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시인의 시 <풀꽃 왕관> ㅡ의식 밖의 존재에게 씌운 존엄의 왕관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김선영 시인의 시 <풀꽃 왕관> ㅡ의식 밖의 존재에게 씌운 존엄의 왕관 202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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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왕관
시인 김선영
황홀한 신부의 부케나
엄숙한 장례식에 한 번도
초대받은 일 없습니다
하얀 면사포, 혼례의 향기
검은 수건에 감긴 쓸쓸한 죽음
한 번도 스친 일 없습니다만
저 넓은 들녘 자유롭게 머물고 싶은 곳
밟아도 밟아도 피어나는 풀꽃이에요
한 방울 눈물같이
밤하늘 별처럼 살아나오는
아득한 들판의 풀꽃이에요
풀꽃 하나 보이지 않아도
세상은 무심히 잘 돌아갑니다만
단 한 분
그분은 있지 않고 방문하셔서
먼지 같은 꽃 한 점
머리마다 왕관으로 얹어주시지요
희망 한 송이씩도 매달아주시지요
그리하여 나는
한 뼘의 땅에서도
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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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시인의 시 <풀꽃 왕관>
ㅡ의식 밖의 존재에게 씌운 존엄의 왕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선영 시인의 <풀꽃 왕관>은 인간의 시선에서 배제되어 온 존재가 아니라, 의식과 제도에서 끝내 호명되지 못한 풀꽃의 자리를 조용히 호출하는 시다. 황홀한 신부의 부케에도, 엄숙한 장례식의 검은 수건에도 초대되지 못한 존재는 들에 핀 풀꽃이다.
시인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한다. 인간의 삶을 둘러싼 가장 극적인 순간들—탄생과 결합, 이별과 죽음—그 어디에도 풀꽃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제야말로 이 시의 출발점이다.
풀꽃은 의식의 중심에 서지 않는다. 이름 불리지 않고, 기억되지 않으며, 없어도 세상은 “무심히 잘 돌아간다.” 김선영은 이 무심함을 비판적으로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 안는다.
시의 태도는 분노가 아니라 연민과 이해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 시는 사회적 발언이기보다 존재론적 사유에 가깝다. 밟아도 다시 피어나는 풀꽃은 저항의 상징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생의 방식이다.
이 시의 중심 전환은 ‘그분’의 등장으로 이루어진다. 단 한 분, 방문하여 “먼지 같은 꽃 한 점”을 머리마다 왕관으로 얹어주는 존재. 여기서 왕관은 세속적 권위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부여하는 훈장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승인이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풀꽃이, 그분의 손길을 통해 왕관을 얻는 순간, 세계의 질서는 조용히 뒤집힌다. 높고 낮음, 중심과 주변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하여, 시의 마지막 고백은 과장이 아니다. “그리하여 나는 / 한 뼘의 땅에서도 / 왕이 됩니다.” 이때 ‘나’는 시인 개인이 아니라, 풀꽃과 동일시된 존재다. 작음과 낮음이 더 이상 결핍이 아닌 상태, 살아 있음 자체가 존엄이 되는 자리다. 김선영 시인의 시는 이 지점에서 신학적이며 동시에 깊이 인간적이다.
김선영 시인의 삶과 이 시는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한평생 대학 강단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제자를 길러온 그의 태도 역시 중심에 서기보다, 말없이 곁을 지키는 풀꽃의 자세에 가까웠다.
제자들 또한 스승의 이름이 아니라, 스승의 마음결을 닮아 글을 쓴다. 김선영 시인의 문학은 세상을 요란하게 구원하지 않는다.
다만 들에 핀 풀꽃 하나를 왕관으로 바꾸는 시선으로, 인간과 세계의 위계를 다시 세운다. 그 조용한 전환이야말로 이 시가 오래 남는 이유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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