 청휘 한범수 교수께
청휘 한범수 교수, 나의 오래된 벗이여.
빗소리가 창문을 두드리는 아침, 한 교수가 보내온 글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었네. 한 줄을 읽고 한동안 눈을 감았으며, 다시 한 줄을 읽고는 먼 시절을 바라보았네. 글 속에는 우리가 함께 걸어온 반세기의 길이 펼쳐져 있었고, 그 길 위에는 까까머리 고등학생 둘이 나란히 서 있었네.
세월이 흘러 서로의 머리에는 흰 눈이 내렸어도, 한 교수의 글을 읽는 동안 나는 다시 경복고등학교 교정에 서 있었네. 교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던 햇빛,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바람, 책가방 속에 넣어 다니던 낡은 책과 공책, 앞날을 알 수 없으면서도 세상을 향한 꿈만은 누구보다 뜨거웠던 두 청년의 모습이 선명했네.
한 교수는 그 시절부터 맑은 사람이었네. 목소리를 높여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마음속에 깊은 우물을 품고 살았고, 사람을 대할 때에는 눈빛부터 따뜻했네. 나는 한학의 글자 속에서 사람의 도리를 찾고 있었고, 한 교수는 그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아 주었네. 돌이켜보면 내가 학문에 몰두할 수 있었던 힘 가운데 하나는 나를 믿어 주는 벗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었네.
한 교수가 우리 집 책상 위에 걸려 있던 태극기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진을 기억하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오래 저렸네. 벼루에 먹물이 마르지 않았고, 붓 끝에는 아직 쓰이지 않은 수많은 문장이 기다리고 있었지. 그때의 나는 학문을 단순한 지식의 축적으로 여기지 않았네. 글을 배운다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었고, 붓을 든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바로 세우는 일이었네.
도산 선생의 사진을 바라보며 나는 나라를 사랑한다는 일이 거창한 구호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네. 한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세우고, 맡은 일을 성실히 행하며, 불의 앞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바로 그곳에서 나라 사랑이 시작된다고 믿었네. 태극기는 책상 위에 걸려 있었지만, 그 뜻은 마음속에서 펄럭이고 있었네.
그날 한 교수가 집으로 돌아가 태극기를 책상 위에 걸었다는 이야기를 이제야 들으니, 오래전 내가 무심히 놓아둔 한 장면이 벗의 생애에 작은 불씨가 되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네. 내가 건넨 문방사우를 한 교수가 대학 시절 내내 곁에 두었다니, 그 붓과 벼루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을 것이네. 두 청년이 학문과 삶을 향해 나누었던 말 없는 약속이었을 것이네.
군 복무 중 한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 ‘의연毅然’이라는 말을 적었다는 기억도 이제 다시 살아나네. 젊은 날의 나는 한 교수가 어떠한 시련 앞에서도 뜻을 잃지 않기를 바랐던 듯하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돌처럼 굳어지는 일이 아닐세.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자신의 뿌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사는 일이며, 아픔을 품으면서도 사람을 향한 따뜻함을 잃지 않는 일이네.
한 교수는 그 두 글자를 목검에 새겨 ‘의연검’이라 이름 붙였고, 삶의 어려움과 마주할 때마다 마음의 칼로 삼았다 했네. 내가 보낸 한 단어가 한 교수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니, 벗에게 건넨 말 한마디가 얼마나 오래 살아 움직일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네.
청휘淸輝.
맑고 빛나는 빛이라는 한 교수의 아호는 한 교수의 삶과 참으로 잘 어울리네. 빛은 자신을 위해 빛나지 않네. 어둠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고, 추위 속에 있는 생명을 덥히며, 길을 잃은 사람에게 방향을 보여 주네. 한 교수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학문에 정진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한 사람의 삶을 귀하게 여겨 온 시간은 청휘라는 두 글자의 실천이었네.
“춥고 어두운 곳에서도 빛처럼 살아요.”
한 교수가 먹을 듬뿍 찍어 썼다는 그 문장은 한 교수의 평생을 압축한 시구처럼 다가오네. 봄볕이 따뜻한 이유는 겨울을 견딘 생명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기 때문일세. 한 교수 또한 사람들에게 그런 봄볕 같은 존재였네. 앞에 나서지 않아도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 주었고, 말없이 손을 내밀어 다시 걸을 힘을 건네주었네.
정년 뒤 서재 이름을 여여재如如齋라 붙였다는 말도 한 교수답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모습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세.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가진 것을 과장하거나 지나온 공적에 기대기 쉽네. 한 교수는 스스로를 부풀리지 않고, 삶이 놓인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하루의 무게를 정직하게 품으려 했네. 여여재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방을 넘어, 한 인간이 평생 닦아 온 정신의 거처라 생각하네.
내가 한 교수의 시를 읽고 ‘담백淡白’이라는 말을 건넨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었네. 한 교수의 시에는 꾸밈이 많지 않네. 억지로 감동을 만들지도 않고, 화려한 언어로 자신을 치장하지도 않네. 오래 우린 차처럼 깊고, 잘 익은 장처럼 은근하며, 세월을 함께 살아온 사람의 눈빛처럼 따뜻하네.
담백은 비어 있음이 아닐세. 수많은 맛을 지나 끝내 본래의 맛으로 돌아온 경지이네. 의연이 세상의 바람 앞에서 자신을 지키는 힘이라면, 담백은 삶의 욕심을 내려놓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마음일세. 청휘, 의연, 여여, 담백이라는 말들이 한 교수 안에서 한 줄기의 강물로 흐르고 있다는 고백을 읽으며, 나는 벗의 삶이 이미 한 편의 긴 시가 되었음을 느꼈네.
우리의 인연은 경복고 교정에서 시작되었지만, 단지 학창 시절의 추억에 머물지 않았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학문을 붙들고 살아왔네. 나는 국어와 한문, 문학과 역사, 종교와 철학의 언저리를 걸으며 언어 속에 깃든 인간의 마음을 살폈고, 한 교수는 대학의 연구실과 강단에서 자신의 학문을 깊게 다듬으며 후학들에게 지식 이상의 삶의 태도를 전했네.
학문의 길은 홀로 걷는 듯 보이지만, 참된 학문에는 늘 벗의 숨결이 깃들어 있네. 한 권의 책을 읽다가 한 교수의 얼굴이 떠오르고, 한 문장을 쓰다가 젊은 날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가 되살아났네. 서로 다른 자리에서 공부했어도 우리의 학문은 결국 한 곳을 향하고 있었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생을 어떻게 살아야 부끄럽지 않은지, 말과 글이 한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일으켜 세울 수 있는지를 평생 살피고 있었네.
한 교수가 문단의 문을 열고 시인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나는 오랜 벗으로서 남다른 기쁨을 느꼈네. 그것은 단지 친구가 등단했다는 기쁨만이 아니었네. 반세기 동안 한 교수 안에서 익어 온 언어가 비로소 세상의 햇빛을 만났다는 감격이었네.
한 교수의 시는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닐세. 검은색 코트를 입고 겨울을 건너던 대학 시절에도 시는 한 교수 안에 있었네. 새벽마다 목검을 들고 자신을 단련할 때에도 시가 있었고, 먹을 갈아 ‘빛처럼 살아요’라고 쓰던 순간에도 시가 있었네. 학생들을 가르치고, 가족을 돌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를 지키며 살아온 모든 날이 시의 밑줄이었네.
등단은 시인의 탄생을 알리는 출발점이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시인으로 살아온 한 사람을 세상이 뒤늦게 알아보는 일이기도 하네. 나는 한 교수의 시를 읽으며 작품보다 먼저 한 교수의 삶을 읽었네. 한 편의 시 뒤에 숨어 있는 청휘의 눈빛, 의연검을 쥐었던 손, 여여재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말없이 벗을 기다리는 마음을 보았네. 한 교수가 내 글을 두고 시인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았다고 했지만, 그것은 내가 특별히 뛰어난 눈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세. 반세기를 함께한 벗의 숨결을 알고 있기 때문이네.
오산학교 앞으로 나를 찾아왔던 날, 내가 목에 매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 한 교수의 손에 쥐여주었다는 장면도 한 교수의 글을 통해 다시 만났네.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했는지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네. 말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였던 듯하네.
넥타이는 목에 매는 천 조각이지만, 그날의 넥타이에는 우리가 건너온 시간이 매여 있었네. 경복고 교정의 바람, 대학 시절의 가난과 열망, 군에서 오간 편지, 각자의 강단과 서재, 만나지 못한 날들의 그리움까지 함께 매여 있었네. 한 교수가 그것을 염화미소의 순간이라 불러 주니, 비로소 그날의 뜻이 완성된 듯하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보는 것,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을 받아들이는 것, 벗이란 바로 그런 존재가 아니겠는가. 멀리 한강이 흐르고 있었다는 한 교수의 기억도 아름답네. 강물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으면서도 늘 같은 이름으로 흐르네. 우리의 우정도 그러했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살았어도, 경복고 시절에 시작된 한 줄기의 물길은 끊어진 적이 없었네.
화성시 매송면 파랑창고로 한 교수를 찾아갔던 날, 논두렁 곁 추어탕집에서 마주 앉았던 시간도 내 마음에 남아 있네. 오래된 한옥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으며 우리는 음식 한 그릇만을 아쉬워한 것이 아니었네. 한 시대가 문을 닫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네.
사람이 머물던 집, 손때 묻은 문지방, 장맛이 배어 있던 부엌, 수많은 손님이 웃고 이야기하던 방이 사라지면 그 자리는 다른 건물로 채워질 수 있어도, 그 안에 머물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네. 우리는 그 사실을 말보다 눈빛으로 나누었네. 한 장의 사진을 남긴 까닭도 사라지는 것을 붙들기 위해서라기보다, 그곳에 우리의 마음이 머물렀음을 기억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네.
한 교수는 나를 두고 든든한 이름이라 했네. 그 말을 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청람 김왕식이라는 이름이 한 교수에게 든든함이 되었다면, 청휘 한범수라는 이름 또한 내 삶의 한쪽 기둥이었네. 내가 학문의 길에서 지칠 때, 문학의 길에서 외로울 때, 사람에게 상처받아 마음이 메말라 갈 때, 먼 곳에 한 교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다시 붓을 들 수 있었네.
친구란 매일 만나야 이어지는 사이가 아닐세. 오랜 세월 연락이 뜸해도 어느 날 목소리를 들으면 어제 헤어진 듯 마음이 이어지는 사람, 세상이 나를 오해해도 내 본래 모습을 기억해 주는 사람, 늙고 병들어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어도 예전과 같은 눈빛으로 바라봐 주는 사람이 친구일세.
한 교수가 “친구 김왕식, 내 친구 김왕식”이라고 불러 준 대목에서 나는 오래 머물렀네. 이름 앞에 붙은 ‘내 친구’라는 말은 어떠한 직함보다 귀하고, 어떠한 상보다 빛나는 훈장이네. 문학평론가도, 교수도, 기자도, 작가도 세월이 지나면 한 줄의 약력으로 남을 뿐이네. 한 사람의 가슴속에 ‘내 친구’로 남는 일은 생의 가장 큰 영예일세.
눈빛이 곱고 잘생긴 멋진 친구라고까지 추켜세워 주었으니, 늙은 벗이 비 오는 날 얼굴을 붉히며 웃게 되었네. 한 교수의 눈에 내가 그리 보인다면, 그것은 내 얼굴 때문이 아니라 반세기의 우정이 내 얼굴 위에 따뜻한 빛을 얹어 준 덕분일 것이네. 벗의 눈은 세월의 주름을 세지 않고, 그 안에 남아 있는 젊은 날의 마음을 바라보는 법이니까.
청휘 한범수 교수.
한 교수와 나의 우정은 이제 추억만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닐세. 아직 써야 할 글이 남아 있고, 아직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으며, 함께 바라봐야 할 저녁놀과 새벽빛이 남아 있네. 한 교수의 시가 세상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 머물도록 나는 기꺼이 그 곁에서 읽고 쓰겠네. 한 교수의 담백한 시심이 더욱 깊어지고, 청휘의 빛이 더 먼 곳까지 번져 가는 모습을 벗으로서 응원하겠네.
우리의 문단 데뷔는 명함에 이름 하나를 더하는 일이 아니었네.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온 말을 세상에 내어놓는 일이었으며,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를 문학 앞에 증언하는 일이었네. 이제 우리는 남은 생을 문학의 언어로 서로를 지켜 주어야 하네. 한 교수의 시가 지치면 내가 한 줄의 평문으로 등을 밀고, 내 글이 외로워지면 한 교수의 시 한 편이 곁에 앉아 주기를 바라네.
비가 내리는 날, 한 교수의 말처럼 막걸리 한 사발 앞에 놓고 함께 취해도 좋겠네. 반듯하게 걸으려 애쓰지 말고 휘청휘청 걸어도 좋겠네. 젊은 날의 이야기, 먼저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 학생들과 문학에 관한 이야기, 아직 쓰지 못한 시와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밤 깊도록 나누세.
비틀거리는 걸음조차 서로의 어깨가 있다면 두렵지 않을 것이네. 넘어질 듯하면 붙들어 주고, 말이 끊기면 빗소리를 함께 듣고, 웃음이 나면 아이들처럼 웃어 보세. 경복고 교정에서 시작된 두 청년의 길이 어느덧 반세기를 넘어섰지만, 우리의 우정은 늙은 것이 아니라 깊어진 것이네.
청휘여.
한 교수가 내게 건넨 이 글은 한 편의 편지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바치는 헌사였네. 한 교수가 내 글을 가슴 깊이 꼭꼭 눌러 담겠다고 했듯이, 나 또한 한 교수의 마음을 내 가슴 가장 따뜻한 자리에 고이 간직하겠네.
의연하게 살아온 벗이여. 여여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 온 벗이여. 담백한 시로 사람의 마음을 밝혀 주는 청휘여. 한 교수는 내게도 든든한 이름일세.
청휘,
내 친구 한범수. 비가 그치면 찾아가겠네. 비가 그치지 않아도 찾아가겠네. 우리의 우정에는 우산이 없어도 좋을 테니.
2026년 여름 반세기의 벗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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