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소멸에서 태어나는 아름다움 —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화詩畵, 서로 스며들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경계의 소멸에서 태어나는 아름다움 —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화詩畵, 서로 스며들다> 2026.02.12
□ 청민 박철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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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詩畵 ), 서로 스며들다
시인 青民 박철언
말의 씨앗 뿌려 이랑 따라 자라난 시
시 속의 혼을 꺼낸 선과 색채의 춤
시의 향, 그림의 향
불어온 바람에 발 끝까지 터뜨리니
발아發芽되어 비로소 피어나는 시화詩畵
시 속그림, 그림 속 시
시도 그림도 서서히 경계 벗으니
서로 스며들어 하나로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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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소멸에서 태어나는 아름다움
— 박철언 시인의 <시화詩畵, 서로 스며들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화(詩畵), 서로 스며들다>는 시와 그림이라는 서로 다른 예술 장르의 만남을 노래하는 작품이지만, 그 핵심은 단순한 병치竝置에 있지 않다.
이 시는 예술의 발생 순간, 즉 내면의 감각이 형상으로 옮겨지는 근원적 장면을 탐색한다. 사물을 표면적으로 관찰하는 태도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깊이의 사색이 작품 전반에 배어 있다.
이는 감각을 넘어 존재의 결을 읽어내려는 미적 의식의 산물이라 할 만하다.
첫 행에서 제시되는 “말의 씨앗”은 창작의 기원을 상징한다. 언어는 이미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흙 속에 묻혀 발아發芽를 기다리는 생명의 상태로 제시된다. 이랑을 따라 자라난 시라는 표현은 시적 창작을 농경의 시간성으로 환원한다.
여기서 시는 즉각적인 산물이 아니라 돌봄과 기다림을 요구하는 생명의 과정이다.
이어지는 “혼을 꺼낸 선과 색채의 춤”은 그림을 단순한 재현이 아닌 영혼의 외화로 확장한다.
시가 내면의 씨앗이라면, 그림은 그것을 몸짓으로 드러낸 형상이다. 두 예술은 서로 다른 길에서 출발하지만 동일한 본질을 향한다.
중간 연에서 시인은 향기라는 감각을 호출한다. “시의 향, 그림의 향”은 시각과 언어의 경계를 넘는 공감각적 인식이다.
바람이 그것을 발끝까지 퍼뜨린다는 진술은 예술의 체험이 머리의 이해에 머무르지 않고 전신의 감응으로 확장됨을 보여 준다.
그리고 “발아되어 비로소 피어나는 시화詩畵”라는 귀결은 시와 그림의 만남을 생명의 개화로 완성한다. 여기서 시화는 장르의 결합이 아니라 존재의 한 단계 진화다.
마지막 연의 미학은 더욱 절제되어 있다. “시 속 그림, 그림 속 시”라는 교차 구조는 상호 침투의 순간을 정교하게 형상화한다.
이어지는 “경계 벗으니”라는 선언은 예술의 궁극적 지향을 드러낸다. 진정한 창작은 분류의 울타리를 넘어서며, 장르의 구획을 지우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서로 스며들어 하나로 일어선다는 결말은 통합의 미학이자 화해의 철학이다.
이는 예술이 분리된 영역의 경쟁이 아니라 상호 확장과 공명 共鳴의 장이라는 인식 위에 놓여 있다.
이 작품은 장식적 언어에 기대지 않는다. 짧은 행 속에 생명生命 · 향기香氣 · 경계境界라는 상징을 배치하며, 예술의 근원을 탐색하는 시인의 미적 자각을 담아낸다.
사물을 섬세히 관찰하고, 감각을 오래 숙성시키지 않고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시선이다. 문학을 머리로 조합한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품어 이끌어 올린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이 시는 작가의 내면적 성찰이 낳은 출산에 가깝다.
요컨대, <시화, 서로 스며들다>는 시와 그림의 관계를 말하면서도 더 깊은 층위에서 창작의 본질을 말한다. 예술은 분리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표현은 한 뿌리에서 자라난 가지일 뿐이다.
청민青民 시인의 시는 그 뿌리를 향해 시선을 낮추고, 경계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비로소 아름다움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언한다. 이 절제된 사유의 밀도야말로 시인의 미적 의식이 도달한 깊이를 웅변雄辯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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