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국 시인의 <다리> ㅡ사랑이 길이 되어 건너가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희국 시인의 <다리> ㅡ사랑이 길이 되어 건너가다 2025.12.21
□ 이희국 시인의 시집 ‘다리’

■
다리
시인 이희국
섬으로 가는 다리가 놓이고
사람들은 걸어서 바다를 건넜다
어린시절 그런 대교 같은 선생님은
나의 다리였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시던 부모님
나는 어둑할 때까지 교실에 남아 책을 읽었다
창 밖에 눈이 내리던 날
어깨를 감싸는 따뜻한 손,
국어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교무실로, 집으로 데려가 주셨다
외진 구석에 피어 있던 꽃, 어루만지며
목말까지 태워주신 사랑은
겨울에서 봄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창 밖에는 그날처럼 눈이 내리고
꼬리를 문 차들이 어둠을 밝히며 영종대교를 지나고 있다.
바닷물 위에 길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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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국 시인의 <다리>
ㅡ사랑이 길이 되어 건너가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희국 시인의 대표시 <다리>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갈망—‘건너가고자 하는 마음’을 따뜻한 서정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에서 시작하여, 스승과 제자의 시간을 건너는 다리로 확장되고, 나아가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다리, 어린 마음에서 성숙한 기억의 다리, 고독에서 사랑으로 건너가는 마음의 다리로 끝내 확장된다.
이 시는 단지 추억을 정리한 작품이 아니라, 삶과 사랑의 본질을 담아낸 정신의 풍경이다.
섬으로 가는 다리가 놓이고, 사람들이 바다를 걸어 건너는 장면은 물리적 이동을 넘어 관계의 본질을 말한다. 인간에게 ‘다리’란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세계를 향한 통로이며, 존재와 존재 사이를 연결하는 사랑의 구조다. 시인은 어린시절 ‘선생님’을 다리라고 부른다.
이 비유는 단순한 애정의 고백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부여한 스승의 역할을 인간적 구원으로 읽어내는 시적 깨달음이다.
밤늦게 귀가하던 부모님, 어스름한 교실에서 혼자 책을 읽던 어린 화자의 모습은 고독을 전면에 둔다. 그러나 그 고독은 버려진 감정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건너갈 수 있는 가능성의 여백이었다. 눈 내리던 날, 어깨를 감싸는 손, 교무실로 이끄는 손길, 집까지 데려다준 걸음—이 모두는 다리의 구조가 감각으로 구현된 장면이다.
스승의 손길은 언어보다 선명하고, 훈육보다 따뜻하며, 지식보다 오래 남는 사랑의 증언이다.
“외진 구석에 피어 있던 꽃”이라는 표현은 시 전체를 지탱하는 핵심적 메타포다. 작은 존재, 보이지 않던 자리에 피어난 미약한 생명,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던 마음—그러나 그 꽃이 스승의 손길을 통해 드러난다. 사랑은 존재를 변화시키는 힘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시키는 힘이다. 목마를 태워준 기억은 단순한 유년의 사건이 아니라, 존재의 가치를 확인시킨 순간이다.
그 사랑은 “겨울에서 봄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계절의 이행은 곧 성숙의 증거이며, 시간의 다리는 마음에 길을 놓는다.
마지막 연에서 현재의 풍경이 다시 열린다. 창 밖의 눈, 어둠을 밝히는 차들의 행렬, 영종대교를 건너는 불빛의 흐름, 바닷물 위에 환하게 펼쳐진 길. 과거의 스승이 놓아준 다리가 이제 현실의 대교로 되돌아온다. 제자의 기억 속 다리가 시간의 변주를 거쳐 시대의 풍경으로 확장된다.
이 결말은 과거를 깊이 사랑한 자에게만 허락되는 내적 귀환이다. 시인은 어린시절 건너던 마음의 다리를 오늘 다시 건너며, 그 길을 타고 삶의 본질을 바라본다.
이 작품에 담긴 이희국 시인의 미적 정신은 분명하다. 삶의 핵심은 거대한 순간에 있지 않고, 누군가가 건네준 작은 손길, 외진 구석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 목말 위의 체온 같은 사소한 사랑에 있다. 다리는 구조물이 아니라 관계의 은유이며, 사랑의 본질이자 기억의 지지대다.
요컨대, 이 시는 스승에 대한 헌사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의 선언이다. 존재는 혼자 서는 방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만의 다리를 건너왔고, 또 누군가에게 다리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다리>는 기억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말하는 시이다.
스승을 통해 건넌 길은 곧 인간이 인간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유산임을, 이희국 시인은 조용한 언어로 증명하고 있다.
□
이희국 시인께
청람 김왕식
당신이 놓아주신 다리 위에서
처음 세상을 건넜습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아도
그 길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작은 섬 같았던 마음과 마음이
당신의 시 앞에서 이어졌습니다
어린 날의 어둠을 몰랐던 눈망울에
이제 노을빛이 번지고
삶의 저편을 건너가는 날에도
당신의 언어는
발 아래 단단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건너지 못할 것 같던 시간들
시 한 줄이 저를 보내주었습니다
이제 제가
누군가에게 작은 다리가 된다면
그 시작은 당신의 시였습니다
밤길 위 불빛들이
바다를 건너 흐르듯
당신의 시가 남긴 길 위에
제가 서 있습니다
바람이 스쳐가고
파도가 기억을 적셔 와도
당신의 시는
여전히 고요한 다리로
저의 삶 위에 서 있습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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