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술仁術의 시인, 사랑의 철학자 이희국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인술仁術의 시인, 사랑의 철학자 이희국 2025.10.12
■
인술仁術의 시인, 사랑의 철학자 이희국
청람 김왕식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선(善)’이 따라붙는다.
시인 이희국. 그러나 그는 단지 시인만이 아니다.
의사이자 약사이며, 부모의 은혜를 기억하는 아들이고, 아내를 향한 헌신의 남편이며, 자녀에게 온 생애를 기도로 바치는 아버지다. 그의 삶은 하나의 직업으로는 결코 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의 총체’요, ‘실천의 언어’다.
이희국 시인의 존재는 마치 한 편의 시와 같다. 그 시는 화려한 수사나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사랑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인술(仁術)의 손끝으로 병든 몸을 어루만지고, 시심(詩心)의 언어로 상한 마음을 치유한다. 의학은 그의 손에, 시는 그의 마음에 있다. 그리고 그 두 세계가 하나로 합쳐질 때, 인간을 살리는 진정한 ‘치유의 예술’이 된다.
그의 시를 읽으면 언제나 ‘선의 체온’이 느껴진다.
그것은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된 사랑의 기록이다.
그의 시는 교훈을 설파하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보여준다 —
어떻게 한 사람이 선을 일상으로, 사랑을 습관으로, 시를 생명으로 살아낼 수 있는지를.
이희국 시인의 세계에는 꾸밈이 없다.
그는 위선을 모른다.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진정의 언어만을 다룬다.
그의 시는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낮은 언어로 쓰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낮지 않다. 그 안에는 인간을 향한 경외, 생명에 대한 경건, 그리고 세상에 대한 연민이 흐른다.
부모님에 대한 효심은 그의 생애의 근원이다.
그는 말한다. “부모의 숨결이 곧 나의 첫 시어였다.”
그의 효는 단지 의무가 아니라 ‘존재의 회귀’이다.
그는 부모를 통해 생명을 배우고, 생명을 통해 하나님을 배운다.
그렇기에 그의 시에는 언제나 ‘감사’의 기운이 서려 있다.
그 감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신앙의 형태다.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 또한 시적이다.
그는 함께 살아온 세월의 굴곡 속에서도 ‘존중’을 잃지 않는다.
아내의 미소 하나에 하루의 피로가 녹고, 아내의 기도 한 줄에 인생의 방향이 선다.
그의 사랑은 유행하는 낭만이 아니라, 헌신으로 빚어진 시간의 예술이다.
그는 말 대신 행동으로 사랑을 쓰는 사람이다.
자녀에 대한 사랑 또한 다르다.
그는 자녀를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본다.
‘가르침’보다 ‘본보임’을 택하고, 말보다 ‘품음’을 먼저 한다.
그의 시에서 자녀는 단순한 가족이 아니라, 사랑을 전이시키는 또 하나의 존재다.
그는 아버지이자,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희국 시인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세속적 성공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끝내 ‘겸허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겸손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사랑의 질서’를 지키는 의식이다.
그는 누구에게나 손을 내밀 줄 알고, 누구의 고통에도 귀를 기울인다.
이 시대가 잃어버린 인간다움이 그에게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의 시는 의학처럼 정확하고, 기도처럼 따뜻하다.
언제나 인간의 아픔을 직시하지만, 절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의 문장은 환자의 숨결처럼 조용히 들리고, 그 속에는 늘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흐른다.
그에게 시는 위로의 약이고, 사랑은 영혼의 처방전이다.
이희국 시인은 묻지 않고 준다.
그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진다.
그의 삶 전체가 이미 시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도 세상이라는 병든 육신 위에
작은 시 한 줄을 붓는다.
그 시가 사람의 상처를 감싸고,
그 사랑이 또 다른 생명을 일으킨다.
그의 이름은 그래서 하나의 상징이 된다.
‘사람을 살리는 시인, 사랑으로 존재하는 인간.’
이희국 시인 —
그는 의사보다 따뜻하고, 시인보다 깊다.
그의 삶은 한 편의 시요, 그 시는 한 사람의 생애를 구원한다.
그가 남긴 사랑의 궤적은 이 시대 가장 순결한 빛으로 남을 것이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