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일 시인의 시 '아소산 분화구에서'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주광일 시인의 시 '아소산 분화구에서'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5.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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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산 분화구에서
시인 주광일
아소산 분화구 깊은 곳에서
뿜어나오는 유황 연기가
푸른 하늘로 떠오른다.
떠오른 흰 연기가
그대로 흰구름이 된다.
내 눈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이 장엄한 변신이 신비롭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이다.
구사센리에 핀 억새풀들은
바람결에 흔들리는데,
분화구에 고여 있는
옥색의 유황물이
나그네의 가슴을 흔든다.
옥색 빛의 달콤한 유혹 때문인가?
아니면 무엇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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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산 분화구에서
― 혼돈을 건너는 영혼의 호흡, 존재의 맑은 순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은 문인의 영혼 속에 공직자의 소명을 품은 드문 시인이다. 그의 정신세계는 언제나 애국과 애족, 그리고 봉사의 신념으로 채워져 있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평생 헌신해온 그의 삶은 늘 책임과 의무로 단단히 조여 있었다. 그 엄정한 사명의식은 때로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독과 피로를 불러왔다. ‘아소산 분화구에서’는 바로 그 혼돈의 시대를 지나온 한 지성의 내면이, 자연 앞에서 비로소 숨을 고르는 순간의 기록이다.
시의 첫 장면에서 ‘분화구에서 뿜어나오는 유황 연기’가 ‘푸른 하늘로 떠오르고’, 곧 ‘흰구름이 된다’는 변화는 주광일 문학의 정수를 드러낸다. 그것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혼탁한 현실을 정화하려는 영혼의 상승이다. 국가의 혼란과 인간의 내면적 번민이 한데 얽힌 시간 속에서, 시인은 아소산의 깊은 숨결을 통해 자기 안의 소음을 가라앉히고자 한다. 땅의 분화는 곧 마음의 분화이며, 그 뜨거운 연기가 구름으로 변하는 순간, 그는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찾아내는 존재의 법칙을 본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라는 구절은 감각의 압도이자 내면의 전율이다. 이는 단순한 경관의 감탄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인간이 처음 맞닥뜨리는 자유의 현기증이다. 국가적 소명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이 잠시 멈추어, 자연의 거대한 질서 앞에서 다시금 ‘사람’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이어 등장하는 ‘구사센리의 억새풀들’은 주광일의 삶과 닮아 있다. 바람에 흔들리되 꺾이지 않는 억새처럼, 그는 시대의 바람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 억새의 부드러움은 그의 품성을, 그 견고한 뿌리는 그의 신념을 상징한다. 바람은 혼돈의 시대이며, 억새의 유연한 흔들림은 그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한 인간의 의지이다.
‘분화구의 옥색 유황물’은 시의 정점이자 주광일 시인 정신의 은유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던 날들의 피로와 상처가 그 유황물처럼 짙게 고여 있지만, 그것이 옥색으로 빛나는 순간, 그는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옥색 빛의 달콤한 유혹”은 단순한 자연의 색채가 아니라, 휴식과 구원의 상징이다. 그에게 아소산은 안식처이며, 동시에 새로운 결단의 현장이다.
주광일 시인의 시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숙성된 침묵의 언어로 쓰인다. 그는 세계를 바라보되 교훈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되 자만하지 않는다. 공직자의 냉철함과 시인의 따뜻함이 한 몸처럼 어우러져 있다. 그의 시는 애국의 신념이 영혼의 깊은 곳에서 문학으로 환원된 형태이며, 그 정신적 휴식이 바로 예술의 승화로 이어졌다.
‘아소산 분화구에서’는 단순한 자연의 찬미가 아니다. 그것은 혼돈을 지나온 한 인간이 자신을 용해시켜 다시 맑은 영혼으로 태어나는 과정의 기록이다. 분화구의 유황연기처럼 뜨겁고, 흰구름처럼 순결한 이 시는, 한 시대를 묵묵히 버텨온 공직자의 고요한 기도이자, 인간 주광일 시인의 내적 평화 선언이다.
그의 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한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위에 빛이 남는다.”
그 빛은 곧 그의 시이며, 그의 생의 증언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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