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그림 속에서, 바깥을 향해 열린 존재의 창 ― 동시영 시인 시 <그림 속 사람이 밖을 내다보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그림 속에서, 바깥을 향해 열린 존재의 창 ― 동시영 시인 시 <그림 속 사람이 밖을 내다보다> 2025.12.11
그림 속에서, 바깥을 향해 열린 존재의 창 ― 동시영 시인 시 <그림 속 사람이 밖을 내다보다>

□ 동시영 시인

그림 속 사람이 밖을 내다보다

시인 동시영

누구나 시냇가에 산다며,

시간 시내가 졸졸 흘러가.

모습은

‘본래 남의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뼈처럼 숨어 살다 나와 웃는 수선화 노랑또랑한다

예쁘게 웃음 참는 꽃봉오리들이

꽃들은 언제부터 웃기 시작했나?

생각할 뻔한다

언제 왔냐 물어도 된다

나 몰래 삼월이 ,내 곁에 앉아 있을 땐

바람의 혈관인가

햇살에 몸살났던 여름인가

무의식이 의식 위로 스멀스멀 긴다

꿈을 다시 꿈꿀 수 없듯

어제는 다시 살 수 없어도 된다

그림 속 사람들이

그림 밖을 내다본다

그림 속 사람도

밖을 그리워한다

그림 밖 사람들이 그림 속 사람들을 본다

‘시선이 마주치면 서로 감상해도 된다’

아니, 서로 사랑해도 아무 일 없다

지금,

누구에게나,

뭉개구름처럼

시간을 뭉갰냐고

물어도 된다

순간이 시간을 맛보고 있다

동시영 시인

시인은 2003년 계간 『다층』을 통해 문단에 등단한 한국의 대표적 서정 시인이다. 그녀는 충청북도 괴산 출신으로,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에서 인문학을 수학했다. 그 후 한국관광대학교와 중국 길림재경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했다.

그의 시 세계는 삶과 자연, 시간의 흐름을 감각적이고 철학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섬세한 정서와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아내며 독자들에게 내면의 울림을 전해 준다.

그리고 기법과 구조에 대해 끊임없는 천착을 해 오고 있다. 이러한 문학적 성취로 박화목 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 한국불교문학상 대상, 제32회 동국 문학상, 영랑문학상 평론 대상, 한국문인협회 제7회 월탄 박종화 문학상, 문학청춘작품상, 제10회 KAOWL & CNPN Golden Pen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주요 시집으로는 『미래 사냥』, 『낯선 신을 찾아서』, 『신이 걸어 주는 전화』, 『십일월의 눈동자』, 『너였는가 나였는가 그리움인가』, 『비밀의 향기』, 『일상의 아리아』, 『펜 아래 흐르는 강물』, 『마법의 문자』, 『수평선은 물에 젖지 않는다』 , 『와인을 따르듯 말하다』등이 있다. 문학연구서 및 기행 산문서도 활발히 출간하였으며 연구서로는 『노천명 시와 기호학』, 『한국 문학과 기호학』, 『현대 시의 기호학』 등이 있고, 산문집 『여행에서 문화를 만나다』, 『문학에서 여행을 만나다』 등을 출간했다.

한국세계문학협회 전임회장으로 한국 문학과 세계문학 간의 교류 협력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그림 속에서, 바깥을 향해 열린 존재의 창

― 동시영 시인 시 <그림 속 사람이 밖을 내다보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동시영 시인의

이 작품은 존재와 존재의 경계가 해체되는 순간을 포착한 시이다.

그녀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시간의 흐름, 의식의 구조, 존재의 투명성이 가장 맑은 형태로 드러난다.

시의 표면은 부드럽지만, 그 바닥에는 오래된 철학적 질문이 잔잔한 물결처럼 깔려 있다. 그 질문은 “내가 바라보는 것은 누구이며, 나를 바라보는 것은 누구인가”라는 존재적 회귀이다.

첫머리의 “누구나 시냇가에 산다며 / 시간 시내가 졸졸 흘러가”라는 구절은

그녀가 평생 견지해 온 시간의 감각을 명확히 드러낸다. 시간은 배경이 아니라, 존재를 씻고 깎고 새롭게 빚어내는 흐름이다.

오지 괴산의 자연에서 자라며 익힌 감각, 동국대학교에서 다져진 언어의 질서, 독일 인문학에서 체득한 사유의 골격이 모두 이 첫 행에서 잔잔한 결을 남긴다.

이어지는 수선화와 꽃봉오리의 이미지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다.

동시영의 시에서 꽃은 늘 제2의 자아처럼 등장한다.

숨은 자아가 시선 위로 떠오르는 장면, 본래의 모습이 자신도 모르게 피어오르는 순간, 그 섬세한 결을 그녀는 “노랑또랑한다”는 독창적 어휘로 감각화한다. 이 단어에는 언어학적 훈련과 시적 직관이 동시에 깃들어 있다.

눈으로 보는 노란빛이 아니라, 존재의 깊은 자리에서 우러나는 자의식의 발광이다.

“삼월이 내 곁에 앉아 있을 땐”이라는 문장은 계절을 하나의 구체적 주체로 불러들이는 시인의 특유한 기법이 다시 한번 빛난다. 계절은 자연이 아니라 감정의 위치이며,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잠시 앉아 쉬어가는 자리가 된다.

바람과 햇살, 무의식의 이동은 시인의 깊은 사유가 향하는 곳을 보여준다.

특히 “무의식이 의식 위로 스멀스멀 긴다”는 대목은 그녀의 연구서인 《현대 시의 기호학》에서 다루었던 의식 구조에 대한 기호학적 관심을 시적 언어로 옮긴 구절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 시인은 단순한 감정 묘사가 아니라, 존재의 움직임이 어떻게 기호로 떠오르는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 작품의 중심은 마지막 연에서 터지듯 드러난다.

“그림 속 사람들이 / 그림 밖을 내다본다

그림 속 사람도 / 밖을 그리워한다”

이 대목은 시인이 오랫동안 다뤄 온 경계의 문제, 안과 밖의 문제, 존재와 관찰자의 문제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림 속, 그림 밖이라는 이분법을 시인은 거부한다.

외려 양쪽은 서로를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존재한다. 관찰자는 대상이 되고, 대상은 관찰자가 된다. 바라봄과 그리움은 교차한다. 이 교차가 바로 시인 동시영 시학의 핵심인 쌍방향의 존재성이다.

“서로 사랑해도 아무 일 없다”라는 마지막의 평온한 선언은 그녀의 시 세계가 언제나 관용, 개방, 투명한 관계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문학적 장식은 최소화되고, 사유는 끝까지 절제되어 있다.

허나

이 절제는 빈틈을 남기지 않는다.

그 대신 독자의 시선으로

그림 속과 그림 밖을 넘나드는 지각의 통로를 열어둔다.

마지막 행 “순간이 시간을 맛보고 있다”는 동시영 시인이 평생 탐구해 온 시간의 본질을 가장 맑은 언어로 응축해 둔 진술이다.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순간이 시간을 삼키고 씹어내며 새 의미를 만들어 내는 시간의 주체화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시인이 그동안 쌓아온 미학적 성취가 하나로 집약된 결정체이다. 자연의 감각, 존재의 사유, 시간에 대한 투명한 인식, 그리고 독창적 언어 실험이 조화롭게 맞물린다.

그림 속과 그림 밖이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독자는 자신 역시 하나의 프레임 속에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으며,

또한 누군가에게 바라보이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이 이 시의 진정한 깊이다.

ㅡ청람 김왕식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