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형만 시인의 향기 아래서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허형만 시인의 향기 아래서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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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 시인의 향기 아래서
청람 김왕식
겨울 들판을 거닐 듯, 나는 허형만 시인의 시를 걸어왔다.
그의 시 한 줄은 바람 같고, 흙 같으며, 때로는 물결처럼 잔잔하다가도 심장을 치는 파문을 남긴다. 내가 서울 오산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교실의 한켠에서 처음으로 그의 시 〈녹을 닦으며〉를 읽던 날이 아직도 또렷하다.
칠판에 적은 시 구절이 교실의 공기를 바꿨다. 학생들의 눈빛이 흔들리고, 내 목소리조차 떨렸다. 가르친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듣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그 시를 통해 ‘노동의 땀 속에 깃든 영혼의 빛’을 배웠고,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시 한 편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허형만 시인의 시는 그 일을 해냈다. 학생들의 마음속에도 시인이 남긴 온기가 스며들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참된 시인은 문장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존재로 가르친다. 허형만 시인은 바로 그런 존재였다.
그의 시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순천을 알게 되었다. 순천만 갈대숲을 거닐다 보면 바람이 시인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한 포기 갈대마다 그의 숨결이 묻어 있고, 낙안읍성의 오래된 돌담마다 그의 시구가 스며 있다. 그곳은 단지 풍경이 아니라, 시인의 영혼이 머무는 자리였다. 바람 한 줄기도 허형만의 어조로 운다.
나는 그곳에서 시를 다시 배웠다.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세계, 침묵 속에 흐르는 생명의 숨결을.
목포 또한 그의 향기가 진하게 밴 도시다.
목포대학교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던 시인의 시간은, 교정의 바람결로 남아 있다. 나는 그곳을 걸으며, 시란 결국 ‘누군가의 생을 가만히 닦아주는 일’이라는 그의 믿음을 느꼈다.
그가 걸어온 길에는 장식이 없었다. 오로지 겸손과 성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이 있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세상의 먼지를 닦아내는 일임을 그는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 시인을 인사동 찻집 ‘지대방’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찻잔 위로 김이 오르고, 그 속에서 시인의 미소가 번진다.
이어도문학회(회장 이희국 시인)의 심사 자리에서 나란히 앉아 작품을 논하는 순간, 나는 한 시대의 문학이 내 곁에 앉아 있음을 느꼈다.
그의 말은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비평보다 따뜻하고, 분석보다 깊다. 시를 보는 눈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눈으로 시를 읽는 사람 — 그가 바로 허형만이다.
곧 있을 이어도문학상 시상식에서 다시 그를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문학은 결국 만남의 예술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서로의 문장을 통해 이어지는 운명 같은 인연. 나는 지금 그 인연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무엇보다도 곧 발간될 내 처녀시집 《숨의 연대기》의 프롤로그를 그가 써주셨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의 글 한 줄이 나의 첫 시집에 깃든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축복이 아니라 문학의 계승에 대한 약속이다. 《숨의 연대기》가 세상에 나아갈 때, 그 첫 숨에는 허형만의 숨결이 함께할 것이다.
그의 문장이 나의 문을 열고, 나의 시가 그의 길을 이어갈 것이다. 그것이 나의 영광이며, 문학의 은혜다.
허형만 시인은 내게 시가 무엇인지를 다시 가르쳐준 스승이다.
그는 삶을 시로 빚었고, 시로써 인간을 품었다. 그의 시는 높은 곳이 아닌, 사람의 눈높이에서 피어난 들꽃이다.
나는 이제 그 향기를 가슴에 담아, 나 또한 누군가의 길가에 피어날 작은 들풀이 되고 싶다.
그것이 허형만 시인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이며, 가장 조용한 가르침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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