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장한라 시인의 시<문자 봉오리> ㅡ맑은 봉오리로 피어나는 언어의 윤리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장한라 시인의 시<문자 봉오리> ㅡ맑은 봉오리로 피어나는 언어의 윤리 2026.02.08
장한라 시인의 시<문자 봉오리> ㅡ맑은 봉오리로 피어나는 언어의 윤리

□ 장한라 시인

문자 봉오리

시인 장한라

소리 없이 눈짓만으로 주고받은

희고 노란 봉오리 진 얘기들

올망졸망 꽃망울들 사이

보고픈 목소리로 피어나고파

청아하고 탐스럽게 영근

결 고운 말의 씨앗이 되어

산새소리 냇물소리 댓바람소리로

가득 채우고 올 거야

귀한 그대의 하루가

정다운 미소로 번져나기를

장한라 시인의 시<문자 봉오리>

ㅡ맑은 봉오리로 피어나는 언어의 윤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는 결국 사람의 체온을 닮는다.

화려한 수사로 장식된 문장보다 오래 남는 것은 시인이 살아온 시간의 결이며, 그 결이 언어의 표면에 드러날 때 시는 비로소 독자의 내면에 닿는다.

장한라 시인의 시 <문자 봉오리>는 이러한 점에서 언어 이전의 태도를 먼저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시는 말이 피어나기 이전의 고요, 그리고 말이 맺히기 직전의 윤리를 사유하게 한다.

첫 행에서 제시되는 “소리 없이 눈짓만으로 주고받은” 장면은 시 전체의 정조를 규정한다. 언어가 아직 발화되지 않은 상태, 즉 관계가 말보다 먼저 존재하는 세계를 암시한다. 시인은 언어를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관계의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생명체로 바라본다.

여기서 “희고 노란 봉오리 진 얘기들”은 완성된 언어가 아니라 아직 피어나지 않은 감정과 기억의 潛在態다. 봉오리는 개화 이전의 가능성을 의미하며, 이는 시인의 삶의 태도가 급히 발화하기보다 오래 숙성하는 방향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올망졸망 꽃망울들 사이 / 보고픈 목소리로 피어나고파”라는 구절은 언어의 탄생을 자연의 리듬 속에 배치한다. 말은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호흡처럼 생성된다는 인식이 드러난다.

이는 시인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 지배나 설명이 아니라 공존과 수용에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청아하고 탐스럽게 영근 / 결 고운 말의 씨앗”이라는 표현은 언어를 윤리적 선택의 결과로 제시한다. 말은 씨앗이며, 그것이 어떤 열매로 자랄지는 말하는 이의 내면에 달려 있음을 시는 암시한다.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산새소리 냇물소리 댓바람소리”는 인간 중심 언어관을 넘어서는 확장을 보여준다. 시인은 자연의 소리를 언어의 원형으로 호출한다.

이는 장한라 시인의 시 세계의 미의식이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언어를 생태적 감각 속에서 재배치하려는 방향에 있음을 드러낸다. 자연의 음향을 채워 넣겠다는 다짐은 언어를 정화하려는 의지이며, 동시에 인간 관계 속에 맑은 울림을 되돌려 놓으려는 실천적 태도다.

마지막 구절

“귀한 그대의 하루가 / 정다운 미소로 번져나기를”은 시의 철학을 분명히 드러낸다. 시인의 언어는 자기 표현에 머물지 않는다. 타인의 하루에 스며드는 위로와 배려의 방향을 지향한다.

이는 시인이 언어를 통해 관계의 온도를 높이려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장한라의 시는 자기 과시의 미학이 아니라 나눔의 윤리 위에 서 있다.

이 작품은 화려한 이미지나 과장된 감정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작은 봉오리의 형상을 통해 언어의 탄생, 관계의 형성, 그리고 삶의 태도를 은유한다. 시인의 삶이 지향해 온 가치철학은 맑음과 절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읽힌다. 그 철학은 작품 속에서 말의 씨앗을 고르는 태도로 구현된다. 이는 시가 시인을 닮는다는 오래된 명제를 다시 확인하게 한다.

요컨대, <문자 봉오리>는 언어가 어떻게 피어나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말은 칼이 될 수도 있고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장한라 시인의 시는 그 선택 앞에서 씨앗을 택한다. 맑은 봉오리로 시작해 타인의 하루를 미소로 물들이는 언어. 그것이 이 시가 보여주는 미학이며 윤리다.

이 작품은 오늘의 거칠어진 언어 환경 속에서 더욱 깊은 울림을 남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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