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국 시인의 시 '어머니의 등'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이희국 시인의 시 '어머니의 등'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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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등
시인 이희국
등 하나만 바라보며
그 뒤편에 숨어 자랐습니다
우리의 단칸방은 언제나 슬픈 긴장에 젖어있었습니다
방문을 열면 “수고했다, 씼고 쉬어라”
어머니는 늘 등으로 대답했습니다
등만 봐도 어머니의 웃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늦은 밤까지 바느질하던 어머니
아이들이 잠든 척하면 조심스레 따르륵 따르륵
돌아가던 편물기 소리
밤새 어머니의 잠으로 짠 털옷은 우리들의 밥이 되었습니다
머리맡에 차려놓은 새벽 밥상
절반쯤인 밥그릇을 투정하면 늘 자식에게 미안해하던 당신
쓸쓸히 나서던 당신의 새벽 출근길이 빈속이었다는 것도
철이 들어서야 알았습니다
문 앞에 햇살이 들면 자식을 앞세우고
비바람이 몰려오면 어느새 앞서 계시던 어머니
당신의 등은 우리들의 피난처였습니다
꺼질 듯 흔들리다 다시 사는 불꽃처럼
마지막 불씨를 지켜내시고
다자란 자식을 올려다보면서도
염려를 놓지 못하던 당신
가을바람이 낙엽을 쓸고 가듯
그 어둠도 멀리 스러지고
내 마음에 백합처럼 환하게 남은 어머니
그 사랑에 기대어 자란 나도
이제는 당신을 닮아 누군가의 등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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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처럼 살아낸 사람, 등불처럼 남는 시인
— 동경 이희국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사람의 삶이 곧 한 편의 시라면, 동경 이희국 시인은 이미 살아 있는 문학이었다. 그는 말보다 먼저 진심을 건네는 사람이었고, 겉보다 속이 더 따뜻한 사람이었다. 삶의 격랑을 정면으로 지나온 이력이지만, 그 얼굴에는 원망의 그늘이 아니라 묵묵히 길을 감당해온 사람에게서만 풍기는 침착한 선량함이 배어 있다. 그의 시도 그러하다. 과장된 수사 대신 담백한 문장으로, 절절한 고백 대신 조용한 응시로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려 한다. 그리고 거기서 이끈 것은 인간을 향한 믿음이었고, 그 믿음을 품은 문장 하나하나가 시가 되었다.
이희국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어머니의 등’은 그 삶의 철학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시는 단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읊은 회상의 시가 아니다. 그것은 가난과 고단함, 침묵과 눈물로 빚어진 한국 근현대 가족사의 압축이자, 그 모든 무게를 지고 살아낸 한 사람을 향한 깊은 절절함의 헌사다. 등 하나만 바라보며 자랐다는 첫 행은 시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한 줄 요약과도 같다. 무언으로 세상을 견뎌낸 어머니, 웃는 얼굴 대신 등을 내보이던 사랑, 그리고 말 없는 헌신이 자식의 밥이 되고 삶의 등불이 되었던 시절. 그 절제된 묘사 안에서 독자는 저마다의 어머니를 떠올리고, 저마다의 슬픈 성장기를 반추하게 된다.
그러나 시인은 단지 ‘그리운 어머니’를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마지막 연에서 그는 조용히 고백한다. “이제는 당신을 닮아 누군가의 등이 되었습니다.” 사랑을 받은 자가 사랑을 주는 자리로 나아가는 이 순환, 바로 그것이 동경 이희국 시인의 삶의 방향이자 시의 중심이다. 그의 시는 늘 ‘내가 받은 사랑을 어떻게 되돌려줄 것인가’를 묻는다. 시는 응시의 문학이기 이전에 감당의 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 그것이 그의 문장마다 고요하게 새겨져 있다.
시인이 아닌 자리에서도 그는 다르지 않다. 약사로서 그는 약봉지를 내밀기 전에 사람의 얼굴을 먼저 살핀다. 환자를 고객으로 대하기보다, 삶의 동행자로 바라보며, 기꺼이 귀를 열고 마음을 건넨다. 경제적 형편이 어렵거나, 사회적 제도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향해서도 그는 주저함 없이 먼저 발을 내딛는다. 고전에서나 등장하던 ‘인술(仁術)’이라는 단어가, 그의 일상 속에서는 현재형으로 살아 있다.
가정에서는 말보다 마음을 앞세우는 가장이다. 자녀들에게는 말없이 버팀목이 되어 주고, 아내에게는 동반자의 품격을 잃지 않는다.
그는 가장의 권위를 목소리 높임이 아니라, 먼저 귀 기울이는 낮은 자세에서 찾는다. 가족은 그를 두려워하기보다 신뢰하고 존경하며, 그가 지닌 부드러운 중심이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단단하게 지켜왔다.
문학단체에서도 그는 이끄는 자로서보다 함께하는 자로 남는다. 이어도문학회를 이끄는 회장으로서 그는 언제나 뒤에서 먼저 허리를 굽히고, 다른 이의 빛을 돋워주는 데 주저함이 없다. 자기 과시보다 공동체의 온기를 먼저 챙기고, 글을 통해 나보다 타인을, 나의 문학보다 우리의 자리를 생각해왔다. 문장 속에서도 그는 겸허하다. 과시보다 고요함을, 군더더기보다 여백을 택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덮은 후에도 오래 남는다. 읽을 때보다 다 읽은 다음에 더 깊은 울림이 가슴에 맴돈다.
이희국 시인의 문학에는 하나의 중심축이 있다.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시선.’ 그는 약자에게 연민을 베풀기보다, 그들이 일어설 가능성에 더 큰 믿음을 건넨다. 실수한 이들을 단정 짓기보다, 그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선의의 잔불을 본다. 그래서 그의 시는 가엾음이 아니라 존엄을 노래하고, 눈물이 아니라 견딤의 힘을 말한다. 이는 그가 시로만 사람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 사람을 겪어낸 이의 문장이라는 반증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약사, 가장, 문인, 회장이라는 여러 호칭이 붙는다.
그 모든 이름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따뜻한 사람’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 말 대신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 상처를 지혜로 바꾸는 사람. 이희국 시인은 자신이 걸어온 삶의 길이 곧 하나의 시가 되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다. 그가 있어 세상은 덜 차갑고, 그가 있어 문학은 더욱 믿을 만하다.
ㅡ 청람 김왕식
이희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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