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혼이 들어간 밥, 사람의 온기로 지은 삶의 시학 ― 시인 박정민 시 '밥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여'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혼이 들어간 밥, 사람의 온기로 지은 삶의 시학 ― 시인 박정민 시 '밥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여' 2025.10.17
혼이 들어간 밥, 사람의 온기로 지은 삶의 시학 ― 시인 박정민 시 '밥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여'

밥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여

시인 박정민

웸메 새댁 기술도 참 좋소

어쩌 이렇게 삼층밥도

할 줄 안다요

밑은 새까맣게 타부렀고

가운데는 질퍽허고

맨 위 꼭대기 층은 생쌀 꼬두밥이네

아따 참 기술이 좋아 부네

새댁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붉은 치마로 얼굴을 가리지만

둘 다 삘겅색이여 하시는 할매

새댁 이리 와 봐

무쇠 솥단지 허고 양은 솥단지

물 조절도 다르고 불 조절도

다른 것이여

풀섭나무 허고 장작불도

불 조절을 잘 혀야 한 것이 여 알았제

밥은 그냥 허는 것이 아니라

혼이 들어가야 허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여

요즘 새댁들은 띠릴리 소리 나는

전기 밥솥에 단추 하나만 꾹 누르면 지가 알아서 다허제

밥 다되었다고 노래까지 불러주는디도

그 밥도 하기 싫다고 허그만

세상 참말로 요지경 속이여

편허면 더 편헐라고 헌당게

혼이 들어간 밥, 사람의 온기로 지은 삶의 시학

― 박정민 시 ‘밥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정민 시인은 곡성댁이다.

시인의 ‘밥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여’는 토속 사투리의 구수한 리듬 속에 인간의 땀과 정성이 녹아 있는, 삶의 본질에 대한 탁월한 시적 비유이다. 이 시는 밥 짓기의 과정 속에서 인간 존재의 태도,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 그리고 사라져가는 공동체의 정서를 따뜻하게 포착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시골 할머니와 새댁의 대화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혼이 들어가야 진짜 밥이 된다”는 인생의 진리를 품고 있다.

시의 서두에서 “웸메 새댁 기술도 참 좋소”라는 첫마디는 토속 정서의 친근한 화법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삼층밥’이라는 과장된 표현 속에는 농촌 여인들의 유머와 따뜻한 타박이 공존한다. “밑은 새까맣게 타부렀고 / 가운데는 질퍽허고 / 맨 위 꼭대기 층은 생쌀 꼬두밥이네”라는 장면은 단순한 요리 실패가 아니라, 삶의 미숙함을 향한 애정 어린 웃음이다. 시인은 사투리의 리듬을 통해 인생의 시행착오를 재치 있게 형상화한다. 할머니의 꾸지람 속에는 삶의 지혜가 있고, 새댁의 얼굴 붉힘 속에는 세대의 순진한 어색함이 있다.

이 시의 진정한 힘은 ‘말’이 곧 ‘삶’이라는 점에 있다. “무쇠 솥단지 허고 양은 솥단지 / 물 조절도 다르고 불 조절도 다른 것이여”라는 구절은 단순한 조리법의 차이를 넘어, 세대 간 노동의 감각 차이를 드러낸다. 무쇠솥은 인내와 시간의 상징이고, 양은솥은 편리함과 속도의 상징이다. 불의 세기를 조절하며 밥을 짓던 시절, 사람들은 그 불빛 속에서 가족의 생을 지켜냈다. 그 불의 감각이 사라진 시대를 향해 시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회고한다.

시의 핵심 문장은 “밥은 그냥 허는 것이 아니라 혼이 들어가야 허네 / 정신일도 하사불성이여”이다. 이 대목은 단순한 속담이 아니라, 시인의 철학적 선언이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 마음이 한곳에 이르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고사 ― 를 농촌 할머니의 입을 통해 풀어낸 이 구절은, 생활의 언어로 철학을 말하는 시인의 솜씨를 드러낸다. 밥은 생존의 상징이자 노동의 결정체이며, 그 속에는 인간의 혼이 들어가야 한다는 진리가 담겨 있다.

이어지는 “요즘 새댁들은 띠릴리 소리 나는 전기밥솥에 단추 하나만 꾹 누르면 지가 알아서 다허제”라는 구절은 현대 문명의 편리함을 향한 풍자이자 우려다. 자동화된 세상에서 인간의 손맛, 마음의 정성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꼬집는다. “밥 다되었다고 노래까지 불러주는디도 / 그 밥도 하기 싫다고 허그만”이라는 대목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씁쓸하다. 편리함의 끝은 결국 인간의 무감각이다. 박정민 시인은 이 장면을 통해,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혼’이 식어가는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짚어낸다.

시의 말미 “편허면 더 편헐라고 헌당게”는 농민의 체념이자 깨달음이다. 삶은 점점 편해지지만, 마음은 점점 가벼워진다. 이 한 줄에는 ‘풍요 속의 빈곤’을 꿰뚫는 시인의 통찰이 담겨 있다. 세상의 변화 앞에서도 여전히 할머니는 지혜의 중심에 서 있다. 그에게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세대와 생명을 이어주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박정민 시인의 언어는 단순한 사투리가 아니다. 그것은 흙냄새와 땀냄새가 스며 있는 “생활의 시학(詩學)”이다. 그는 농촌의 일상에서 인간의 본질을 포착하고, 토속 언어를 철학의 언어로 승화시킨다. 시의 문체는 투박하지만, 그 투박함이 곧 진실의 질감이다.

‘밥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여’는 사라져가는 노동의 미학에 대한 찬가이자,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법을 잊지 말라는 일침이다. 밥 짓기는 곧 인생 짓기이며, 불의 조절은 곧 마음의 조절이다. 밥에 혼이 들어가야 하듯, 삶에도 진심이 들어가야 한다. 박정민 시인은 그 단순한 진리를 가장 따뜻한 언어로 일깨운다.

그의 시는 묻는다.

“그대는 요즘, 밥을 어떻게 짓고 있는가?”

그 물음은 밥상 위에서, 마음의 자리에서,

여전히 뜨겁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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