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노영선 작가의 '날 죽여줘요'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노영선 작가의 '날 죽여줘요'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4.11.20

날 죽여줘요

수필가 노영선

Y 선생님은 꽃을 유난히 좋아한다. 한마디로, 그는 걷는 식물백과사전이었다. 그를 화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 꽃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첫사랑을 다시 만난 사람 같았다. 코를 꽃잎에 대고 향기를 들이마시며 심호흡을 하는 모습은, 차라리 꽃이 그에게 안겼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의 집 마당은 사시사철 꽃밭이고, 베란다에는 각종 난이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심지어 장독대 뚜껑 위에서도 생명력이 넘쳤다. ‘흙손’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을 처음 본 날이었다.

가을이 오자, 그는 국화로 온 집안을 장식하겠다고 했다. 화원에 들러 꽃을 고르며 그는 내게도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라며 말했다. 마치 ‘콜라보’라는 말도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같았다. 그와 변두리 호숫가를 걸으며 깔깔 웃던 기억이 선명하다. 깨끗한 공기에 취해 기분이 좋았던 그날, 문득 괴테의 말이 떠올랐다. “가장 여성적인 것이 천상으로 우리를 끌어올린다.” 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여성적인 사람이었다. 말투는 늘 부드럽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마치 교양 강좌의 표본 같았다.

그와의 첫 만남은 아이보리색 겨울 외투에 긴 머리를 단정히 묶고 부드럽게 미소를 짓던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친구로, 동료로, 그리고 삶을 나누는 깊은 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나 지금의 관계를 만든 결정적 사건은 30년 전, 수원 K초등학교에서 벌어졌다.

당시 나는 교육자료를 출품한 설명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갔지만, 발표 순서가 오후로 밀리며 긴 시간 대기해야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주차장으로 향했을 때, Y 선생님을 만났다. 그는 나처럼 지친 얼굴로 대중교통으로 온 탓에 힘들었다며 내 차를 타고 가자고 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화장실이 급한 나는 차 키가 들어 있는 작은 손지갑을 그에게 맡기고 잠시 다녀왔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에는 텅 빈 공간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경비실로 달려갔다. “차를 내일 가져가면 안 될까요?” 나는 간곡히 부탁했지만, 경비원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안 됩니다. 축구 골대 앞이라 내일 새벽 조기축구회가 와요. 오늘 꼭 차를 빼셔야 합니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미 저녁 7시, 서울까지 갔다 오려면 네 시간은 족히 걸릴 터였다. 지하철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은 끝없이 이어진 것만 같았다. ‘Y 선생님은 왜?’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집 대문 앞,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한 사람이 보였다. 거지라도 된 듯 초라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이는 다름 아닌 Y 선생님이었다. 그는 몸을 떨며 “노 선생, 날 죽여줘요!”라고 외쳤다.

놀란 나에게 그는 한참 동안 울먹이며 사과했다. “노 선생 키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만 까맣게 잊었어요. 집에 와서야 키를 발견했는데, 노 선생님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생각하니 제가 죽고 싶을 만큼 미웠어요.” 그의 진심 어린 사과에 마음은 누그러졌지만, 차는 여전히 학교에 있었다.

결국, 우리는 함께 차를 가지러 가는 길에 올랐다. 축구 골대 앞에 멀쩡히 서 있는 내 은색 차는 왠지 전에 보던 모습보다 날렵해 보였다. 마치 밤하늘 둥근 보름달이 우리를 비추며 모든 걸 용서하는 듯했다. 차 속에서 우리는 포장마차에서 산 어묵을 먹으며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사건 이후로 우리는 더없이 깊은 관계로 발전했다. 가끔 그는 그날 일을 회상하며 “날 죽여달라고 외쳤던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되었네”라며 웃는다. 생각해보면, ‘날 죽여줘요’라는 그의 외침은 오히려 날 살려준 말이 되었으니, 삶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세월이 흘러도 그날의 기억은 선명하다. 삶의 무게에 눌린 그 밤, 보름달이 비추던 길과 차 안의 침묵, 그리고 손을 꼭 잡던 그 순간. 우리는 서로를 잃지 않았다. 그 사건은 우리의 삶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고, 지금까지도 우리를 단단히 이어주는 고리가 되었다.

삶은 때로 웃음과 눈물, 위트와 비장이 교차하며 펼쳐진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만난 인연은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한다. Y 선생님의 외침은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너는 과연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있는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노영선 작가의 수필 ‘날 죽여줘요’는 일상의 작은 사건을 통해 인간관계의 소중함과 삶의 깊이를 섬세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이야기를, 그는 독창적인 시선과 감성으로 재구성하여 삶의 철학과 미학을 함께 담아냈다.

작가의 수필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태도가 녹아 있다. 작품 속 Y 선생님이 꽃을 가꾸는 모습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을 대하는 그의 애정 어린 자세를 보여준다. 꽃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장독대 뚜껑 위에서도 생명을 키우는 모습은 생명에 대한 작가의 존중과 자연을 향한 깊은 애정을 잘 드러낸다. 이는 작가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소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이 작품은 인간관계의 본질과 그 안에서의 따뜻함을 유머와 비장미를 통해 표현한다. 이야기의 중심 사건인 자동차 키 분실 소동은 긴장과 해프닝을 넘나들며 독자를 웃음과 안타까움 속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그 사건이 단순히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두 사람 사이에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삶의 예측 불가능성과 인간관계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날 죽여줘요”라는 Y 선생님의 외침은 겉으로는 과장된 표현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자신을 책망하는 진심 어린 감정과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이 담겨 있다. 이 장면에서 독자는 인간의 실수와 이를 극복하는 진정성 있는 태도를 통해 삶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노영선 작가의 문체는 담백하면서도 감정의 깊이를 놓치지 않는다. 그는 사건과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면서도 독자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선을 유지한다. 이를 통해 그의 작품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독자에게 따뜻한 위로와 깨달음을 주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특히, 자동차 키를 찾기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묘사된 달빛과 어묵을 나눠 먹는 장면은 비장미와 유머를 동시에 담아내며,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작가의 미의식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단순히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차원을 넘어, 작가의 삶과 철학을 응축한 하나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우연한 사건 속에서도 필연적인 가치를 발견하며, 이를 통해 관계의 소중함과 인간의 따뜻함을 말한다. “날 죽여줘요”라는 Y 선생님의 외침이 결국 “우리를 살리는 외침”으로 귀결된 것처럼, 삶의 고비에서 찾아오는 사건들은 결국 인간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계기가 된다.

노영선 작가의 작품 세계는 삶의 단순함 속에 숨어 있는 깊이를 발견하고 이를 독자와 나누는 데 있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장면 속에서도 인생의 철학적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독창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인간관계의 소중함, 삶의 예측 불가능성,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이 그의 수필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요컨대, 노영선 작가의 ‘날 죽여줘요’는 단순한 해프닝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삶의 아름다움은 바로 인간의 따뜻함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삶의 철학이 녹아 있는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일상 속의 진정한 행복과 관계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작가는 유머와 감동, 그리고 비장미를 한데 엮어 삶의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지닌 미학적 깊이와 철학적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 시

날 죽여줘요

꽃잎에 숨을 담는 사람,

향기로 말을 건네는 사람,

그의 집엔 사계절이 피어나고,

장독대 위에도 생명이 움튼다.

그와 걸었던 호숫가,

맑은 공기가 우리의 웃음에 실리고,

괴테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

“가장 여성적인 것이 천상으로 우리를 끌어올린다.”

아이보리색 외투 속,

살짝 미소 짓던 그의 첫 모습.

그 순간이 시간 속에 깃들어

삼십 년의 인연이 되었다.

수원 어느 운동장에서,

자동차 키와 함께 사라진 그는

어둠 속 나를 남겨 두고,

밤의 거리를 헤매게 했다.

눈앞이 캄캄한 채,

천 리 같은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집 대문 앞,

몸을 떨며 외치던 한 사람.

“날 죽여줘요!”

그날의 울음과 떨림이

지금은 웃음으로 남아 있다.

밤하늘의 달빛 아래,

차는 우리를 기다리고,

포장마차 어묵 국물처럼 따뜻한 침묵.

그의 손을 잡은 뒤,

우리는 서로를 놓지 않았다.

삶은 때로 어둠 속 길을 걷는 일.

그러나 누군가 손을 잡아줄 때,

그 길은 빛으로 물든다.

그날의 외침은,

결국 나를 살리는 일이었다.

노영선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수필 ‘날 죽여줘요’ 를 읽고 이렇게 펜을 듭니다. 글을 읽으며 한 사람의 작은 실수와 사소한 사건이 두 사람의 인연을 어떻게 아름답고 깊은 관계로 이끌어갈 수 있는지 감동적으로 느꼈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며 수많은 관계를 맺고, 때로는 실수 속에서 서로를 오해하거나 멀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그날의 다소 곤란한 상황 속에서도 상대방의 진심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관계의 씨앗을 발견하셨습니다. 차 안에서 어묵을 나누며 손을 잡고 있었던 두 사람의 침묵은 단순히 피곤을 나눈 시간이 아니라, 깊은 신뢰와 따뜻한 교감의 시작이었음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웃음과 눈물, 그리고 삶의 묵직한 진리를 담고 있었습니다. 특히 “날 죽여줘요”라는 과장된 외침이 결국 두 사람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삶의 아이러니와 인간관계의 복잡한 아름다움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관찰력과 따뜻한 시선은 독자인 저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글로 풀어내는 선생님의 감각은 제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더욱 넓혀주었습니다. 또한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으면서도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낸 글은 저를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글을 읽고 나서 저도 제 주변의 사람들과 맺은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의 실수에 원망을 품기도 하고, 관계를 단절하기도 했던 제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관계란 완벽할 필요는 없으며, 실수를 통해 더 깊은 신뢰를 쌓아갈 수 있다는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 글이 탄생할 수 있었던 선생님의 삶의 태도와 철학이 존경스럽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따뜻하게 이해하며, 일상의 작은 순간에도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마음이 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글을 읽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선생님의 글을 통해 삶의 지혜와 따뜻함을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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