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황혼의 맑음이 남긴 사랑의 결 — 시인 박정민 시 세계의 정서적 근원에 대하여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황혼의 맑음이 남긴 사랑의 결 — 시인 박정민 시 세계의 정서적 근원에 대하여 2026.02.21
황혼의 맑음이 남긴 사랑의 결 — 시인 박정민 시 세계의 정서적 근원에 대하여

사랑을 전합니다

시인 박정민

바람이 삶의 겉껍질을 할퀴고

가시넝쿨이 하루의 가장자리를 죄어와도

그대와 보폭을 맞춘 길이라면

발밑의 흙은 스스로

꽃의 결을 닮아간다

마른 가지처럼

툭, 소리 내며 부러지는 날들이

연달아 이어진다 해도

땅속 깊이

이름 없이 엉켜 있는 뿌리 하나 있다면

그대의 고요한 웃음 아래

몸의 기울기를 바로잡을 수 있다

낯선 숨결이 가득한 세상에서

가슴속 나이테가

단단히 굳어간다 해도

그대라는 온기가 있어

버텨낼 수 있었고

그 버팀의 한가운데가

이미

살아 있었다는 증거였음을

늦게 알게 된다

어느새

햇살의 끝이 낮아지는 자리까지

함께 닿아온 우리

지나온 길목을

굳이 되짚지 않아도 된다

맞잡은 손 사이로

저녁이 천천히 스며들고

남은 이야기는

걸음의 속도로

앞을 향해 이어지면 된다

황혼의 맑음이 남긴 사랑의 결

— 시인 박정민 시 세계의 정서적 근원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정민 시인의 시를 읽는 일은

깊은 산속에서 한 줄기 맑은 샘물이

바위 틈을 따라 조용히 흘러내리는 소리를

가만히 귀 기울여 듣는 일과 닮아 있다.

그의 언어는

격렬하게 번쩍이지 않는다.

스스로를 낮춘 물처럼

낮은 자리로 흐른다.

그래서 맑다.

그 맑음은

기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삶의 시간을 오래 통과해 온

정서의 침전물에 가깝다.

시인 박정민의 시 세계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한 존재가 있다.

마음 깊이 사랑을 담은

순백한 사람이다.

이 존재는

시 속에서 이름으로 불리지 않지만

언어의 온도를 바꾸는

근원으로 작동한다.

사랑은

그에게 감정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내면의 중심축이다.

그의 시에서 사랑은

젊은 날의 열정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외려

중년의 해질녘에

더 선명해진다.

시간이 흘러

빛이 낮아질수록

사물의 윤곽이 또렷해지듯

그의 사랑 또한

황혼의 빛 속에서

비로소

형태를 얻는다.

이 사랑은

격렬하지 않다.

서두르지 않고

앞서가지 않으며

남겨진 시간을

함께 견디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뜨겁게 타오르기보다

은은히 스며드는

저녁빛의 성질을 지닌다.

하여

그의 시에는

이별의 예감보다

동행의 의지가

더 짙게 배어 있다.

삶의 후반부에 이르러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의 형식을 띠기 때문이다.

박정민 시인이 그려내는

황혼빛 사랑은

시간이 남긴 상처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그 상처를

덮지 않는다.

다만

함께 견디며

그 결을 따라

살아간다.

그의 시는 말한다.

사랑은

처음 만나는 순간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걸어가는 시간의 다른 이름임을.

황혼의 빛은

낮의 찬란함을 대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온기를 남긴다.

박정민의 시가

지닌 맑음 또한

바로 그 온기에서

비롯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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