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박상하 시인의 시 《메마른 텃밭》 ㅡ시간을 견디는 삶의 윤리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박상하 시인의 시 《메마른 텃밭》 ㅡ시간을 견디는 삶의 윤리 2026.01.16
박상하 시인의 시 《메마른 텃밭》 ㅡ시간을 견디는 삶의 윤리

메마른 텃밭

시인 박상하

애달파라 고향의 애기들

가뭄소리 목 타는 소리

애간장 구슬프구니

무더운 땡별 목마름

간절한 빗물 한 방울

내마음 달려 오더라

순수한 자연의 순리라

인생 또한 삶의 인내더냐

마른 맘 빗방울 내리소

노심초사 농부들 타는

눈물비 한숨 쉬는 비

메마른 시간을 견디는 삶의 윤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상하 시인의 <메마른 텃밭>은 자연의 가뭄을 노래하면서도, 그 실상은 인간 삶의 마른 시간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다.

이 작품에서 텃밭은 단순한 경작지가 아니라, 시인이 세계를 이해하는 최소 단위의 삶의 공간이다. 텃밭은 노동이 스며 있고, 기다림이 누적되며, 결과를 통제할 수 없는 자리다.

이 시는 바로 그 통제 불가능한 자리에서 인간이 어떤 태도로 서 있는가를 묻는다.

시의 첫 연에서 반복되는 ‘목’의 이미지―“목 타는 소리”, “목마름”―은 생존의 가장 원초적인 신호다. 이는 감상적 탄식이 아니라 생리적 절박함에 가깝다. 박상하의 언어는 여기서 꾸밈을 거부한다. “애달파라”, “애간장” 같은 토속적 어휘는 감정을 부풀리기보다 오래 눌러온 마음의 마찰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시인은 고향의 아이들과 농부들을 동시에 호출함으로써, 가뭄을 개인의 고통이 아닌 공동의 시련으로 확장한다. 이때 시의 윤리는 개인적 서정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적 감각으로 이동한다.

중반부의 “간절한 빗물 한 방울 / 내마음 달려 오더라”라는 구절은 이 시의 핵심적인 미의식이 응축된 대목이다. 자연을 기다리는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다. 빗물은 외부에서 떨어지는 구원이 아니라, 이미 마음속에서 먼저 움직인 간절함의 응답처럼 그려진다.

이는 시인이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고, 삶과 동일한 호흡의 질서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다. 자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견뎌야 할 조건이다.

후반부에서 시인은 “순수한 자연의 순리”를 말하며, 이를 곧바로 “인생 또한 삶의 인내”로 연결한다. 여기에는 박상하 시의 가치철학이 분명히 드러난다. 삶은 단기간의 성취로 증명되지 않으며, 인내는 미덕 이전에 생존의 방식이라는 인식이다.

특히 “노심초사 농부들 타는 / 눈물비 한숨 쉬는 비”라는 마무리는, 실제 비가 오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흘린 눈물이 있음을 환기한다. 이 눈물은 패배의 징후가 아니라, 버텨온 시간의 증거다.

이 시의 미의식은 화려한 비유나 극적인 전환에 있지 않다. 외려 절제된 반복, 낮은 어조, 토속적 언어의 사용을 통해 삶의 무게를 가볍게 꾸미지 않는 데 있다.

박상하 시인의 시는 자연을 빌려 인생을 말하지만, 인생을 과장하지 않기 위해 자연의 언어를 선택한다.

<메마른 텃밭>은 그래서 읽는 이를 위로하기보다, 조용히 옆에 앉아 함께 목을 축이지 못한 하루를 견뎌주는 시다. 그 담담함 속에 이 작품의 깊은 품격이 있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