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계절〉에 대하여 — 동시영 시인의 언어가 도착하는 곳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노동의 계절〉에 대하여 — 동시영 시인의 언어가 도착하는 곳 202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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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계절
시인 동시영
철거 공사장
여윈 인부 한 사람
자신을 철거하듯
일하고 있다
비보다 땀에 더 많이 젖어
피로가 나와 하품하고 있다
후두둑. 빗방울 많이 떨어진다
하늘도 너무 힘들어 땀 흘리나 보다
삶은 노동의 계절
가끔씩 짠 눈물 흘리고 산다
진달래 한 그루
물끄러미 피고 섰다
□ 동시영 시인
동국대학교 국어 국문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 인문학부 수학. 한국관광대학교, 중국 길림 재경대학교 교수 역임.
2003년 『다층』으로 등단.
시집 『펜 아래 흐르는 강물』, 『마법의 문자』, 『수평선은 물에 젖지 않는다』 등. 연구서 『한국 문학과 기호학』, 『현대 시의 기호학』 등. 기행 산문 『여행에서 문화를 만나다』, 『문학에서 여행을 만나다』.
문협월탄문학상, 동국문학상, 문학청춘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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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계절〉에 대하여
— 동시영 시인의 언어가 도착하는 곳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동시영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그 언어가 감성적 체질이나 순간적 영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학문적 사유와 삶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침전된 결과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시인은 세계를 감각적으로 바라보지만, 그 감각은 우연적이거나 감정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사유가 다진 감각이다.
‘노동의 계절’의 중심에 한 노동자가 있다.
철거 공사장에 선 인부 한 사람, 시는 흔히 노동자의 피곤과 고단함을 서사적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철거하듯 / 일하고 있다” 한 문장으로 감정 묘사와 사회적 담론을 단숨에 넘어선다. 인부는 벽을 철거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몸을 소모하며 살아내는 존재로 전환된다. 육체의 피로가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갉아먹는 방식의 삶이 응축되어 있다. 독자가 눈물 흘리도록 유도하는 대신, 시는 노동이 가진 인간학적 진실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땀과 비의 대비 또한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비보다 땀에 더 많이 젖어 / 피로가 나와 하품하고 있다”는 문장에서 땀은 인간의 몸이고, 비는 세계의 몸이다. 인부의 땀이 삶을 버티는 개별적 신체의 기록이라면, 비는 하늘의 피로라는 우주적 피로의 비유다. 시인은 노동을 계급, 빈곤, 비극의 언어로 환원하지 않고, 피로라는 보편의 감각으로 확장한다. 하늘과 인간이 같은 피로의 범주 안에 들어오는 순간, 노동은 더 이상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조건이 된다.
그 뒤를 잇는 한 줄,
“삶은 노동의 계절”
이 문장은 쉬운 말로 보이나, 쉽게 쓰인 문장은 아니다.
‘삶은 노동을 포함한다’가 아니라 ‘삶은 노동이다’라고 선언하지 않고, “계절”이라는 시간을 붙여 생의 굴곡 · 인내 · 반복 · 순환을 모두 안착시킨다. 노동이 영원히 계속되는 형벌이라는 인식도, 노동을 숭고한 미학으로 미화하는 태도도 피한다. 그저 인간이 거쳐야 하는 계절로서의 노동, 견디는 삶의 온도만 놓아두고 시인은 물러난다.
마지막, 진달래.
고통을 잊게 하는 장치도 아니고, 위안의 표상도 아니다.
“물끄러미 피고 섰다.”
그저 존재해 있을 뿐이다.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지도 않고 피해가지도 않는다.
함께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동시영 시의 정서는 바로 이 고독의 병치, 조용한 공존이다. 말 없이 곁에 있는 것, 그것이 위로의 과장보다 깊은 울림을 남긴다.
하여,
그의 시는 감정적으로 독자를 끌어당기지 않는다.
대신 독자 스스로 멈춰 서게 한다.
눈물을 요구하는 시가 아니라 각성을 허용하는 시다.
그러한 절제가 가능해진 배경에는 시인의 삶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며 한국어의 구조와 상징체계를 뼈대 삼았고, 한양대학교 박사 과정에서 현대 시와 기호학적 해석학에 천착하며 언어를 감정의 통로가 아닌 의미 발생의 장치로 규정한 시간들이 있다.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에서의 인문학 수학과, 한국 · 중국 대학에서의 교수 경험은 언어 · 이미지 · 기호의 상호작용을 체계적으로 탐구하게 했다.
이론서는 개념으로 끝나지 않았고, 훗날 시의 언어로 변환되었다.
여행기에서 축적된 관찰의 감각 또한 그의 시를 만든다.
낯선 곳을 마주하면서 “감동을 쌓는 법”보다 “덜어내는 법”을 먼저 배웠다는 듯,
그의 시는 여백과 절제를 통해 본질만 남기는 방식을 따른다.
수상 경력과 문단의 인정은 뒤따라온 결과일 뿐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에는
‘자기 언어를 지키려는 고집’이 있었다.
시 ‘노동의 계절’은 그 고집이 가장 간결하고 명료하게 구현된 시이다.
말을 줄이며 의미를 키우고, 설명을 버리며 사유를 세운다.
슬픔을 외치지 않으면서 슬픔을 누구보다 정확히 보여준다.
동시영 시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삶을 소란스럽게 울리지 않고
삶을 조용히 깨닫게 만드는 시]
유행을 좇아 독자를 끌어들이는 시인이 아니라,
유행과 관계없이 독자가 따라와 읽어야 하는 시인.
그가 그 자리에 도달하기까지는
학자의 시간, 여행자의 시간, 교수의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언어를 끝까지 지키려 한 시인의 시간이 있었다.
이 시는 고요하지만 약하지 않다.
짧지만 얕지 않다. 감정을 누르고 남긴 언어가 더 깊기 때문이다.
동시영 시인의 시가 독자를 쉽게 울리지 않는 이유는 그 울림이 표면이 아니라 심층으로 도착하기 때문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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