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톤 트럭 위에서 띄우는 한 표의 소망 ― 대통령에게 보내는 평범한 운전사의 마지막 희망 트러운전사 자연인 안최호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4.5톤 트럭 위에서 띄우는 한 표의 소망 ― 대통령에게 보내는 평범한 운전사의 마지막 희망 트러운전사 자연인 안최호 2025.06.03
□ 안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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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톤 트럭 위에서 띄우는 한 표의 소망
― 대통령에게 보내는 평범한 운전사의 마지막 희망
트러운전사 자연인 안최호
오늘은 대통령 선거일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날, 나는 이미 며칠 전 사전투표를 마쳤다. 투표소의 고요한 공기 속에서, 나는 기표소 안에 홀로 서 있었다.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수십 년을 도로 위에서 살아온 한 사람이, 조용히 삶의 무게를 눌러 기표 도장을 찍는 순간이었다. 내 손끝에는 내가 살아낸 하루하루, 그리고 나처럼 묵묵히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의 땀이 실려 있었다.
나는 트럭운전사다. 새벽이면 얼음장 같은 시동을 걸고, 하루 종일 바퀴 위에서 계절을 넘는다. 화물칸에 실린 짐보다 더 무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서민들의 삶이다. 기름값이 오르면 가장 먼저 움찔하고, 고속도로 휴게소 김밥 한 줄 값에도 눈치를 보며, 길 위의 생활은 내게 정치가 멀지 않음을 절감케 한다. 뉴스는 복잡한 외교와 거대한 프로젝트를 말하지만, 내게 정치는 바로 삶의 체감이다.
나는 바란다. 이번에 뽑힐 대통령이,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낮은 곳의 온기를 알아보는 사람이길. 정장 차림으로 사진 찍기에 바쁜 이가 아니라, 안전모를 쓴 나를 지나칠 때 눈을 마주쳐줄 수 있는 사람. 서민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고, 말보다 먼저 귀를 여는 사람. “화물차 기사도 국민입니다”라는 말에 머뭇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
정치는 수치로 설명되지만, 삶은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다. 자살률, 청년실업률, 폐업률—이 잔혹한 숫자들 뒤에 있는 절망과 눈물, 그 얼굴들을 먼저 보려는 대통령이면 좋겠다. 카메라 앞에서 말 잘하는 정치인보다, 카메라 뒤에서 약속을 지키는 사람. 유세장의 박수 소리보다, 골목길 가게 불 꺼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
나는 대통령이 위대한 사람이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사소한 배려 하나에 진심이 배어 있고, 거창한 개혁보다 작고 확실한 약속을 지켜내는 대통령. 무대 위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보다, 일상 속에서 묵묵히 국민 곁에 선 모습으로 오래 기억되는 대통령.
오늘도 나는 트럭의 운전석에 앉는다. 무게 중심을 잡듯 삶의 중심을 다시 다잡는다. 땀이 축축이 밴 장갑을 끼고, 브레이크를 밟으며 출발선에 선다. 대통령은 알지 못하겠지만, 나라는 존재는 오늘도 이 나라의 한 톱니바퀴로 살아간다. 그리고 간절히 바란다. 다음 대통령은 나 같은 평범한 이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그게 정치다.
그게 나라다.
그리고 그게, 내가 대통령에게 보내는 마지막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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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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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트럭운전사 자연인 안최호의 글은 도로 위에서 살아온 한 인간의 체온이 서려 있는 언어로, 정치를 말하는 방식의 새로운 전범을 제시한다.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의견 개진이 아니다. 오히려 생존의 언저리에서 꺼낸 가장 정직한 삶의 언어이며, 세상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대통령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탄원서이자 애틋한 연서(戀書)다. 그 글에는 현장의 먼지와 땀, 주유소 냄새와 바퀴 진동이 고스란히 배어 있으며, 그것은 수치를 논하는 보고서보다 백 배는 더 무겁고 정당한 목소리다.
이 글은 단순히 ‘서민이 바라는 대통령’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이른 새벽 시동을 건 트럭이 어둠을 뚫고 달려 나가듯, 이 시대 정치의 안갯속을 헤치며 묻는다. “당신은 정말 우리를 보았는가?” 안최호가 타고 달려온 그 수만 킬로의 여정은 단지 운전의 궤적이 아니라, 나라의 맥박을 짚는 민초의 걸음이었다. 휴게소에서 먹는 김밥 한 줄, 도로를 따라 흘러간 사계절, 피곤에 찌든 잠 한숨—그 모든 일상이 곧 정치였고, 살아 있는 민심이었다.
그는 대통령을 위대한 영웅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안최호가 바라는 대통령은 말보다 귀가 먼저 열려 있는 사람이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지 않고 낮은 곳에 앉아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 그의 바람은 구체적이다. 자살률과 실업률, 폐업률 같은 냉혹한 숫자들 이면에 숨어 있는 이름 없는 사람들을 꺼내 달라고, 그들을 안아 줄 줄 아는 정치인이 되어 달라고. 말 한마디보다 진심 한 줌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위로의 수사학이 아니라 진정한 행동임을, 그는 말없이 말한다.
이 글은 동시에 ‘말의 무게’를 생각하게 만든다. 안최호는 화려한 문장을 쓰지 않는다. 그가 쓰는 문장은 짧고 단순하지만,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문장은 고운 외피를 벗고 그 속살까지 드러날 때 가장 아름답다. 그는 말로 포장하지 않고 삶으로 증명한다. 그러므로 그의 문장은 트럭의 엔진 소리처럼 단단하고, 바람을 가르는 타이어 마찰처럼 생생하다. 그것은 문학이 삶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문학 자체가 되는 경지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이 글에 흐르는 고요한 온기다. 그것은 항의가 아니라 당부이며, 비난이 아니라 기도이다. 마치 이른 봄 언 땅을 일구는 농부의 손길처럼, 한 줄 한 줄에 기대와 사랑, 그리고 품위가 녹아 있다. 그는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제 몫을 다한 국민으로서, 말 없이 나라를 떠받쳐온 이들 중 한 사람으로서, 한 마디 묻고 싶은 것이다. “당신은 나 같은 사람을 기억하겠는가?” 이 물음은 울림으로 남는다. 대통령이란 그 기억 하나에 달려 있는 자리임을, 이 글은 보여준다.
요컨대, 안최호의 이 글은 민주주의가 왜 ‘사람’에서 출발해야 하는지를 가장 문학적으로 증명하는 시적 보고서다. 도로 위에 내려앉은 시인의 눈, 바퀴 아래에 감긴 민심의 결, 그리고 한 줄기 바람에 실은 소망의 노래. 그 모든 것이 이 글 안에 있다. 이 글은 트럭의 계기판보다 정직하고, 대통령의 연설문보다 진실하며, 뉴스의 헤드라인보다 오래 남을 것이다. 이토록 단단한 삶의 언어로 쓰인 글을 문학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문학은 도대체 무엇이어야 하는가.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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