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시인의 〈바람의 북>을 문학평론가 김기량 평하다
김왕식 시인의 〈바람의 북>을 문학평론가 김기량 평하다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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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북
김왕식
골목 어귀, 낡은 신발가게 앞
어둠을 꿰매던 풍장꾼
낮이면 못 하나 박을 힘도 없던 손이
밤이면 북을 두드리며
삶의 골을 두드린다
빚 독촉장처럼 빨래줄에 걸리던 그림자
전기세 밀린 종이가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날
막걸리 한 그릇에 숨을 기대고
가슴 밑바닥 긁어낸 장단이
허공 깊숙이 번져간다
시장에서 생선 비린내 퍼지는 새벽
잦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상인들의 한숨 속에
풍장꾼의 북소리는
어깨를 다독이며
작은 온기를 길어 올린다
그때 누군가 골목 모퉁이에서 중얼거린다
“아따, 오늘은 좀 숨이 덜 막히네잉…”
그 말 한마디가
불씨처럼 골목을 덥힌다
북소리는 마치
그늘진 심장을 데우는 화롯불 같다
어느 겨울밤
풍장꾼은 아무 말 없이 사라진다
낡은 북가죽 위에
먼지 한 줌과
다 감지 못한 울림만 남긴다
그 후로 골목은
발걸음이 반 박자 느려지고
퇴근 버스의 엔진 소리도
낮은 숨결로 떨린다
비 내리던 저녁
집세 봉투를 움켜쥐고 주저앉은 사내는
바람 속에서 들린다
잊힌 풍장꾼의 북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흐르는 목소리
“그라지 말고, 한 번만 더 살아보랑께
사람 사는 거, 거기서 딱 한 걸음이여”
그 울림 덕분에
밤마다 골목은
패배가 아닌 생존의 기척으로 불빛이 켜지고
흐리지만 단단한 박동이
사람들 가슴에서 계속 뛴다
삶이 흔들리는 날이면
사람들은 여전히 그 길을 지난다
바람 사이로 되살아나는 북소리를 믿으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내일의 심장을
가만히 안아 올리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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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식 시인의 〈바람의 북〉
문학평론가 김기량
김왕식 시인의 〈바람의 북〉은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피어난 빛을 노래하는 시이며, 서민의 심장을 두드리는 북소리를 통해 인간 존재의 존엄과 생존의 의미를 다시 새기는 작품이다.
이 시에는 화려한 수사가 없다. 삶의 비루한 흔적들이 가감 없이 배치되어 있고, 그 위를 흐르는 언어는 담백하면서도 따뜻하다. 시가 무엇을 향해 있어야 하는지, 예술이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하는지, 시인은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존재를 미화하지 않으며, 현실을 불평하거나 저주하지도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견뎌온 어둠 속에서 작게나마 불꽃처럼 일어나는 희망의 결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그 점에서 이 시는, 무너진 세계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다시 선다는가에 관한 가장 조용한 기록이다.
시가 시작되는 장면은 골목 어귀의 낡은 신발가게다. 그 공간 하나만으로 독자는 서민의 삶의 좌표를 직감한다. 장대한 역사도 거대한 도시도 아닌, 소외된 주변부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풍장꾼이다. 낮에는 쇠약하지만 밤이면 북을 두드리며 삶의 골을 두드리는 그는, 예술가이면서 노동자이며, 동시에 우주적 존재이다. 그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건드리는 북소리가 그의 손끝에서 퍼져 나간다.
이 북소리는 현장에서 태어나 현장 속으로 흘러 들어가며,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는 상태로 작품 속을 채운다.
풍장꾼이 살아내는 하루는 가혹하다. 빚 독촉장, 전기세 고지서, 빨래줄에 걸린 그림자,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종이들—이 모든 요소는 서민의 실제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구체적 사실이며, 김왕식 시인의 시적 미의식은 바로 여기에 있다. 추상적 빈곤이 아니라 생활의 촘촘한 결을 보여주고, 생존의 냄새가 그대로 묻어나는 장면을 통해 서민의 존엄을 드러낸다.
시인은 삶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삶 속에 서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겪는 고단함을 외면하지 않는다.
풍장꾼의 북소리는 시장의 새벽에 번지고, 상인들의 한숨을 어루만진다. 생선 비린내, 파도처럼 밀려오는 숨소리 속에서 북소리는 어깨를 다독이며 작은 온기를 길어 올린다. 이 북소리는 음악이라기보다 위로의 손길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가볍게라도 덥혀 주는 응급 난로 같은 존재이다.
이 시의 미학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이 삶을 구경거리가 아니라 숨통으로 만든다는 점. 북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지는 음이 아니라 마음의 화롯불이며, 생존의 박동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풍장꾼이 사라지는 대목이다. 어느 겨울밤, 그는 아무 말 없이 자취를 감춘다. 시인은 죽음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설명하거나 과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남은 것은 먼지 한 줌과 다 감지 못한 울림뿐이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생의 결론을 치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은 완결되지 않은 울림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풍장꾼이 사라진 뒤 골목의 변화는 비통하거나 절망적이지 않다. 그러나 분명 슬프다. 발걸음이 반 박자 느려지고, 버스 엔진 소리마저 낮은 숨결처럼 떨린다. 북소리가 부재한 자리는 상실의 공기를 남기며, 공동체 전체의 리듬이 변화한다.
이 장면은 김왕식 시인의 깊은 휴머니즘을 보여준다. 한 개인의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가 공동체 전체에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 말이다.
이 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느 비 내리던 저녁, 집세 봉투를 움켜쥐고 주저앉은 사내는 바람 속에서 북소리를 듣는다. 바람은 과거를 실어 나르고, 기억은 생존을 되살린다. 이때 들리는 목소리는 전라도 사투리로 말한다.
“그라지 말고, 한 번만 더 살아보랑께
사람 사는 거, 거기서 딱 한 걸음이여”
이 사투리는 단순한 지역적 장식이 아니다. 현실의 체온과 직결되는 언어이며, 위로의 생생한 현장음이다. 시는 이 대목에서 한 개인의 삶을 넘어 수많은 서민의 공통 감정으로 확장된다. 풍장꾼의 북소리는 존재 자체로 남아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린다.
하여
골목은 패배의 공간이 아니라 생존의 공간으로 변한다. 불빛은 절망을 비추는 등이 아니라, 내일을 비추는 불씨가 된다. 사람들은 여전히 흔들리며 살아가지만, 그 흔들림은 이제 붕괴가 아니라 박동이다. 삶이 무너질 듯 흔들리는 날에도 사람들은 그 길을 걷는다. 북소리는 바람 속에서 되살아나고, 내일의 심장은 조용히 안아 올려진다. 이 정서가 이 작품을 지탱하는 뼈대이다.
김왕식 시인의 시세계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견고하고 깊다. 그는 삶을 꾸미지 않는다. 대신, 삶이 인간을 어떻게 버티게 하는가를 본다. 그의 미의식은 현실을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빛을 채집하는 방식이다. 시는 슬픔만 노래하지 않는다. 무너지지 않으려는 의지를 노래한다. 울음이 아니라 박동을 기록한다.
〈바람의 북〉은 한 골목의 이야기이지만, 그 울림은 도시 전체를 지나, 인류 보편의 마음에 닿는다. 북소리는 죽은 울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맥박이다. 주인공은 사라졌지만, 북소리는 남았다. 사람들은 그 북소리를 믿으며 다시 걷는다.
이 작품은 예술이 어떻게 삶을 붙잡아주는지, 시가 어떻게 사람을 위로하는지, 그리고 한 존재가 어떻게 공동체 안에서 기억되는지에 관한 가장 빛나는 해답 중 하나다. 김왕식 시인은 고통을 노래하지 않는다. 고통을 견딘 사람의 뒷모습을 노래한다. 그 뒷모습 속에서 인간의 품위를 발견하고, 그 품위를 사랑한다.
하여
이 시는 오래 남는다.
그리고
오래 울린다.
독자는 이 시를 읽고 나면, 마음속에서 북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 북소리는 말할 것이다.
“한 번 더 살아보자.”
ㅡ 문학평론가 김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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