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시인의 시 <초겨울, 걸으며 자연 속으로> 破邪顯正의 생을 넘어, 고요한 자연의 품으로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박철언 시인의 시 <초겨울, 걸으며 자연 속으로> 破邪顯正의 생을 넘어, 고요한 자연의 품으로 2025.12.10
□ 청민 박철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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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걸으며 자연 속으로
시인 青民 박철언
차갑게 날 세운 날씨에
홀로 들길을 걷는다
헐거워진 나무들
마지막을 뽐내는 남은 잎새들
발길에 스치는 낙엽의 신음소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분주한 봄보다
여름의 혼탁함보다
쓸쓸한 가을보다
텅 빈 초겨울이 좋구나
말도 묻고
생각도 묻은 채
무작정 걷는다
나른해지는 육신과 내 넋 속에
따스하게 피어오르는 사랑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바람처럼 집시처럼
여인과 함께한 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대자연 속으로
사라지리라
■
破邪顯正의 생을 넘어, 고요한 자연의 품으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민 박철언 시인의 ‘초겨울, 걸으며 자연 속으로’는 한평생 공직의 최전선에서 ‘破邪顯正’의 기개로 살아온 한 인간이, 노년의 문턱에서 비로소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기록이다.
이 시는 단순한 자연 예찬이 아니라, ‘투쟁의 생애를 견딘 사람만이 도달하는 침묵의 자리’ 를 그린다. 언어는 절제되어 있고, 감정은 번잡함 없이 응축되어 있으며, 초겨울이라는 계절의 비어 있음은 곧 시인이 선택한 삶의 결론과 닮아 있다.
시의 첫머리에서 “차갑게 날 세운 날씨에 / 홀로 들길을 걷는다”는 구절은 외부의 현실보다 외려 내부의 결을 더 뜨겁게 붙드는 고독의 체온을 말한다. 공직자로 살며 오랜 세월 권력의 소용돌이, 정의와 불의의 경계에서 치열한 결단을 내려야 했던 시인은, 이제 혼자 걷는 초겨울 들길에서 비로소 “홀로 있음”의 단단함을 배운다. 이 고독은 패배가 아니라 삶이 허락한 가장 큰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이어지는 “헐거워진 나무들 / 마지막을 뽐내는 남은 잎새들”은 노년의 신체적 느슨함을 비유하면서도, 그 헐거움이 자연의 리듬에 맞춰가는 순응의 미학임을 보여준다. 공직의 세계에서 흔히 허락되지 않았던 ‘느슨함’은 이제 시인에게 삶의 또 다른 완성으로 다가온다. 힘을 빼고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이는 ‘참됨’이 있다. 이 구절은 바로 그 깨달음의 문턱이다.
특히 “분주한 봄보다… 텅 빈 초겨울이 좋구나”라는 구절은 시 전체의 중심축이다. 봄이 열망의 계절이고, 여름이 번성의 계절이며, 가을이 회한의 계절이라면, 초겨울은 욕망의 빛깔이 모두 지워진 자리이다. 비어 있음 속에서 충만을 느끼는 역설은, 파사현정을 위해 살았던 시인의 정신과 깊게 맞물린다. 그는 생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깨닫는다. 진정한 완성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의 그릇’에 있다는 것을.
후반부의 “말도 묻고 / 생각도 묻은 채 / 무작정 걷는다”는 사유의 정점이다. 노년의 걸음은 더 이상 목적지를 향한 이동이 아니라 자기를 비워내기 위한 순례이다. 육신의 나른함 속에서 피어오르는 ‘사랑’은 욕망의 온도가 아니라, 생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존재적 온도에 더 가깝다. 시인은 이제 사랑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머물게 하는 기척’으로 이해한다.
마지막 연의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자연 속으로 / 대자연 속으로 / 사라지리라”는 순환의 미학이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 살 수 없고,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 귀환은 종말의 선언이 아니라 삶의 원형으로 돌아가 완성되는 길이다. 공직사회라는 인위적 구조 속에서 평생을 싸워온 시인에게, 자연은 더 이상 풍경이 아니라 구원에 가까운 귀향지이다.
요컨대, 이 시는 한 사람의 노년이 도달한 깨달음을 조용히 증언한다. “비움이 충만을 낳고, 고독이 자유를 낳으며, 초겨울이 생의 가장 따뜻한 온도가 된다.” 청민 시인은 초겨울의 들길에서 자기 생을 다시 쓴다. 싸움의 언어를 내려놓고, 자연의 숨결 속에 몸을 맡긴 채, 단단한 침묵 속에서 완성된 인간의 얼굴로 돌아간다.
이 시는 그러한 생의 결론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복원한 秀作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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