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박철언 시인의 시 《제우스의 퍼즐, 판도라》 ㅡ희망이 남은 상자, 신들이 설계한 인간의 흔들림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박철언 시인의 시 《제우스의 퍼즐, 판도라》 ㅡ희망이 남은 상자, 신들이 설계한 인간의 흔들림 2026.01.27
박철언 시인의 시 《제우스의 퍼즐, 판도라》 ㅡ희망이 남은 상자, 신들이 설계한 인간의 흔들림

제우스의 퍼즐, 판도라

시인 박철언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파먹히는 프로메테우스

풀리지 않는 제우스의 시퍼런 분노의 불길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뻗어간다

둘을 짝지어 주려 신들이 만든 첫 여자, 판도라

지혜대신 천 짜는 기술만 가르쳐준 아테나

마성적인 매력을 불어넣어 준 아프로디테

헤라가 의심과 호기심까지 채워준 판도라

황금상자 선물과 함께

그녀를 아내로 맞은 동생 에피메테우스

궁금증을 못 참아 황금 상자 열어본 판도라

온갖 악과 부정한 것이 빠져나와 급히 닫는다

상자 속 희망만 못 나왔다는 안타까운 신화

재앙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 품고 용기 내라는

짝지어 자손 낳아 잘 부양하라는

한순간 평화 깬 아수라장 속에서

신과 인간, 운명의 경계 그은 신 중의 신 제우스

놀랍게도 원하던 퍼즐대로 맞추다니 호기심도 의심도 방향키 잃고 수위 넘으면

신화 밖 인류사까지 뒤흔들지 않을까

□ 청민 박철언 시인

‘순수문학’ 시,

월간 ‘문학세계’ 수필 등단,

한국문학사 를 빛낸 문인

윤동주문학상 대상,

윌리엄 예이츠문 학대상 외 다수 수상.

3선 국회의원.

정무장관.

체육청소 년부장관,

대통령 정책보좌관,

검사장 외 다수 역임.

현, 한반도복지통 일재단 이사장.

변호사

시집

《바람을 안는다》,《왜 사느냐고 물으면》 외 다수.

박철언 시인의 시 《제우스의 퍼즐, 판도라》

ㅡ희망이 남은 상자, 신들이 설계한 인간의 흔들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민 시인의 시는 넓고 깊다.

박철언 시인의 시적 영역의 끝은 어디일까?

시인의 《제우스의 퍼즐,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를 단순히 ‘이야기’로 재현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신화가 품고 있는 인간 조건의 원형을 오늘의 윤리로 끌어와, 인간이 감당해야 할 자유의 무게와 선택의 책임을 묻는 서사적 성찰로 확장한다. 박철언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은 한 가지로 수렴된다. 세계는 저절로 선해지지 않으며, 인간은 늘 유혹과 분노, 호기심과 두려움 사이에서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이 시는 그 믿음을 신화적 장면에 심어, ‘운명처럼 보이는 사건’도 결국은 인간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내느냐에 따라 다른 결말로 읽힌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시의 첫 머리는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에서 시작한다. 제우스에게 불을 도적질해 인간에게 준 죄로 간을 뜯기는 장면은, 지식과 문명의 선물이 언제나 대가를 동반한다는 비극적 진실을 상징한다.

그런데 시인은 그 비극을 한 개인의 형벌로 끝내지 않고, 제우스의 분노가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번져 가는 흐름을 제시한다.

여기서 박철언 시인의 현실 인식이 선명해진다. 권력의 분노는 늘 약한 쪽으로 이동하며, 체계의 복수는 개인을 넘어 관계와 공동체까지 파고든다. 신화 속 신들은 인간의 불행을 ‘퍼즐’처럼 맞추는 존재로 형상화되며, 인간은 그 퍼즐의 조각으로 밀려난다.

그 다음 판도라의 탄생은 이 작품의 미의식을 결정하는 핵심 장치다. 아테나는 “지혜 대신 천 짜는 기술만” 가르친다. 이 한 줄에는 여성에게 지혜를 허락하지 않았던 오랜 구조적 배제가 담겨 있다. 아프로디테가 준 “마성적인 매력”은 사랑의 빛이 아니라 욕망과 소비의 시선으로 변질된 아름다움의 그림자이며, 헤라가 채워 준 “의심과 호기심”은 인간 내면의 균열이자 문을 여는 힘이다.

박철언 시인은 여기서 판도라를 단순한 ‘재앙의 원인’으로 단죄하지 않는다. 외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성질—알고자 함, 확인하고자 함—이 동시에 파멸의 문도 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즉, 죄의 주체는 한 인물이 아니라, 인간을 그렇게 설계해 놓은 세계의 질서 자체다.

“황금상자”는 화려한 선물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실은 통제된 파국의 도구다. 박철언 시인의 언어가 빛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서 ‘선물’이라는 단어의 역설을 파고드는 데 있다. 상자는 열리기 전까지 축복이지만, 열리는 순간 재앙이 된다. 그리고 그 사이를 움직이는 것은 오직 인간의 마음이다. “궁금증을 못 참아”라는 표현은 판도라의 행위를 가볍게 묘사하는 듯하지만, 사실 인간의 실존을 찌르는 문장이다. 우리는 작은 호기심 하나로 삶의 윤곽을 바꾸고, 작은 선택 하나로 평화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허나, 이 시는 절망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상자 속 희망만 못 나왔다는 안타까운 신화”를 끌어오면서, 시인은 희망의 위치를 묻는다. 희망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희망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희망이 쉽게 소진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남겨졌다는 뜻일 수 있다.

박철언 시인의 가치철학은 여기서 따뜻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재앙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 품고 용기 내라”는 문장은 훈계가 아니라 생존의 윤리다. 고통의 이유를 다 알 수 없어도, 인간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희망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선언이다.

마지막 연은 이 작품을 단순한 신화 해석에서 ‘오늘의 경고’로 끌어올린다. 제우스가 “원하던 퍼즐대로 맞추”는 순간, 인간의 자유는 시험대에 오른다. 그리고 “호기심도 의심도 방향키 잃고 수위 넘으면 / 신화 밖 인류사까지 뒤흔들지 않을까”라는 결말은, 현대 문명이 맞닥뜨린 위험을 예언처럼 비춘다. 통제되지 않은 욕망, 검증되지 않은 확신, 과잉된 호기심은 개인의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 전체를 흔드는 재앙이 된다. 박철언 시인은 신화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단속하고, 세계를 경계하는 윤리의 눈을 세운다.

요컨대, 《제우스의 퍼즐, 판도라》는 신들의 이야기로 위장한 인간학이다. 이 시의 미의식은 서사적 긴장 속에서도 문장을 과장하지 않고, 상징을 억지로 부풀리지 않으며, 신화의 골격 위에 삶의 질문을 단단히 얹는 데 있다.

박철언 시인은 재앙의 시작을 호기심으로 말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균형이 이 작품의 품격이며, 우리에게 남는 마지막 가르침이다.

희망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다시 인간을 일으키는 내면의 마지막 불씨라는 것.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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