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을 열고 만난 한 사람 ― 허형만 시인을 향한 사적인 기록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간의 문을 열고 만난 한 사람 ― 허형만 시인을 향한 사적인 기록 2025.12.21
□ 허형만 시인과 이어도 문학 심사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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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을 열고 만난 한 사람
― 허형만 시인을 향한 사적인 기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서울오산고등학교 문예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나는 처음으로 허형만이라는 이름을 교과서의 활자 속에서 만났다.
그의 시 <녹을 닦으며>는 단순한 작품이 아니었다. 한 줄 한 줄이 학생들의 가슴에 스며들었고, 그 스며듦은 교단에 선 나에게도 잔잔한 파문을 남겼다.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과 심도 있게 분석하고 토론하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우리는 그 시를 공부한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냈다. 나는 그때 이미 느끼고 있었다. 언젠가 이 한 편의 시가 내 삶의 결을 바꾸어 놓을 것임을. 그래서 시인을 동경했는지도 모른다. 동경이란 이유 없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작품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영혼의 무늬를 알아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다. 교실은 사라졌고, 교단은 지나갔고, 학생들은 세월을 건너 각자의 삶으로 퍼져나갔다. 기억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운명은 기묘한 방식으로, 그리고 정확한 순간에 문을 열었다. 이어도 문학(회장 이희국 시인) 본심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심사 테이블에 앉았을 때, 그 자리의 위원장으로 마주 앉아 있던 이는 바로 허형만 시인이었다.
눈앞에 존재하는 그는 교과서의 이름이 아니라 숨결을 가진 사람, 문장을 넘어선 인격, 시의 외피를 넘어선 고요한 중심이었다. 그 순간의 감격은 말로 환원될 수 없다. 오래 전 교실에서 시를 낭독하던 목소리가, 그 자리에서 조용히 되살아났다. 바람을 가르는 새의 날갯짓처럼 겹겹이 쌓인 시간이 한 순간에 접혀버렸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시가 만든 인연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허형만 시인은 시만큼이나 사람으로서 깊고 겸손했다. 그 깊이는 소리 없이 흘렀고, 그 겸손은 고요히 빛났다. 말의 양보다 눈빛이 더 많은 이야기를 전했고, 침묵 속에도 온기가 있었다. 인간적 품위란 이런 것일까. 오래 인생을 걸어온 이의 어깨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대신 체온이 난다. 나는 그의 말보다 그의 숨결을 기억한다. 시보다 그의 눈동자를 기억한다. 존재의 중심에서 흘러나온 곡진한 온기가 오래 남아 있다. 나는 그를 문학의 스승을 넘어 인생의 스승으로 섬기며 살아가고 있다.
요즘 어느 문학지의 의뢰로 그의 시 다섯 편을 평석하고 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단순히 작품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끌어안으며 하나의 생애를 듣고 있다. 말이 아니라 숨으로 읽는 과정이다. 시 한 편 한 편을 통과할 때마다 그의 정신이, 그의 체온이, 그의 기도가 작품을 통해 흘러나온다. 그 세계를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저미고 먹먹해진다. 이는 지적 감상이 아니라 감정의 깊이에서 올라오는 진동이다. 오래된 창을 닦아 빛을 통과시키 듯, 그의 시를 들여다볼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다시 선명해진다.
문득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큰 기적이 있을까. 교단에 서 있던 젊은 교사는 교과서의 이름을 따라 한 사람을 마음에 품었고, 수십 년 뒤 그 이름과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 만남을 열어준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인연의 질감이다. 인연은 반드시 때를 가진다.
그리고 그 때가 오면 문이 열린다. 자동문처럼 혼자 열리는 문이 아니라, 손잡이를 돌려 열어야 하는 문처럼,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열리는 문.
나는 허형만 시인을 만난 인연을 귀하게 여긴다. 이 귀함은 단순한 감사의 감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나의 문학을 환하게 밝혀주었고, 삶의 방향을 고요히 이끌어 주었다. 시를 통해 누군가의 삶이 바뀌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문학의 증거다.
지금 나는 그의 시 세계를 다시 쓰고 있다. 그 세계는 화려하지 않지만 깊다. 높지 않지만 단단하다. 시의 숨결은 미세하지만 오래 간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되찾는다. 문학은 감상하는 순간이 아니라, 살아내는 순간에 완성된다는 진실을.
오늘도 나는 이 인연을 생각한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감사한다.
시가 열어준 문에 대하여,
사람이 이어준 길에 대하여,
그리고 신께서 허락하신 깊은 만남에 대하여.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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