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선영 시 <햇빛의 비단으로> 를 읽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인 김선영 시 <햇빛의 비단으로> 를 읽고 2025.12.29
□ 김선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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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의 비단으로
시인 김선영
늘 금으로 닦여 있는 햇빛
어디서든지 외로운 이웃들이
베틀에 앉아
태양에서 뽑은 맑은 비단실을
꾸러미로 짜고
몇 필이 되면
가슴 속 깊이 개어 넣었다가
사람들 괴로운 밤
타오르는 등불
어둔 밤을 밝힐
그런 제물로 삼을 것이다
그리하여
빛나는 광채로 어둠을 깨고
마음으로 추운 사람들을 찾아서
짜 두었던 빛의 천을
한 자락씩 잘라 나눠주면
외로운 이웃들은
빛으로 마주 보며
드문드문 빛나는
별이 되리라

□
시인 김선영(金善英) 문학박사
시인은 1938년 개성에서 태어나, 1962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하고, 세종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또한, 한국시인협회와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청미 동인으로 문학운동에 참여하고,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으로 국제 문학 교류에도 이바지했다.
김선영 시인은 섬세하고 철학적인 언어로 인간 존재와 자연, 삶의 허무와 성찰을 노래해 왔다.
주요 시집으로는 『풀꽃왕관』, 『달을 배웅하며』, 『작파하다』, 『쓸쓸한 것들을 향하여』, 『사모곡』, 『라일락나무에 사시는 하느님』, 『밤에 쓴 말』, 『환상의 문지기』, 『풀꽃제사』, 『허무의 신발가게』, 『사가』 등이 있으며,
시선집으로는 『그리움의 식물성』, 『누구네 이중섭 그림』, 『달빛해일』, 『달을 빚는 남자』가 있다.
또한, 수필집 『순결한 예술가의 초상』, 『사랑은 마주 울리는 메아리입니다』를 통해 그녀의 미학적 사유와 감성을 산문으로도 펼쳤다. 그녀는 현대시학 작품상, 한국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으며, 한국 현대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대표적 여성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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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선영 시 <햇빛의 비단으로> 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선영 시인의 시 세계는 언제나 빛과 허무, 연민과 구원의 어름에 서 있다.
그의 시 <햇빛의 비단으로>는 그 경계 위에서 시인이 평생 붙들어 온 삶의 가치철학과 미의식이 가장 맑은 상징으로 직조된 작품이다.
이 시에서 ‘햇빛’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에게 건네야 할 윤리이자 존재의 책임으로 확장된다.
시의 첫 연에서 “늘 금으로 닦여 있는 햇빛”은 세계가 본래 지니고 있는 존엄의 상태를 가리킨다. 햇빛은 이미 완성된 빛이며, 인간은 그것을 새로 만들지 않는다.
다만 “외로운 이웃들”이 베틀에 앉아 태양에서 뽑아낸 비단실을 짜듯, 시인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창조가 아니라 ‘가공’과 ‘보존’임을 말한다.
이는 김선영 시인이 일관되게 보여 온 존재론적 태도, 즉 인간은 의미의 생산자가 아니라 의미의 전달자라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특히 이 시에서 주목할 것은 빛을 즉각 사용하지 않고 “가슴 속 깊이 개어 넣었다가”라는 구절로 유예하는 태도다. 빛은 소유가 아니라 준비의 대상이며, 쓰임을 기다리는 윤리적 자산이다. “사람들 괴로운 밤”을 위해 미리 짜 두는 빛의 천은, 시인 김선영 시가 오랫동안 품어 온 연민의 미학을 상징한다.
이는 고통 앞에서 즉각적 위로보다 더 오래 견디는 침묵과 축적의 시간을 신뢰하는 시인의 태도다.
시의 중반부에서 빛은 제물이 된다. “타오르는 등불 / 어둔 밤을 밝힐 / 그런 제물”이라는 표현은 시인 김선영 시의 종교적 · 철학적 깊이를 잘 보여 준다.
이 제물은 자기 희생의 과시가 아니라, 조용한 소모를 통해 타인을 살리는 존재 방식이다.
이는 <라일락나무에 사시는 하느님>이나 <허무의 신발가게>에서 반복되어 온 김선영 시의 핵심 미의식, 즉 초월은 거창한 외침이 아니라 일상의 낮은 자리에서 완성된다는 믿음과 일치한다.
마지막 연에서 “외로운 이웃들”이 “드문드문 빛나는 / 별이 되리라”는 전망은 구원의 방식이 집단적 구호가 아니라 개별적 각성임을 보여 준다. 빛은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고, “한 자락씩 잘라 나눠”질 때 비로소 별이 된다.
시인 김선영 시의 윤리는 여기서 완성된다. 세계를 밝히는 것은 거대한 태양이 아니라, 서로를 마주 보는 작은 별들의 연대라는 인식이다.
김선영 시인의 시는 언제나 섬세하지만 나약하지 않고, 철학적이되 관념에 머물지 않는다.
시 <햇빛의 비단으로>는 그녀가 평생 穿鑿해 온 인간 존재의 쓸쓸함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쓸쓸함을 다시 빛으로 환원시키는 시적 능력을 보여 준다.
이 시는 말한다. 인간은 어둠을 없앨 수는 없으나, 어둠을 견딜 빛을 서로에게 건넬 수 있다고!
그것이 김선영 시인의 시가 한국 현대시에서 오래 빛나는 이유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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