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용문으로 가는 길 ㅡ청람 김왕식

용문으로 가는 길 2026.01.15
용문으로 가는 길

□ 용문 5일장

용문으로 가는 길

청람 김왕식

용문으로 가는 길은 목적지보다 먼저 마음을 데려간다. 연일 이어진 일정 속에서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 있었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틈새 같은 안식이 필요했고, 그 안식은 멀리 있지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일산에서 경의선을 타고 용문으로 향한다. 마침 오일장이 서는 날이다.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마음이 느슨해진다.

기차가 움직이자 풍경이 먼저 말을 건다. 도시는 빠르게 물러나고, 창밖에는 나무들이 나타난다. 신기하게도 나무는 서 있지 않고 기차를 따라온다. 달리는 것은 기차인데, 움직이는 것은 나무다. 가지와 가지 사이로 흘러가는 속도 속에서, 나무는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고요한 착시가 마음을 내려앉힌다.

시골 내음이 아직 닿지도 않았는데, 이미 기억은 앞서 달린다.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가던 장터가 떠오른다. 흙바닥에 놓인 좌판, 소쿠리 위에 수북이 쌓인 채소들, 그 사이에 앉아 먹던 국수 한 그릇. 특별할 것 없는 맛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온기만은 또렷하다. 국수보다 국수를 먹던 시간이 따뜻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길은 길지 않다. 그러나 그 시간은 이동이 아니라 회복에 가깝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마음은 이미 장터 한복판에 서 있다. 흙냄새와 삶은 국수의 김, 사람들 목소리가 뒤섞인 그 풍경 속에서, 바쁜 날들이 조금씩 풀어진다. 무엇을 사겠다는 생각보다, 그 내음을 맡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사는 일이란 어쩌면 그렇게, 냄새 하나로도 다시 살아나는 것인지 모른다.

기차는 계속 달리고, 창밖의 나무는 묵묵히 따라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충분히 위로가 된다. 용문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나를 나에게로 데려가는 길이었다. 바쁘게 살았다는 이유로 놓쳤던 것들을, 잠시나마 되돌려 받는 시간이었다. 내려야 할 것은 짐이 아니라 속도였다는 사실을, 그 길에서 비로소 알게 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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