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다시 숨을 건너온 주광일 시인에게 ㅡ청람 김왕식

다시 숨을 건너온 주광일 시인에게 2026.01.15
다시 숨을 건너온 주광일 시인에게

□ 주광일 시인

1943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1965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제5회 사법시험 합격하였다. 197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6년에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로스쿨을 수료하였다.

■

다시 숨을 건너온 주광일 시인에게

청람 김왕식

오늘 아침

당신의 목소리가 전화선 너머에서

조심스럽게 살아 있었습니다

며칠 전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몸이 먼저 쓰러졌다는 소식

새벽 응급실의 차가운 불빛 아래에서

시간이 멈췄다는 이야기

그 모든 말들이

내 마음에서는 아직 문장이 되지 못한 채

가슴 안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40 시간

사람의 생이 가장 가벼워지는 시간

숨이 남아 있을지

이름이 남아 있을지

아무도 확답하지 못하는 밤들

그러나 당신은

끝내 돌아왔습니다

말보다 먼저

시보다 먼저

숨으로 돌아왔습니다

깨어났다는 그 한마디가

오늘의 햇살보다 밝았고

세상의 어떤 시보다

정확한 문장이었습니다

당신은 늘

죽음을 크게 말하지 않는 시인이었습니다

대신

지금 이 순간을

낮은 목소리로 살아내는 법을

시로 가르쳐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삶이 당신을 데려가려다

다시 놓아준 것은

아직 남겨야 할 침묵이 있고

아직 쓰이지 않은 고요가 있으며

무엇보다

당신의 숨과 함께

살아야 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오늘

당신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시는 종이 위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시 돌아온 숨 하나로도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부디

서두르지 마십시오

시처럼

당신의 회복도

천천히 오면 됩니다

이제 우리는 압니다

당신은

한 번 더

생의 문턱을 건너온 시인이라는 것을

그리고

당신의 다음 시는

이미 오늘 아침

그 전화 한 통으로

조용히 시작되었다는 것을

ㅡ청람

□ 주광일 시인과 함께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