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이해인 수녀의 「무궁화」를 읽다 ㅡ청람 김왕식

이해인 수녀의 「무궁화」를 읽다 2026.07.24
이해인 수녀의 「무궁화」를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무궁화

이해인

아픔의 꽃술 길게 물고 하늘 향해 섰는 무궁화여

우리의 한과 슬픔을 알고 있어서 우리 탓도 아니게 두 동강 나버린 삼팔선의 비극을 알고 있어서 차라리 입 다문 거지? 좋은 일이 있어도 헤프게 웃지 않는 슬기를 배운 거지?

오늘도 의연히 버티고 서서 마음으로 마음으로 모든 것을 헤아리는 꽃

붉은 가슴마다
태극기를 꽂으며 오늘도 자유를 노래하는 겨레의 꽃 무궁화여

한 송이 꽃 안에 무릎 꿇은 겨레의 영혼 ― 이해인 수녀의 「무궁화」를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해인 수녀의 시는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빛난다. 그 빛은 눈부심으로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다. 작은 꽃잎 하나, 오래 견딘 침묵 하나, 상처 입은 마음 한켠에 가만히 손을 얹는다. 그의 시는 세상을 꾸짖기보다 품고, 상처를 폭로하기보다 기도 속에 씻어 낸다.

「무궁화」 역시 그러하다. 이 시에서 무궁화는 국화(國花)이기 전에 한 영혼이다. 나라의 상징이기 전에 고통을 오래 품고도 원망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다. 시인은 무궁화를 거대한 국가적 표상으로 세우지 않는다. 아픔을 입에 물고 하늘을 바라보는 한 송이 꽃으로 낮춘다. 그 낮아짐 속에서 꽃은 더 높아진다.

“아픔의 꽃술 길게 물고”라는 첫 구절은 이해인 시인의 시적 영혼을 가장 잘 보여 준다. 꽃술은 꽃의 중심이다. 생명의 씨앗을 품고, 향기의 근원을 간직한 자리다. 시인은 그 중심에 ‘아픔’을 물린다.

무궁화는 아픔을 토해 내지 않는다. 입에 문다. 울부짖지 않고 오래 견딘다. 이 모습은 상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상처의 포로가 되지 않는 수도자의 자세와 닮아 있다. 고통을 원망으로 번역하지 않고 기도로 삭이는 영혼, 자신의 상처를 타인의 상처를 헤아리는 눈으로 바꾸는 영혼이다.

이해인 수녀의 시에서 고통은 절망의 증거가 아니다. 더 깊은 사랑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무궁화」의 아픔도 마찬가지다. 꽃은 아픔 때문에 시들지 않는다. 아픔을 품은 채 하늘을 향해 선다.

하늘을 향해 선다는 것은 단순한 자세가 아니다. 인간의 상처를 인간의 증오에만 맡기지 않는 영적 태도다. 분단과 전쟁, 이산과 눈물의 역사를 품으면서도 시선은 미움의 땅에 박히지 않는다. 용서와 화해, 자유와 평화가 있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우리의 한과 슬픔을 / 알고 있어서”라는 구절에서 무궁화는 말없는 수도자가 된다. 꽃은 역사를 설명하지 않는다. 판단하지도 않는다. 다만 안다.

이 ‘앎’은 지식의 앎이 아니다. 함께 아파해 본 존재의 앎이다. 울어 본 사람만이 다른 이의 울음을 알아보고, 오래 외로웠던 사람만이 침묵의 무게를 헤아린다. 무궁화는 겨레의 아픔을 바깥에서 바라보는 꽃이 아니다. 그 아픔을 제 가슴 안에서 피워 낸 꽃이다.

“우리 탓도 아니게 / 두 동강 나버린 / 삼팔선의 비극”이라는 대목에는 시인의 순한 분노가 담겨 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지만 상처의 본질을 외면하지 않는다. ‘두 동강’이라는 말은 국토의 분할을 넘어 한 몸이 찢긴 비극을 드러낸다.

이해인 수녀는 이 비극을 정치적 구호로 밀어 올리지 않는다. 한 송이 꽃의 가슴에 내려놓는다. 거대한 역사가 작은 꽃의 몸 안으로 들어올 때, 비극은 더 아프게 다가온다. 한반도의 분단은 지도 위의 선이 아니라 꽃의 줄기를 가른 칼자국이 된다.

“차라리 입 다문 거지?”라는 물음에는 시인의 내면적 친밀감이 스며 있다. 그는 꽃을 관찰하지 않는다. 꽃에게 말을 건다. 마치 오랜 벗에게, 혹은 상처를 말하지 않는 아이에게 묻듯 다정하게 다가간다. 왜 말하지 않느냐고 다그치지 않는다. 너무 아파서 말할 수 없었겠구나, 너무 많은 것을 품고 있어 침묵을 택했겠구나, 하고 꽃의 마음을 대신 읽어 준다.

이해인 수녀의 시가 순수한 까닭은 대상을 자기 생각의 도구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꽃 위에 자신의 관념을 얹기보다 꽃의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꽃이 무엇을 말하는지 귀를 기울이고, 그 말 없는 말에 자신의 마음을 비운다.

“좋은 일이 있어도 / 헤프게 웃지 않는 / 슬기를 배운 거지?”라는 구절도 깊다. 여기서 절제는 억압이 아니다. 상처받은 이들을 잊지 않으려는 사랑의 예절이다.

세상에는 웃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사람, 분단 때문에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이들의 눈물 앞에서 혼자 너무 크게 웃지 않는 마음, 기쁨 속에서도 타인의 슬픔을 잊지 않는 마음이 이해인 수녀가 말하는 ‘슬기’다.

이 슬기는 수도자의 영성과 닿아 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낮추고, 자신의 기쁨을 독점하기보다 나누며, 타인의 고통을 자기 기도 안에 모시는 삶이다.

“오늘도 의연히 / 버티고 서서”에서 무궁화는 강한 꽃이 된다. 그 강함은 억센 힘이 아니다. 꺾이지 않겠다고 소리치는 강함도 아니다. 상처를 안고도 제 자리를 지키는 힘이다.

이해인 수녀의 시에서 ‘버팀’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끝까지 곁에 남아 주는 일, 도망치지 않고 아픈 이의 옆자리를 지키는 일,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하루를 다시 살아 내는 일이다.

무궁화는 매일 피고 진다. 한 송이가 지면 또 한 송이가 핀다. 이 되풀이되는 개화는 거창한 승리의 역사보다 더 깊은 생명의 신앙을 보여 준다.

한 번도 지지 않는 꽃이 강한 것이 아니다. 지고도 다시 피는 꽃이 강하다. 이것이 무궁화의 신앙이며, 이해인 수녀의 시가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다. 사람도 무너질 수 있다. 눈물 흘릴 수 있다. 한 계절을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상처 난 자리에서 다시 한 송이 마음을 피워 낼 수 있다.

“마음으로 마음으로 / 모든 것을 헤아리는 꽃”이라는 구절은 이 작품의 가장 순결한 중심이다. 이해인 수녀에게 마음은 감정의 그릇에 머물지 않는다.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방이며, 세상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는 작은 성소다.

‘마음으로’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될 때, 꽃은 언어를 넘어선 기도를 시작한다. 입술의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것을 마음이 대신 품는다. 남과 북의 슬픔,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아픔, 잃어버린 고향과 아직 오지 않은 통일의 꿈을 꽃은 가슴속에 모은다.

이해인 수녀의 영혼은 언제나 이렇게 작동한다. 세상을 갈라 판단하기보다 상처 입은 것들을 한 품에 모으려 한다. 누구의 편인가를 먼저 따지기보다 누가 더 아픈가를 살핀다. 그에게 시는 언어의 장식이 아니라 마음의 봉사다.

“붉은 가슴마다 / 태극기를 꽂으며”라는 구절도 단순한 애국적 수사가 아니다. 무궁화의 붉은 중심은 피 흘린 역사의 자리이면서 사랑이 타오르는 자리다. 그 붉은 가슴에 태극기가 꽂힌다는 것은 한 송이 꽃마다 조국의 아픔과 책임을 품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태극기는 바람에 흔들리는 천 조각이 아니다. 한 사람의 양심 속에 세워지는 깃발이다. 나라 사랑은 큰 구호보다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 일, 자유를 귀하게 여기는 일, 아픈 역사를 잊지 않는 일, 약한 이를 외면하지 않는 일이다.

“오늘도 자유를 노래하는”이라는 마지막 지향은 이해인 수녀의 자유관을 드러낸다. 자유는 자기 욕망을 마음껏 펼치는 일이 아니다. 두려움과 증오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타인을 억압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영혼의 상태다. 무궁화가 부르는 자유는 승자의 함성이 아니다. 많은 희생을 기억하는 낮은 노래다. 자유를 얻기 위해 흘린 피를 잊지 않으며, 그 자유로 다시 누군가를 짓밟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이해인 수녀의 「무궁화」는 나라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한 송이 꽃처럼 나라의 아픔을 품어 보라고 권한다. 큰소리로 애국을 외치기 전에 상처 입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고 한다. 자유를 노래하기 전에 자유를 위해 쓰러진 이들의 이름을 가슴에 심으라고 한다.

이 시에서 무궁화는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고, 슬프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침묵하면서도 가장 많은 것을 말하고, 지면서도 패배하지 않는다. 그 모습은 이해인 수녀의 시적 생애와 닮아 있다. 상처를 향기로 바꾸고, 외로움을 기도로 바꾸며, 세상의 어두운 곳마다 작은 꽃 한 송이를 놓아주는 삶이다.

이해인의 무궁화는 나라의 꽃이기 전에 사랑의 꽃이다. 아픔을 숨기지 않되 원망하지 않는 꽃, 자유를 노래하되 교만하지 않는 꽃, 상처 입은 겨레를 판단하지 않고 품어 주는 꽃이다.

그 꽃 앞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순수함은 세상을 모르는 깨끗함이 아니다. 세상의 아픔을 다 알고도 마음을 더럽히지 않는 힘이다.

이해인 수녀의 「무궁화」는 바로 그 순수함으로 피어난다. 한 송이 꽃의 붉은 가슴 안에 분단된 겨레를 품고, 울지 못한 이들의 눈물을 품고, 아직 만나지 못한 남과 북의 손을 품는다.

무궁화는 하늘을 향해 서 있다. 그 모습은 꽃의 자세이면서 한 수도자의 기도이며, 상처 많은 민족을 위해 밤새 꺼지지 않는 작고 붉은 촛불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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