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란 시인의<낙엽의 마지막 선율> — 생의 종지부를 향한 존재의 andante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해란 시인의<낙엽의 마지막 선율> — 생의 종지부를 향한 존재의 andante 2026.02.26
□정해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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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의 마지막 선율
시인 정해란
새소리 우거진 늦가을 단풍은
우주가 겹겹이 고인 악보 한 소절
날씨의 생채기와 위태로운 맥박까지
안단테로 흐르던 햇살과 달빛
단비나 바람이 켜던 현도 멈춘 채
그 절정의 무게 툭 놔버린 순간
꿈꾸듯 곡선으로 흐르는 선율
대기도 숨은 악보 읽었을까
생사의 경계 건너는 붉은 우주 한 잎
무심히 윤회로 가는 길의
가장 짧은 마지막 침묵의 연주
모든 문 닫고 있는 늦가을 나무
허공을 붙잡았던 붉은 詩 몇 편은
숨죽인 순간에 숨 쉬던 빛깔의 변주곡
저마다 다른 곡선의 선율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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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란 시인의<낙엽의 마지막 선율>
— 생의 종지부를 향한 존재의 andante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해란 시인의 <낙엽의 마지막 선율>은 월간문학 2026년 3월호에 게재된 작품으로, 늦가을이라는 계절적 종말의 시간 위에 존재의 소멸과 순환이라는 우주적 질서를 겹쳐 놓은 시이다.
이 작품은 낙엽의 낙하를 묘사하는 자연시의 범주를 넘어, 한 존재가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시간을 다 사용한 뒤 마지막 숨을 내려놓는 과정을 ‘연주’라는 미학적 형식으로 전환해 보여준다.
정해란 시인의 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의 결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평생 교직에 몸담으며 어린 학생들의 맑은 영혼과 마주해 왔다. 아이들의 투명한 눈빛과 미완의 언어, 그리고 세상을 처음 감각하는 존재들의 떨림을 가까이에서 공감해 온 시간은 시인의 내면에 고요한 시심을 축적해 온 또 하나의 교육과정이었다.
교단 위에서 만난 순수한 생명의 결은 그의 언어를 거칠게 만들지 않았고, 사물의 마지막 순간마저도 다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끌어 냈다.
현재 그는 詩作에 머무르지 않고 시낭송을 통해 언어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다른 시인들의 시에 아름다운 옷을 입혀 다시 飛翔케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시를 쓰는 행위를 넘어 시를 살리는 일이며, 언어의 가능성을 공동체적 울림으로 확장하는 미학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가 지닌 부드러운 호흡과 절제된 감각은 바로 이러한 삶의 이력 속에서 형성된 결과이다.
시의 첫 행에서 늦가을 단풍은 “우주가 겹겹이 고인 악보 한 소절”로 명명된다. 이는 자연을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된 기록으로 인식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단풍은 계절의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의 악보이며, 생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존재의 기록물이다.
날씨의 생채기와 위태로운 맥박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진술은 자연을 외부 환경의 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와 동일한 맥박을 지닌 유기체로 바라보는 시인의 존재론적 시선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햇살과 달빛이 안단테로 흐르고, 바람과 단비가 켜던 현이 멈춘다. 이는 생의 리듬이 멈춘 이후 찾아오는 궁극의 침묵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시인은 절정의 무게를 ‘툭 놔버린 순간’이라 표현함으로써 죽음을 격렬한 사건이 아니라 내려놓음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여기에는 삶의 끝을 비극으로 보지 않는 태도, 외려 하나의 자연스러운 이행으로 받아들이는 생명 철학이 배어 있다.
“생사의 경계 건너는 붉은 우주 한 잎”이라는 구절에서 낙엽은 더 이상 나무의 일부가 아닌 독립된 우주로 전환된다. 이는 개별 존재가 공동체적 생명으로부터 이탈하는 순간을 의미하는 동시에, 또 다른 질서로의 편입을 예고하는 상징이다.
붉은 색채는 소멸의 徵候이면서 동시에 생성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낙엽의 낙하는 끝이 아니라 윤회의 시작이며, 시인은 이를 “가장 짧은 마지막 침묵의 연주”라는 음악적 은유로 치환한다.
후반부에서 늦가을 나무는 모든 문을 닫는다. 허공을 붙잡았던 붉은 시 몇 편은 생애 동안 존재가 수행해온 모든 몸짓과 언어의 흔적을 암시한다. 그것들은 이제 더 이상 외부를 향하지 않고, 숨죽인 순간 속에서 빛깔의 變奏曲으로 남는다. 존재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식을 바꾸어 또 다른 리듬 속으로 스며든다.
정해란 시인의 시 세계는 이처럼 소멸을 두려움이 아닌 미학적 완성의 단계로 인식한다. 삶은 연주이고, 죽음은 종결이 아니라 다음 악장을 위한 쉼표라는 인식이 작품 전반에 흐른다.
이는 존재의 유한성을 긍정하는 태도이며, 동시에 모든 생명이 순환의 질서 안에 놓여 있다는 자연철학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 시에서 낙엽은 단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 내려놓음의 순간, 존재는 가장 완전한 선율로 우주와 화음을 이룬다. 정해란은 그 미세한 순간을 포착해 침묵조차 하나의 연주로 들리게 만드는 언어의 악보를 완성해낸다.
시 <낙엽의 마지막 선율>은 존재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살아낸 뒤 맞이하는 가장 고요한 완성의 순간을 기록한 생의 찬가라 할 수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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