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시인 시 <山빛> — 산빛에 깃든 회귀의 미학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김선영 시인 시 <山빛> — 산빛에 깃든 회귀의 미학 2025.12.21
□ 김선영 시인 시집 《풀꽃 왕관》
□ 김선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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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빛
시인 김 선영
산빛 사랑하다 떠난 그사람
산빛 한자락 떠서
잔등에 덮어주고
보낸 그사람
산은 자꾸 야위어 가고
세월도 야위어 앓을 때
어느날 문득
그 사람
산빛
돌려주러 오거든
산빛은 산에 입히고
나란히 둘이서 산을 보리라
나란히 둘이서 또
산을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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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시인 시 <山빛>
— 산빛에 깃든 회귀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선영의 <山빛>은 이별을 소재로 삼고 있으나, 정작 이 시가 도달한 지점은 상실이 아니라 순환이며, 비움이 아니라 생성이다.
시인은 자연을 감정의 배경으로 사용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내면과 자연의 시간을 하나의 숨결로 엮어낸다.
특히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는 장면을 자연의 빛으로 형상화하고, 그 빛이 다시 산으로 돌아오는 순간을 미래형으로 남겨 두었다는 점에서 이 시는 단순한 회상의 정서를 뛰어넘어 존재론적 회귀의 미학을 품는다.
시인 김선영 시의 시작은 조용하면서도 선명하다. “산빛 사랑하다 떠난 그 사람”이라는 문장은 이별의 슬픔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그 미세한 떨림이 행간에서 또렷하게 감지된다. ‘산빛을 사랑했다’는 표현은 본질적으로 자연을 사랑한 마음이며, 자연 속에서 사랑을 발견했던 경험이다.
시에서 산빛은 대상이 아니라 관계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떠나는 이를 향해 “산빛 한자락 떠서 / 잔등에 덮어주고” 보냈다는 표현은 사랑의 잔여가 아닌 사랑의 완성을 보여 준다. 작별의 순간에조차 시인은 사랑을 온기처럼 덮어주며 보내고 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시인은 시간의 무게를 자연과 자신의 삶에 함께 투사한다. “산은 자꾸 야위어 가고 / 세월도 야위어 앓을 때”에서 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존재의 거울이 된다. 산이 야위어 간다는 표현은 자연의 쇠퇴가 아니라 성숙과 소멸의 과정을 품고 있으며, 동시에 시인의 내면 역시 쇠약해지는 시간을 겹쳐 읽게 한다. 산과 세월이 동시에 ‘야윈다’는 구절은 자연과 인간이 결국 같은 호흡으로 삶을 겪어 간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시인 김선영의 시는 자연을 압도적으로 경외하거나 숭배하지 않는다. 자연과 자신의 존재를 결코 분리하지 않는, 담백한 생명의 의식을 품는다.
시가 전환되는 지점은 “어느날 문득 / 그 사람 / 산빛 돌려주러 오거든”이라는 구간이다. 떠난 이가 돌아오는 상상은 단순한 회상도, 바람도 아니다. 산빛을 돌려준다는 행위는 빛을 잠시 맡겨두었다는 의미이며, 이는 사랑이 단절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자연과 인간의 정서는 선형적 흐름을 갖지 않는다. 떠난 이는 사라진 존재가 아니라, 자연 속에 잠시 보관된 빛의 일부가 되어 다시 다가오는 존재로 재해석된다.
김선영 시인은 사랑을 소유의 결과가 아니라 관계의 순환으로 이해한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돌아옴의 일정한 단계일 뿐이다.
“산빛은 산에 입히고 / 나란히 둘이서 산을 보리라”는 구절은 시의 조용한 절정이다. 떠난 이가 산빛을 돌려주러 왔을 때, 시인은 그 빛을 다시 산에 입히겠다고 말한다. 이는 자연을 사랑의 출발점이자 귀환점으로 삼겠다는 선언이며, 서로가 서로만을 바라보는 관계보다 더 큰 차원의 사랑을 말한다. 사랑의 도착점은 서로의 얼굴이 아니라, 함께 바라보는 세계이다. 둘이 나란히 앉아 산을 본다는 상상은 단순한 정경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을 공유하는 관계, 존재를 함께 유지해 나가는 관계를 의미한다.
마지막 행 “나란히 둘이서 또 / 산을 살리라”는 시인 김선영 시의 미감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이별과 회귀의 과정은 결국 생명을 살리는 순환으로 이어진다. 산을 살린다는 말에는 자연을 회복시키겠다는 선언뿐 아니라, 사랑과 존재를 다시 살리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생성이며, 감정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철학이 이 한 행에 응축되어 있다.
이 시가 지닌 아름다움은 과장되지 않은 언어, 절제된 표현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확장한다는 데 있다. 화려한 장식 대신 투명한 호흡을 선택했고, 감정의 고조 대신 생명의 흐름을 들려준다.
김선영 시인의 마음은 늘 자연 가까이 놓여 있다. 평생 대학 강단에서 국문학을 강의하며 많은 후학을 길러낸 시인의 정신은 자연을 ‘생명의 교사’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연구자가 아닌 배우는 사람으로, 스승이지만 여전히 자연 앞에선 제자처럼 서 있는 마음이 그의 시 속에 투영되어 있다.
김선영 시인의 시는 자연을 바라보는 단순한 시선이 아니다. 자연에 자신의 영혼을 비추고, 자연의 빛으로 자신을 돌려세우며, 이별과 시간마저 자연 속에서 순환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넓은 세계관이 자리한다.
이 시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바로 그 담백한 깊이다. 시인은 자연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자연의 언어로 사랑과 생명을 말한다.
<山빛>은 사랑의 서정이면서 동시에 존재의 철학이다. 떠난 사람은 사라진 흔적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가능성이고, 산빛은 사랑의 온기이자 생명의 숨결이며, 야위어 가는 산은 상실이 아니라 회귀를 준비하는 몸짓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껴안는 시인의 마음은 자연처럼 넓고, 언어처럼 투명하며, 산빛처럼 오래 남는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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