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주광일 시인을 위하여 ㅡ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을 위하여 2026.01.15
주광일 시인을 위하여

□ 주광일 시인

주광일 시인을 위하여

청람 김왕식

당신은

바람이 머물다 간 들녘 끝에

조용히 피어난 작은 들꽃이었습니다

이름조차 불리지 않은 시절의

구석진 감정들을 끌어안고

한 줄의 침묵으로 세월을 버텨낸 이였습니다

당신의 시는

계절을 흉내 내지 않았습니다

가을이면 조락의 그림자를 드리웠고

겨울이면 백설 아닌 고요를 노래했습니다

그대는 꽃을 말하기보다

지는 꽃잎을 바라보았고

빛보다 느리게 흐르는

그림자의 변주를 적어왔습니다

사람들이 목청껏 사랑을 외칠 때

당신은

떠난 이를 가슴에 묻고

한 문장으로 매만지는 법을 택했습니다

부재를 존재로 품는 슬픔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니었고

시간을 데려다 놓고

기억이 걷는 길을 따라가는

조용한 순례였습니다

누군가는 외로움이라 말하겠지만

당신의 고독은

자기를 잃지 않으려는 마지막 울타리였습니다.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당신은 말없이 등을 돌렸고

그러나 당신의 등 뒤에는

시라는 별이 하나, 둘

오래도록 떠 있었습니다

말을 다 써버린 자리에서도

당신은

숨으로 문장을 쓰셨고

눈물로 시를 마무리하셨습니다

그 문장들은

감정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읽는 이의 가슴에

가만히 촉촉이 내렸습니다

당신이 쓰지 않은 행들 속에

우리는 오늘도 위로를 발견합니다

당신이 지우려 한 단어들에서

우리는 사랑을 되새깁니다

이제, 부디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그대의 낮달처럼

조용히 밝고 오래도록 살아 계십시오

그대의 시가

이 땅 위에 남겨진

가장 정직한 기록입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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