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민 박철언 시인, 성주의 산골에서 빛으로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민 박철언 시인, 성주의 산골에서 빛으로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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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 박철언 시인, 성주의 산골에서 빛으로
청람 김왕식
경북 성주 깊은 산골,
달빛이 먼저 내려와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던 시절이 있었다.
흙과 바람과 들꽃이 스승이 되던 그 어린 날,
한 소년은 누구보다 또렷한 눈으로
세상의 결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가난도, 고독도, 그를 막지 못했다.
길은 스스로 내는 것임을
소년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서울로 올라와 서울법대에 몸을 담았다.
법은 명예가 아니라 책임이었고,
공부는 출세가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도구였다.
고시의 긴 터널을 지나 검사가 되었을 때,
그는 영광보다 두려움을 먼저 떠올렸다.
권력의 칼보다
양심의 무게가 더 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생은
조용한 관직에 머물지 않았다.
나라가 그를 불렀고
그는 국정의 중심에서
나라의 숨과 국민의 체온을
온몸으로 받았다.
장관의 자리에서도 그는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의 사람들을 먼저 바라보았다.
명예보다 실천,
말보다 묵묵함이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그리고,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길이 있다.
그는 공산권의 비밀특사로
수십 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출국,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노정,
그는 떠날 때마다
유서를 아내에게 맡겨두고
미지의 땅으로 향했다.
철조망의 냄새와
낯선 체제의 어둠 속에서도
그는 한 사람의 사명이
생보다 크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외교의 문이 열리고
단절이 풀리고
막힌 흐름이 이어진 자리마다
그의 이름 없는 발자국이 남아 있다.
국회의원으로서의 길도
그의 삶을 넓혔다.
정치는 바람 속의 숲 같아
박수와 돌멩이가 함께 날아들었지만
그는 흔들려도 꺾이지 않았다.
공적 책임 앞에서
자신의 안위를 앞세우지 않았고,
사람의 고단함을
정치의 중심에 놓으려 애썼다.
긴 세월의 격랑을 지나
그는 조용히 펜을 들었다.
권력의 언어가 아닌
영혼의 언어를 찾기 위해.
세상이 흔들던 이름을 내려놓고
그는 다시 ‘사람’을 바라보는
시인의 자리로 돌아왔다.
상처를 정직하게 견딘 사람만이
맑은 시를 쓸 수 있음을 그는 알았다.
성주의 산골에서 시작된 한 생은
검사로, 장관으로, 국회의원으로,
죽음을 건 외교 특사로 이어졌고
마침내 시인으로 완성된다.
자리가 그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가 지나온 ‘길’이
한 사람을 하나의 서사시로 세웠다.
이제 그는
처음의 소년처럼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많은 굽이와 험한 벼랑을 건너왔으되
마음은 외려 더 단단하고 투명하다.
우리는 말한다.
그의 생애는 한 사람의 기록을 넘어
한 시대를 관통한 깊은 울림이며,
넘어짐을 넘어선 자만이 남길 수 있는
인간적 품격의 서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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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 박철언 시인
약력
시인, 수필가, 변호사, 법학박사,
경북고, 서울대 법대 졸업,
검사장, 대통령 정책보좌관, 정무장관, 체육청소년부 장관,
제 13. 14. 15대 국회의원,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수상
《순수문학》 시 부문 등단(1955년) 서포문학상 대상, 순수문학 작가상, 순수문학 대상, 세계문학상 시 부문 대상, 시세계문학상 대상, 영랑문학상 대상, 문학세계문학상 대상 김소월문학상 본상, 한국문학사를 빛낸 문인 대상, 윤동주문학상, 윌리엄 예이츠 문학대상,
한반도복지 ㆍ 통일재단 이사장 (사)대구경북발전포럼 이사장
저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는 창조할 수 없다》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1, 2》
《74077 면회왔습니다》
시집
《작은 등불 하나》
《따뜻한 동행을 위한 기도》
《바람이 잠들면 말하리라》
《산다는 것은 한 줄기 바람이다》
《오늘이 좋아 그래도》
《바람을 않는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
Website: http://www. CU21.or.kr E-mail : cupark21@ daum.net
ㅡ청람

□청민 박철언 시인과 예술의 전당에서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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