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고요 속에서 빛을 이끌어 올리는 시학 — 주광일 시인의 겨울바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고요 속에서 빛을 이끌어 올리는 시학 — 주광일 시인의 겨울바다 2025.12.01
고요 속에서 빛을 이끌어 올리는 시학  — 주광일 시인의 겨울바다

겨울엽서 8

시인 주광일

겨울바다에 갔었지. 답답한 가슴, 탁 틔울 수 있길 바라며, 혼자서 갔었지.

고요한 호수처럼 점잖은 겨울바다가 찬 바람 한점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 나의 예감은 옳았지. 빗 나가지 않았지. 물씬한 바다 냄새에 정신이 번쩍 들고 바다에 스며든 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지. 그 순간, 어쩔 수 없는 반가움에 나는 그만 두 눈을 감아버렸지. 감겨진 두 눈에도 겨울바다가 생생하게 보였지.

고요 속에서 빛을 이끌어 올리는 시학

— 주광일 시인의 겨울바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의 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거창함의 부재’다. 그는 인위적 감정이나 중첩된 수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외려 한 사람의 고독, 호흡, 침묵 같은 소박한 순간을 그대로 이끌어 올려 언어의 본래 자리에 돌려놓는다. 그 담백함은 단순한 표현의 절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이자 내면의 윤리이다.

“과장하지 않고, 감추지 않고, 그대로 바라본다.”

시인 주광일의 시학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겨울엽서 8’에서 그는 ‘겨울바다’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 내면의 막힌 골을 조용히 틔워낸다. 바다는 격렬하지 않다. “고요한 호수처럼 점잖은 겨울바다”라는 표현은 겨울이라는 계절적 고요 속에 숨어 있는 존재의 깊이를 드러낸다. 흔히 바다는 폭풍과 파도의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주광일 시인에게 바다는 고통을 웅변하는 공간이 아니라 고통을 ‘잠시 놓아두는 자리’이다.

그의 바다는 조용하고, 점잖고, 묵언을 지키는 존재다. 그 앞에 선 화자는 억지로 위로를 구하지 않는다. 바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시인은 그 존재의 기품을 받아들인다. 이때 ‘치유’는 적극적 행위가 아니라, 고요와 정적 속에서 자연스레 스며드는 은은한 기도와 같다.

특히 “감겨진 두 눈에도 겨울바다가 생생하게 보였지”라는 마지막 구절은 그의 미학을 대표한다. 외부의 풍광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국 내면의 풍경으로 회귀한다. 시가 외부를 묘사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과정이며, 눈을 감는 행위는 더 선명한 본질을 보게 하는 문이 된다. 이는 주광일 시인 시가 가진 ‘내면의 투명성’을 잘 보여준다.

그의 작품 세계에는 ‘조용한 믿음’이 있다. 바다가 지닌 시간의 겹과 신의 숨결을 느끼는 감각은 단순 종교적 감흥이 아니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빛나는 질서를 포착하려는 태도이다. 삶의 무게를 피하지 않되, 그 무게에 정직하게 서 있으려는 마음의 자세이다.

주광일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은 결국 ‘고요 속에서 진실을 찾는 일’이며, 그의 시적 미의식은 ‘과장의 배제를 통해 외려 더 깊은 울림을 만들려는 태도’이다.

겨울바다의 침묵처럼, 주광일 시인의 시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한 번 읽고 지나가는 시가 아니라,

한 번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와

조용히 마음을 비추는 시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