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소녀의 눈으로 세운 영원의 나무 — 김선영 시인의 시 《그림 속 나무》 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소녀의 눈으로 세운 영원의 나무 — 김선영 시인의 시 《그림 속 나무》 론 2026.02.16
소녀의 눈으로 세운 영원의 나무  — 김선영 시인의 시 《그림 속 나무》 론

■ 김선영 시인ㅡ 제1 회 여성문학인상 운문부 대상 수상

그림 속 나무

시인 김선영

가지에 앉은 뻐꾸기 울음

연두로 칠해 보자

곧추 선 나무의 허리

나무의 연두를

흔들어 보자

꽃잎 몇 떨어진다

나무 한 그루

달을 따라 간다

번개가 쳐도

놀라지 않는

그림 속 나무

평생 잎이 지지 않을

푸른 나뭇가지엔

평생 날아가지 않을

뻐꾸기 한 마리

소리 없이 노래하고 있다

그림 속 나무엔

아무도

쉬어가지 않는다

소녀의 눈으로 세운 영원의 나무

— 김선영의 《그림 속 나무》 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선영 시인의 시 <그림 속 나무>는 작고 맑은 수채화 한 폭처럼 보인다.

그 고요한 화면 아래에는 한 시인이 평생 지켜온 정신의 결이 스며 있다. 그는 충격보다 절제를, 과시보다 침묵을 택해 온 시인이다.

수줍고 맑은 심성, 겸손의 극치에 가까운 태도는 그의 삶과 시를 관통하는 중심축이다.

김선영 시인은 고등학생 시절 이미 ‘동승’ 이란 시가 <동아일보>에 실리며 기성 문단을 놀라게 했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추천으로《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미당의 애제자라는 이력은 단순한 문단적 계보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를 대하는 태도, 시적 긴장을 다루는 절제의 방식,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감각의 훈련을 의미한다.

이후 세종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길러낸 시간은, 그의 시가 단순한 개인적 감상이 아니라 문학적 책임 위에 서 있음을 증명한다.

최근 여성문학회 제1회 여성문학상 대상 수상은 그 긴 노정에 대한 조용한 결실이다.

□ 연두로 칠한 울음 — 색채의 윤리

시의 첫 행은

“가지에 앉은 뻐꾸기 울음 /

연두로 칠해 보자”이다.

울음을 ‘연두’로 칠한다는 발상은 감각의 전환이다. 소리는 보이지 않지만, 시인은 그것을 색채로 환치한다.

여기서 연두는 단순한 색이 아니다. 생의 첫 숨, 막 돋아난 잎의 맑은 긴장, 아직 상처 입지 않은 마음의 빛이다.

이 연두는 시인 김선영 시 세계의 근원적 색조다.

과장된 붉음도, 비탄의 검정도 아니다. 그는 생의 아픔을 알면서도 그것을 연두의 언어로 건넨다. 울음조차도 생명의 색으로 감싸는 태도. 이것이 그의 미의식이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되, 고통에 매몰되지 않는 것. 시는 여기서 윤리를 갖는다.

“곧추 선 나무의 허리 /

나무의 연두를 /

흔들어 보자 /

꽃잎 몇 떨어진다.”

이 구절에서 나무는 단단히 서 있다. 곧추 선 허리는 삶의 중심을 상징한다. 그러나 흔들림을 허용한다. 흔들림 속에서 꽃잎이 떨어진다. 상실은 필연이다.

그러나 그것은 붕괴가 아니다. 몇 잎의 꽃이 떨어진다고 나무가 쓰러지지 않는다. 외려 그 낙화는 계절의 일부다.

시인 김선영의 시는 삶을 이처럼 받아들인다. 그는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는다. 대신 존재의 질서를 조용히 응시한다.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않는 곧음. 이것이 그의 인격과도 닮아 있다.

□ 달을 따라가는 나무 — 영원의 감각

“나무 한 그루 /

달을 따라 간다.”

이 한 줄은 이 시의 중심축이다.

땅에 뿌리내린 나무가 달을 따라간다는 역설. 움직이지 않는 존재가 움직이는 천체를 따라간다는 상상은, 시간과 영원의 관계를 드러낸다.

나무는 현실이다.

달은 이상이다.

나무는 지상에 있고, 달은 하늘에 있다. 그러나 시 속에서 둘은 한 궤도를 공유한다. 이는 김선영 시인의 삶의 태도와 겹친다.

그는 현실의 교단에 서 있었지만, 언제나 문학이라는 달을 따라갔다. 학자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내면은 분리되지 않았다. 나무처럼 단단히 서 있으면서도, 달빛의 변화를 감지하는 감수성. 이 이중의 긴장이 그의 시를 지탱한다.

□ 번개에도 놀라지 않는 나무 — 내면의 평정

“번개가 쳐도 /

놀라지 않는 /

그림 속 나무.”

그림 속 나무는 자연의 폭력에서 벗어나 있다. 번개가 쳐도 그 나무는 놀라지 않는다.

여기서 ‘그림 속’이라는 공간은 현실을 초월한 정신의 자리다. 현실의 나무는 번개에 쓰러질 수 있다. 그러나 그림 속 나무는 영원히 서 있다.

이것은 도피가 아니다. 외려 정신의 형상화다. 시는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는다. 시는 현실을 넘어서는 한 점의 평정을 그린다. 김선영 시인의 시는 늘 조용하다. 그러나 그 고요는 연약함이 아니다. 번개를 겪고 난 뒤의 침묵에 가깝다.

□ 잎 지지 않는 나뭇가지 — 정지된 시간의 역설

“평생 잎이 지지 않을 /

푸른 나뭇가지엔 /

평생 날아가지 않을 /

뻐꾸기 한 마리.”

여기서 시간은 멈춘다.

잎이 지지 않고, 새가 날아가지 않는다. 움직임의 정지. 변화의 유예. 이것은 생의 비극을 부정하는 환상이 아니라, 시가 부여하는 영원의 한 형식이다.

현실의 시간은 흘러가고, 인간은 늙는다.

그러나 예술은 한 순간을 붙들어 둔다. 김선영은 시로 시간을 정지시킨다. 그 나뭇가지에 앉은 뻐꾸기는 그의 시적 자아다. 떠나지 않고, 소리 없이 노래한다. 외침이 아닌 속삭임. 드러냄이 아닌 스며듦.

□ 아무도 쉬어가지 않는 나무 — 고독의 미학

“그림 속 나무엔 /

아무도 /

쉬어가지 않는다.”

이 마지막 구절은 쓸쓸하다.

허나 이 쓸쓸함은 패배의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된 고독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어 쉬는 나무가 아니라, 아무도 기대지 않는 나무. 대중의 환호보다 스스로의 기준을 지켜온 시인의 자화상이다.

그는 문단의 중심에 있었지만 요란하지 않았다. 여성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지금도, 그의 시는 낮은 목소리를 유지한다. 고독은 그에게 고립이 아니라 자율이다. 아무도 쉬어가지 않는 나무는 가장 순수한 형상을 보존한다.

□ 소녀의 눈으로 지킨 영원의 형식

김선영은 소녀다.

이 말은 나이를 뜻하지 않는다.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사물을 연두로 칠하고, 울음을 색으로 바꾸며, 달을 따라가는 나무를 그리는 감수성. 그것은 오염되지 않은 시선이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한 이력은 문단적 권위의 증표일 수 있다. 허나,김선영의 진정한 힘은 그 권위를 넘어서는 맑음에 있다. 세종대학교에서 후학을 길러내며 지켜온 학자의 책임, 평생 흔들리지 않는 겸손, 그리고 이번 여성문학상 수상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은 모두 이 한 편의 시 속에 응축되어 있다.

<그림 속 나무>는 한 폭의 정지된 화면이 아니다. 그것은 시인이 평생 세워온 정신의 형상이다. 번개에도 놀라지 않고, 달을 따라가며, 아무도 쉬어가지 않는 자리에서 소리 없이 노래하는 나무. 그 나무는 김선영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연두로 칠한 울음은 결국 생의 윤리다. 고요 속에서 지켜낸 푸른 빛. 그것이 시인 김선영 시 세계의 본질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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