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 시인의 《2월》 ㅡ혹한의 심층수에서 이끌어 올린 새벽의 언어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권천학 시인의 《2월》 ㅡ혹한의 심층수에서 이끌어 올린 새벽의 언어 202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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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월
시인 권천학
눈벌판 어디쯤,
들썩들썩 뿜어 올리는 수복초의 노란 숨
그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는 발길
북풍받이 어느 추녀 끝,
언 몸 사려가며 통째로 매달린 채
어둠속에서도 자라는 물의 뼈
빈 가지에 꽃눈 틔우느라 몸살하는
매화의 뜰 창가에 번지는 야트막한 불빛
누군가
먼듯, 가까운 길 위의 흑한과 어둠을
걷어내느라 등을 밝히고 있는 그 사람
이 밤올 견디고 나면
발그레 밝아올 새벽을 믿고
잠마저 덜어내어가며
심층수 길어 올리는 시인이
반걸음 앞당겨 디디는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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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천학 시인의《2월》
ㅡ혹한의 심층수에서 이끌어 올린 새벽의 언어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권천학 시인의 《2월》은 캐나다 한국일보에 게재된 작품으로, 설원의 풍경을 빌려 존재의 근력을 증명하는 시다.
이 시는 그저 계절의 끝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혹한을 통과하며 스스로를 단단히 세워온 한 원로 시인의 삶과 문학을 동시에 비춘다. 눈벌판은 지리적 배경이면서도 이민자의 시간이고, 조국을 향한 그리움이 얼어붙지 않도록 지켜온 정신의 대륙이다.
“눈벌판 어디쯤, / 들썩들썩 뿜어 올리는 수복초의 노란 숨.”
이 첫 구절에서 이미 시의 방향은 결정된다. 설원 아래서 피어오르는 노란 숨은 완성된 봄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의 기척이다. 권천학은 늘 완성보다 과정에 주목해온 시인이다.
눈 아래서도 숨 쉬는 생의 미세한 진동을 읽어내는 감각, 그것이 그의 미의식이다. 혹한은 그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외려 더 깊은 시심을 응결시켰다.
“어둠속에서도 자라는 물의 뼈”라는 은유는 그의 문학적 골격을 상징한다. 물은 흐름이지만, 얼음이 되면 뼈처럼 단단해진다. 고난은 파괴가 아니라 구조를 세운다. 캐나다에서 왕성한 문학 활동을 이어가며 후학을 지도하고, 동포 문단의 중심에서 한국어의 맥을 지켜온 그의 삶은 바로 이 ‘물의 뼈’와 같다.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내부에는 단단한 결이 서 있다.
지난해 이어도문학 대상 수상은 그의 문학적 성취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사건이다. 당시 심사평에서 허형만 시인은 권천학을 두고 “인격을 잘 갖추고 문인들에게 존경받는, 온몸을 부려 시를 쓰는 훌륭한 대작가”라 극찬했다.
이 평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다. 그의 시가 단지 언어의 기교에 머무르지 않고, 삶 전체를 통과한 체험의 밀도로 쓰여졌음을 증명하는 말이다. 온몸을 부려 쓴다는 것은 한 줄의 시에 생의 시간을 함께 밀어 넣는다는 뜻이다. 그는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로 살아온 사람이다.
매화의 뜰 창가에 번지는 “야트막한 불빛”은 그의 인격적 면모와도 닿아 있다. 빈 가지에 꽃눈을 틔우느라 몸살하는 매화처럼, 그는 후학을 길러내며 문학의 씨앗을 키워왔다. 타향의 설원 위에서 조국의 매화를 떠올리는 장면은 향수가 아니라 책임의식이다. 조국의 언어를 지켜야 한다는 다짐, 문학의 맥을 이어야 한다는 의지. 그 불빛은 개인의 감상이 아니라 공동체적 사명이다.
“심층수 길어 올리는 시인”이라는 자의식은 그의 문학적 태도를 정확히 드러낸다. 그는 표면의 감정을 건져 올리는 시인이 아니다. 깊은 곳에서 맑고 차가운 본질을 길어 올린다. 그 물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밤을 견디고, 잠을 덜어내고, 고독을 통과해야 비로소 닿을 수 있다. 이 과정이 바로 그를 ‘대작가’라 부르게 하는 힘이다.
“반걸음 앞당겨 디디는 2월!”이라는 종결은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묵직하다. 겨울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이미 봄을 믿는 태도. 이것이 권천학의 문학이다. 성급히 계절을 바꾸지 않고, 묵묵히 반걸음을 내딛는 힘. 그 힘은 인격에서 나오고, 인격은 삶에서 나온다.
시 《2월》은 계절의 시이면서 동시에 한 시인의 이력서다. 설원 위의 수복초, 얼음의 뼈, 매화의 불빛은 모두 권천학 시인의 삶을 은유한다. 그는 혹한 속에서도 언어를 얼리지 않았고, 타향에서도 조국의 봄을 준비해왔다.
허형만 시인의 말처럼, 그는 온몸을 부려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리고 그 온몸의 시간은 지금도 반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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