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불일암 낡은 의자 하나, 그렇게 봉당 한 켠에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법정스님 불일암 낡은 의자 하나, 그렇게 봉당 한 켠에 2025.10.25
법정스님 불일암 낡은 의자 하나, 그렇게 봉당 한 켠에
청람 김왕식
송광사 불일암은 법정 스님이 생의 마지막까지 머물던 자리다. 그곳의 봉당은 세월의 발자국이 겹겹이 쌓인 흙의 냄새를 품고 있다. 그 아래에는 낡은 나무 의자가 하나 놓여 있고, 그 옆 서탁 위에는 세상을 다 떠난 뒤에도 여전히 두 권의 책이 남아 있었다.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의 『소요유』. 두 권의 책은 스님의 말없는 벗이자, 생의 마지막을 지탱한 두 기둥이었다. 그 자리에는 향내보다 깊은 고요가 깃들어 있고, 침묵보다 따뜻한 철학이 머문다.
법정은 생전에 말하였다. “나는 그저 비워내며 살고 싶을 뿐이다.”
그가 말한 ‘비움’은 단순히 소유하지 않음이 아니라, 욕망으로부터의 자유였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가지려 하고, 더 높이 오르려 하며, 더 화려해지려 애쓴다. 그는 그 반대편에서, 버리고 낮추는 길을 택했다. 노자의 가르침처럼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강한 것”이라 믿었고, 장자의 말처럼 “자유로운 혼은 하늘과 맞닿는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했다. 불일암의 허름한 방 한 칸이 바로 그 실천의 현장이었다.
불일암의 하루는 소리 없이 흘렀다. 새벽이면 솔바람이 커튼처럼 열리고, 낮에는 새 그림자가 경전을 덮었다. 스님은 차를 달이며 잠깐의 맑음을 누렸고, 그 잔잔한 시간 속에서 세상의 복잡한 욕망은 먼지처럼 가라앉았다. 그가 떠난 뒤에도 그 풍경은 그대로였다. 그저 한 사람만 사라졌을 뿐, 자리가 곧 가르침이 되어 남았다. 낡은 의자에는 여전히 그의 온기가 배어 있고, 서탁 위의 책장은 여전히 바람을 기다린다.
법정이 세상에 남긴 말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무소유’이다. 하지만 그것은 물건을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다. 스님에게 무소유란 ‘가지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모든 것을 품는 길’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채울수록 무거워지고, 비울수록 가벼워진다. 그는 그 단순한 진리를 일생 동안 증명해냈다. 재산을 버리고, 명예를 내려놓고, 이름조차 지우려 했다. 그렇게 비워낸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가. 고요, 평화, 그리고 자비였다.
노자는 ‘도(道)’를 말했고, 장자는 ‘자유’를 말했다. 법정은 그 둘을 자신의 삶으로 통합했다. 도는 길이요, 자유는 숨이다. 그 길을 따라 한 생을 걸으며, 그는 소유의 사슬을 벗고 진정한 해방을 얻었다. 세상은 그를 ‘무소유의 성자’라 불렀지만, 정작 그는 스스로를 그저 ‘한 사람의 수행자’라 여겼다. 그의 삶은 설법보다 더 큰 설법이었고, 그의 침묵은 어떤 언어보다 깊은 울림이었다.
봄비 내리는 날이면 불일암 처마 끝에서 물방울이 한 줄기씩 떨어진다. 그 빗방울마다 세속의 먼지를 씻어내듯 투명하다. 그 자리에서 노자의 문장이 바람에 흔들리고, 장자의 자유가 새소리로 이어진다. 스님의 자취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비움의 자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한 생이 떠난 자리에 무심한 고요가 깃들고, 그 고요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본다.
법정은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바람이 되고, 책갈피가 되어, 산사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머문다. 무소유는 결핍이 아니라 완성이다. 더 이상 채울 것이 없는 평안, 더 이상 가질 것이 없는 자유, 그것이 곧 법정의 깨달음이었다.
오늘도 불일암 봉당에 앉으면, 낡은 나무 의자가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 의자에 앉으면 문득 알게 된다. 세상은 갖는 것으로 풍요로워지지 않는다. 버릴 때 비로소 충만해진다.
스님은 떠나며 남겼다. “내가 사라져도, 내 자리에는 여전히 바람이 머무를 것이다.”
그 바람이 곧 무소유의 향기요, 생을 초월한 스승의 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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